터키,그리스 난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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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나섬학교'를 결단하다


그날 밤 유바울 선교사님이 그리스 나섬학교라는 이름을 불러주었다. 생각하지 않았던 이름이다. 그리스 난민선교학교라는 이름으로 사역을 하면서 더욱 구체적이고 효과적이며, 지속가능한 선교훈련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회의를 하는 중 나온 이야기다. 어떤 이름으로 할까를 물었더니 유선교사님이 즉석에서 응답한 것이 그리스 나섬학교. 그리스의 나그네를 섬기는 학교이니 그리스 나섬학교로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그날 밤 나는 새벽 일찍 일어나 여러 가지를 생각하던 중 그리스 나섬학교라는 이름에 마음이 집중되었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학교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예사스럽지 않은 나섬학교라는 이름에 하루 종일 생각을 미루어 두었다. 그리고 지금 늦은 시간임에도 나는 계속 그리스 나섬학교라는 몇 글자의 단어에 생각이 집중되어 있다. 왜 나는 그 말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난민선교학교가 아닌 그리스 나섬학교다.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그 몇 글자의 차이를 나는 예사스럽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책임과 사명감 때문이다. 그저 난민을 선교하는 사역이 아닌 나섬의 새로운 사역임을 자각하면서 그리스 나섬학교라는 이름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또 한 번의 결단이 필요한 때일지도 모른다는 부르심 때문이다. 나는 또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일까?

 

 

그리스 나섬학교를 생각해 본다.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까? 누가 어떻게 이 사역을 이끌고 갈 지부터 복잡한 비전을 현실로 바꾸려는 마음이 드니 내 가슴에선 벌써 작업이 시작된다. 이미 나는 결심하고 있었던 거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운명적으로 본능적으로 이 그리스 나섬학교는 우리가 할 일임을 알았던 거다. 유바울 선교사가 그리스 나섬학교라는 말을 하는 그 순간에 나는 이미 순종을 결단하고 있었다.

참으로 빠르고 이상한 일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것일까? 계산도 하지 않고 복잡하고 미묘한 그 엄청난 사역에 대한 결단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일까? 누군가와 상의하고 더 오랫동안 생각하고 또 확인하고 나서도 될까 말까 하는 그 큰 사역을 왜 나는 단순하고 바보같이 결단하고 있는 것일까?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기에는 나 자신 이미 나이를 먹었다. 지금까지도 꽤나 많은 일들을 해왔음으로, 이미 충분히 할 일을 했음으로 굳이 그리스 나섬학교를 거부한다 해도 시비할 사람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리스 나섬학교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 말을 가슴에 새겨버렸다. 운명같은 만남이다. 거부할 수 있지만 거절하기 싫은, 피할 수 없는 사명이다. 몽골학교를 시작할 때처럼, 필리핀 행복학교를 시작할 때처럼 그리고 탈북청년들과 담쟁이 학교를 시작할 때처럼 나에게 그리스 나섬학교는 그렇게 다가온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나는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아래 디오니소스 카페에서 박금미 선교사를 만났다. 며칠 동안 생각하고 결정한 것을 나누기 위함이었다. 박금미 선교사는 다리가 아파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상황임에도 아침 일찍 아크로폴리스 주차장에 나와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레오바고 언덕에 잠시 다녀와서 박선교사와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디오니소스라는 카페는 분위기가 좋은 곳이었다. 오래전 파르테논 신전이 바라보이는 곳에 세워진 카페다. 커피맛도 일품이었다. 이곳이 디오니소스 카페다. 왠지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디오니스소적인 느낌을 준다.

그리스 나섬학교는 난민들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여야 함을 이야기 했다. 박선교사도 아멘으로 응답했다. 자신의 사역이 그쪽이라며 무척이나 감격해 했다. 박선교사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그녀는 스위스에서 30년 동안 간호사로 일했다. 38세 던가 어느 목회자와 결혼을 할 뻔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하늘의 뜻이 아니었던지 그 결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결혼은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아이들에 대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 한다. 난민들의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사역이 그 방향이라 고백했다. 그녀는 무척이나 단순하고 순수했다.

헤어지기 직전 박선교사는 내손을 붙잡고 울먹이듯 이야기를 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파르테논이 보이는 디오니소스 카페에서 박선교사는 내손을 붙잡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처음 나를 만났을 때 내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었다고 한다. 왜 하나님이 유목사와 같이 하나님의 일을 나서서 하는 이의 눈을 가지고 가셨는지 모르겠다며 원망 섞인 물음을 물었다 한다. 그러나 짧지만 몇 번의 만남을 통하여 이젠 알 것 같다며 이야기 한다. 눈이 아니라 마음이 소중하다고. 육체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오히려 더 깊고 소중한 것을 바라볼 수 있게 하시려고 그러신 것이라고 말이다. 나도 그녀도 그렇게 헤어졌다. 내 손을 잡은 그 느낌이 따뜻했다. 박선교사에게 그리스 나섬학교를 맡겨도 좋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박선교사의 순수와 헌신성이라면 그리스 난민들의 아이들은 행복할 수 있겠다 싶다. 마음이 편해졌다. 며칠 동안 생각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던 것들이 편안하게 마무리되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디오니소스 카페에서 그리스 나섬학교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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