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자유게시판

> 몽골 > 자유게시판
   
귀국자 몽골 디아스포라들의 본국 교회 개척

귀국자 몽골 디아스포라들의 본국교회개척
이 해 동

1. 들어가는 말
현대사회의 특징 중의 중요한 부분은 이동성, 세계화, 정보화이다. 이러한 부분이 요약과 압축되어 사람의 부분에 적용되는 것은 바로 디아스포라이고 그러하기에 현대는 디아스포라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디아스포라시대를 살아가면서 디아스포라 사역에서 매우 중요한 목표가 있다. 그것은 디아스포라들이 타국에서 예수님을 믿고, 자신의 본국으로 돌아가서도 신앙생활을 지속적으로 연결해가고, 교회도 개척하고, 사역자가 되거나 선교사적 삶을 살아가 하나님나라 확장을 위해서 군사로 세워지는 것이다. 디아스포라 사역에서 매우 중요한 목표 중의 한 가지가 바로 귀국자 디아스포라들이 본국에서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다.

로잔의 디아스포라 분과위원장인 에녹 완은 디아스포라 사역의 선교단계를 3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1단계는 mission TO diaspora, 2단계는 mission THROUGH diaspora, 그리고 3단계는 mission BY/BEYOND diaspora이다(Wan, 2011: 6). 이러한 구분에 의할 때, 2단계인 mission THROUGH diaspora에 해당하는 것이 본국으로 귀국한 귀국자 디아스포라들에 의해서 교회가 본국에 개척되는 것이다. 즉 디아스포라사역을 논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한 축으로서 본국에 귀국한 디아스포라들이 본국에 교회를 개척하는 것인데 이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례도 많지 않다. 그러하기에 1998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재한몽골인들의 귀국자들의 몽골교회개척의 사례는 귀중한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라 하겠다. 몽골에서의 귀국자 몽골교회개척은. 최근에 귀국자 몽골인 디아스포라들의 교회개척에 관한 연구는 이명희 박사에 의해서도 이루어졌다(Lee, 2012).

현재 몽골본국교회는 5가지 유형(이해동, 2013: 146)으로 나눌 수 있고 그 유형은 다음과 같다. 1)서양 선교사들이 개척에 직간접영향을 끼친 교회, 2)한국인 선교사들이 영향을 끼친 교회, 3)몽골인들이 개척한 도시형교회, 4)몽골인들이 개척한 시골형교회, 그리고 5)귀국한 몽골디아스포라들이 개척한 교회이다. 여기에서 귀국한 몽골디아스포라들이 개척한 귀국자 몽골교회가 몽골본국교회에서 중요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은 괄목할 만한 현상이라 하겠다.

재한몽골인들이 귀국해서 몽골본국에서 교회를 개척했다는 것은 몽골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본격적인 현대 몽골선교는 1990년대 초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20여년이 지난 현재는 몽골국가 전체에서 교회가 약 470여개이고, 몽골기독교인은 약 3만 4천명으로 추산된다.1) 이들 중에서 한국에서 돌아간 몽골사람들이 세운 교회는 30여개로 파악되고 있다. 이는 몽골의 전체 교회의 숫자(470개)중 귀국디아스포라에 의해 세워진 교회의 6.8%에 해당되는데, 이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더불어, 재한몽골인이었다가 귀국한 디아스포라들이 몽골에서 가장 오래된 신학교인 UBTC에 매년 몇 명씩 입학하고 있다. 이 입학생들의 숫자는, 몽골교회에 사역자가 절대 부족하여 몽골교회 전체 현지인 목사의 200명 정도인 현실을 감안한다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몽골신학교 입학생들 대부분이 돈과 성공을 위해서 한국에 왔지만, 예수를 믿은 후 변화되어 인생의 목적이 돈과 성공으로부터 예수님으로 바뀐 사람들이다. 이들의 연령은 대부분 20대 후반 혹은 그 이상(몽골에서는 중년에 해당하는 나이)의 나이에 몽골에서 신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귀국한다는 것은 참 은혜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재한몽골인들이 사역자로 헌신되어 돌아갔고, 귀국자 디아스포라에 의해 세워진 교회와 그들의 헌신된 사역들은 많은 분야에서 몽골본국교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본고에서는 디아스포라사역에서 그 동안 논의되지 못했던 부분인 귀국자 디아스포라들이 본국에서 교회개척과 관련된 부분의 서설을 제시하고자 한다. 본고는 한국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몽골본국으로 귀국해서 교회를 개척한 경우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렇기에 본고는 첫 번째 한국에서의 재한몽골이주민사역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 볼 것이다. 왜냐면 여기서 귀국한 몽골인들이 교회를 세웠기에 재한몽골인 사역의 단계와 역사가 귀국몽골교회의 개척과 밀접하기 연관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귀국자 몽골 디아스포라들의 본국에서의 교회개척의 역사를 고찰해 보고, 결론으로 귀국자 몽골 디아스포라 교회의 향후 방향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2. 재한몽골인 디아스포라사역의 역사2)
필자는 재한몽골인 사역의 역사를 1996년부터 현재까지를 태동기, 성장기, 표출기, 그리고 성숙기인 4기로 나눈다. 이는 본국교회 개척과 연결된다.

2.1. 태동기(1996년부터 2000년까지)
재한몽골인 사역의 시작은 1990년대 초반에 한국교회들이 교회에 몰려오는 몽골인들 때문에 산발적인 사역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실제로 서기원 목사의 경우, 1990년대 초반에 부천지역의 한 교회에서 몽골사역을 했으나, 교회 차원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사역이라 볼 수 있다. 재한몽골인 예배가 시작되거나 재한몽골인을 위한 교회가 개척된 때를 재한몽골인 사역의 시작이라고 정의한다면, 재한몽골사역의 공식적인 시작은 1996년이라 볼 수 있다. 재한몽골인 사역의 첫 번째 교회는 서울외국인노동자선교회(현재의 나섬교회: 유해근 목사)로 성수동에서 시작되었다. 이어서 같은 해인 1996년도에 온누리교회 몽골예배, 주안장로교회 몽골예배가 시작되었다. 지난 20년 동안 다민족 외국인사역을 모범적으로 해오고 있는 주안장로교회의 경우, 그 사역의 첫 걸음은 몽골인 사역이었다. 교회에 찾아온 소수의 몽골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모임으로 시작된 몽골사역이 정착되고, 점차적으로 주안장로교회는 다민족·다문화 디아스포라 사역을 감당하는 교회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 것이다.

같은 시기의 사역은 한국인들이 교회에 온 몽골인들에게 예수님를 영접시키고 세례를 주는 것에 집중되었었다. 당시 재한몽골인들의 90%가 불법체류자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한국 정부와 단체들로부터 소외된 도움과 필요가 충족되는 것, 교회에서는 일하는 공장과는 다른 섬김과 대접을 받는 것, 멋진 건물인 교회에 출석하면서 나름 외국인으로서 한국사회의 어디엔가 소속되는 것 등은 이들을 교회에 나오게 했던 주요 요소들이다. 실제 몽골인들과 한국인들을 연결하는 실질적인 접촉점은 긍휼사역이었으며, 그 접촉 장소는 교회였다. 실례로 당시 몽골인들은 서울외국인선교교회(유해근 목사)를 ‘너거니 아르븐 두르(녹색의 14번)’로 불렀다. 그 이유는 지하철 2호선의 표시색이 녹색이고 강변역이 숫자로는 14번이기에 한국어를 잘 못하는 몽골인들 가운데 2호선 14번역에 있는 교회에 가면 도움을 받는다고 알려진 것이다. 이 당시 교회 자체가 몽골인에게 중요한 관심사도 교회이름을 한국식으로 어렵게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고, 따라서 교회를 다녀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가 매우 많았다. 이 시기의 몽골사역을 했던 대표적인 교회들은 서울외국인노동자선교교회(96), 중현교회(96), 온누리교회(96), 주안장로교회(96), 게르방교회(97), 장충교회(98), 한양교회(98), 갈릴리교회(99), 충현교회(99), 공촌교회(99)이다(괄호안의 숫자는 개척년도 또는 사역시작년도).

2.2. 영적성장기(2001년부터 2007년까지)
성장기인 2기의 특징은 사역내용이 긍휼사역에서 영적운동으로 변환되는 시기이며, 재한몽골인들이 신분적으로 2003년 여름을 기점으로 합법화가 이루어진다. 태동기의 재한몽골인사역의 중심 역할을 나섬교회(구 서울외국인선교교회)와 충현교회가했지만, 성장기에는 몽골인사역의 구심점과 중심 역할이 디엠엔(Diaspora Mongolian Network)으로 옮겨졌다. 디엠엔이 2001년에 발기인총회를 시작으로 몽골성경책을 구하기 어려운 시기에 몽골성경을 한국에서 보급시켰고, 재한몽골인들의 현실에 부합하도록 상황화시켜 자체 제작한 한·몽대역 성경공부교재보급과 훈련, 영성수련회, 연합예배, 리더훈련과정(디사이플스쿨, 비젼스쿨)을 통해서 자발적으로 십일조를 하는 몽골인들로 변화되어졌다.

2001년 디엠엔의 조사에 의하면, 재한몽골인 교회는 28개이고 교회 평균출석인원이 756명, 최대출석인원이 1,330명이었다. 이는 당시 재한몽골인 약 15,000명 중에서 약 7%가 교회를 출석하는 사람이었는데, 당시 설문조사에 의하면 교회 출석하는 몽골인들 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이 35%였지만 2009년 조사에는 9%이다. 이는 신앙의 질적인 부분에서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던 시기이기에 재한몽골인 사역의 영적 성장기라 할 것이다.

2.3. 표출기(2008년부터 2011년까지)
표출기인 3기는 성장기에 축척된 영적에너지가 표출되는 시기이다. 3가지로 표출된다. 첫 번째는 몽골인에 의한 교회개척이다. 몽골제자교회가 바야르마 목사(충현교회 출신, 장신신대원졸)에 의해 2008년 1월 장안동에 한국의 개척교회가 폐쇄되어진 자리에서 개척했다. 이전에는 반독립적인 형태로 몽골인교회가 존재했었으나 재정을 포함한 모든 부분에서 완전한 몽골인들의 자립에 의한 교회가 개척되었다. 또한 2011년3월에는 수흐바타르 목사(충현교회출신, 아미신학교, 갈릴리교회사역)는 하비스트 신학교를 개교했지만, 학교는 2013년 2월에 폐교되었다. 두 번째는 디엠엔이 몽골나담축제를 한·몽수교 20주년기념행사로 연세대에서 6천명(한국체류 몽골인 약 3만 명 중 20%가 모임) 규모로 2010년 7월에 개최하고, 몽골선교 20주년 기념행사를 2011년 11월에 2천명이 모이는 행사를 주관했다. 세 번째는 한국에서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몽골로 대거 귀국해서 여러 형태의 귀국자 디아스포라 교회를 몽골에 개척했다.

태동기에는 영접과 세례가 중요했고, 성장기에는 십일조(돈을 벌기위해 온 몽골인에게 십일조는 생명과 같은 돈이기 때문에)가 신앙 성숙도를 평가하는 주요 기준이었다면, 표출기에는 몽골인 신자들의 내면의 영적성숙이 중요 관심사가 되었다. 겉으로 나타나는 것보다는 그들의 내면의 상처들이 예수님으로 치유되고, 회복되고, 나아가서는 그들이 신앙인으로서의 세계관을 갖게 되는 것이 성숙의 기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2.4. 성숙기(2012년부터 현재까지)
성숙기에는 한국인과 몽골인의 연합이라는 대명제를 기구로서 표출하게 된다. 2012년 5월에 60여 교회를 대표하는 재한몽골기독교연합회(Mongolian Christian Association in Korea)의 창립총회가 있었고, 대표는 렌첸어치르 목사, 부대표는 이해동 목사, 총무는 뭉흐바타르 목사를 선출했고, 9명의 대표위원회(6명 몽골인, 3명 한국인)가 구성되었다. 이 시기에는 선교에 초점을 두었고, 2012년 9월에 YWAM과 DMN이 공동으로 주최하여 선교몽골대회를 열고 선교 헌신자들을 모집했다. 대회 동안 해외에서 사역중인 몽골인선교사들 20여 명과 몽골인들이 참석했고, 이들 중 60명이 Mission Perspectives 훈련을 수료하는 성과도 있었다. 성숙기에 훈련된 재한몽골인들을 시작으로 더 많은 몽골 디아스포라 성도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몽골 디아스포라들과 타민족을 위한 선교사들로 준비될 수 있길 바란다.

3. 귀국 몽골인 디아스포라들의 몽골에서의 귀국자 교회개척 역사
귀국한 몽골인 디아스포라에 의한 교회개척의 역사는 3기로 나눌 수 있다. 태동기, 협력적 교회개척기, 독립적 교회개척기이다. 재한몽골인 역사와 몽골 본국에서의 귀국자 몽골교회개척은 한 개의 축으로 연결된 두 개의 바퀴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재한몽골인교회의 역사와 더불어 귀국자 몽골교회의 역사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3.1. 태동기(1998년부터 2002년 6월까지): 한국인 선교사들에 의한 교회개척과 손님으로서의 몽골인
태동기의 귀국자 교회의 특징은 재한몽골인사역 첫 단계에서 한국에서 예수님를 믿고 귀국한 몽골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인 선교사가 몽골에 개척했다는 것이다. 최초의 귀국자 디아스포라 교회는 1998년 서기원 목사에 의해서 개척된 오마르딩 천산교회이고, 두 번째 교회는 조유상 목사가 1999년에 개척한 울란바타르 선교교회다. 2002년 2월에는, 몽골귀국자들의 몽골현지교회 정착을 돕기 위해서 DMN에서 하인화 선교사가 파송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귀국자 몽골인 디아스포라들은 한국에 있을 때 단지 필요를 채움 받기 위해 교회를 다녔고 신앙이 견고하지 설 수 없었던 재한몽골사역의 태동기의 산물로, 귀국 후 몽골교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따라서 당시 몽골 본토의 한국인 선교사들은 귀국 한 재한몽골인 신앙인들이 자신의 교회에 오는 것을 그리 반가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늘 많은 도움을 주고 필요를 충족시켜 주었던 한국교회에서 돌아온 귀국노동자들이 본국에서 사역하는 한국인 선교사들도 그러하리라고 기대하며 교회에 갔지만, 선교사들은 그러한 필요를 충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당시 귀국 몽골인들의 중요한 관심사는 다시 한국으로 나갈 수 있도록 비자를 받는 것이고, 이들은 한국 선교사가 한국에서 불법체류로 있던 이들을 위해 신원보증을 해 주기 바라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한국교회에서 늘 섬김만 받았던 그들이 직면한 몽골본국의 교회 상황은 오히려 그들이 재정적, 영적으로 직접 섬겨야 하는 상황이었고,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인들이었던 그들이 이 상황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부분의 경우는 자연히 한두 번 교회에 나오는데 그치거나 한국에서와 같이 필요할 때만 교회에 오는 손님 신앙인의 수준이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지인이나, 다니던 교회에서 단기선교팀이 방문했을 때 또는 한국 생각이 나는 경우에만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오마르딩천산교회나 울란바타르선교교회의 경우까지도 귀국자 몽골인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교회에 귀국자가 아닌 현지인들이 주 구성원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가운데에도, 서기원 목사에 의해 개척된 오마르딩 천산교회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귀국디아스포라 멤버들 중, 몽골 사역자 두 명이 배출되었다.

3.2. 몽골인과 한국인의 협력적 교회 개척기(2002년 7월부터 2008년 8월까지)
이 시기의 특징은 재한몽골사역에서 성장기에 해당되는 몽골사람들이 몽골로 돌아가서 단순히 교회의 손님이나 단순 방문자요 구경꾼의 위치가 아니라 귀국한 몽골인 자신들이 직접 몽골인 자신들의 교회를 2002년 7월에 처음 개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뭉힝앰교회는 귀국자 몽골인에 의해서 몽골에 개척된 최초의 교회이다. 이 교회의 개척자인 바야르마 목사는 몽골에서 국립사범대를 졸업하고 선생님으로 재직하다가 한국으로 돈을 벌기위해서 와서 살다가 대구에서 처음 복음을 접했고, 충현교회에서 양육을 받으면서 신앙이 성장했다. 그리고 몽골로 돌아가서 몽골의 연합신학교 입학하여 최초의 재한몽골인 귀국자 신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2002년 7월에 자신의 집에서 몽골인 교회를 시작했다. 2014년 현재, 한국에서 신앙인이 되어 귀국한 투므르목사가 바야르마의 뒤를 이어서 모범적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몽골에서 교회를 개척하는 귀국 몽골인 디아스포라들이 동일하게 극복해야하는 장벽이 있다. 대부분의 재한 몽골인들은 똑똑하고 능력이 있고 용기가 있는 자들이며, 자신들의 가족 안에서 인정받는 위치에 있고 가족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들이 한국에서 받는 월급이 당시 몽골가족에게는 거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한국에서 받는 이들의 한 달 월급은 몽골에서의 보통 사람들의 1년 생활비에 해당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경제적인 혜택을 누리며 살아오던 몽골에 있는 가족들은, 그들의 물질 제공자가 갑자기 돈 버는 일을 그만두고 몽골로 돌아와서 돈을 벌지 않고 반대로 돈을 쓰기만 하는 아무 쓸데없는 목사가 되고 교회를 개척하는 일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가족에 대한 역적행위라고 받아들인다. 바야르마 목사도 이러한 가족들의 압박을 견뎌내기 어려워서, 신학생의 길과 교회 개척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해야할 위기의 시간이 몇 번 있었다고 했다. 이러한 장벽은 교회 개척하는 사람들이 동일하게 겪는 어려움이기 때문에, 이것을 극복해 가는 과정 가운데서 귀국인 사역자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가 비즈니스가 되지 않도록 한국인 리더들이나 몽골인 리더들이 매우 조심해야 한다. 이 글에서 자세히 밝히지는 않지만, 안타까운 사례들이 실제로 있었다. 이 시기에 귀국자 디아스포라교회 개척이 가능해지고, 활발하게 했던 몇 가지 요소들을 살펴보려 한다.

첫 번째는, 교회개척중심의 한국교회의 DNA가 몽골에 전이된 부분이 있다. 사실, 귀국자 디아스포라교회 개척의 초기에는 대부분 한국인 선교사나 한국교회의 적극적인 독려와 후원에 의해 교회가 개척되었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교회개척에는 많은 부작용이 표출되었다. 이 시기에 개척되었다가 현재는 사라진 3개의 교회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이 교회들은 몽골의 1인당 GDP가 아직 1,000US$ 미만이었던 2007년 이전에 설립되었다. 이 시기 한국교회는 몽골에 이 교회들을 개척한 후, 사역자로서의 자질이 갖춰지지 않은 사람들(이들에게 교회 사역을 하나의 돈벌이로 여기는 사람들)을 세웠고 결국 교회는 문을 닫게 되었다. 두 번째는, 2003년 이후 한국의 이주노동자 정책의 변화와 불법체류자의 대규모 단속이 이루어지면서 재한몽골인들의 제1차 대거 귀국이 있었는데 이 때 많은 재한몽골 신앙인들이 귀국하게 되었다. 여기서 귀국자 디아스포라 신앙인들에 나타났던 성향을 유형별로 보기로 한다.

귀국한 디아스포라 신앙인들에게 3가지 유형이 나타났는데, 그 중 첫 번째 유형은 “그 지역 물을 마셨으면, 그 지역의 풍습을 따르라(Усыг нь уувал ёсыг нь дага).”는 몽골 속담처럼 “한국에 오면 한국의 종교는 불교가 아닌 기독교라고 인식하기에 한국에서는 기독교를 믿고 몽골로 돌아오면 불교를 믿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상황변화에 따른 종교를 바꾸는 형태의 신앙이거나 몽골에 와서는 가족과 친구들 때문에 과거의 형태로 돌아가는 경우이다. 한국에 있을 때 매번 십일조도 잘 하던 몽골 아주머니가 몽골에 가서는 몸이 아프다고 몽골의 간등사(몽골 최대의 불교사원)의 불상에 기도하고 왔다고 필자에게 개인적으로 이야기한 적도 있다.

한편, 몽골로 돌아온 귀국자 디아스포라들 중 위의 사람들과 달리 신앙인으로 자신의 세계관이 확실히 변화되어서 거주 국가와 관계없이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기존의 몽골 지역교회를 섬기거나 단순히 출석하면서 신앙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귀국디아스포라 몽골 신앙인의 제2의 유형이라 볼 수 있다. 이 유형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미드 욱’교회(몽골최대교회로 출석교인이 천명 이상 된 것도 있는)에 출석했다. 이들이 한국에서 교회에 가기를 즐겨했던 이유 중 하나는 좋은 교회 시설과 세련된 예배 때문이었는데, 몽골의 작은 교회는 이런 면에서 이들의 성향에 맞지 않았다. 따라서 건물도 좋고 자신들이 만족할 수 있는 세련된 예배가 있는 대형교회를 선호하고 대형교회의 일원으로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편안한 주일신자의 형태로 출석만 하는 귀국자 디아스포라 신앙인의 형태도 나타났다. 이와 더불어 이 유형의 귀국자 신앙인들 가운데 현지교회를 잘 섬기며 성실하게 신앙을 지켜나가는 신앙인의 모습도 나타났다.

한편 기존 몽골교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귀국자 신앙인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몽골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며 무엇인가 자신의 성향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되었다. 이들은 한국생활 중에서 독특하게 체험했던 이민 교회 안에서 따듯함, 삭막한 이민생활 중에 느꼈던 따뜻하고 정감 있는 신앙공동체 생활을 그리워하게 되었고 다시 그 분위기로 돌아가기 원하는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람들이 귀국자 신앙인의 세 번째 유형이다. 그리고 이 제3유형 신앙인들은 개인적이고 독립적이며 용감하고 새로운 땅을 향해 나아가는 개척자적인 몽골인의 성향을 십분 발휘하여 한국 내 이민교회로서 느꼈던 공동체성을 몽골에서도 유지하기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는, 재한몽골인 사역이 단순한 영접과 세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태동기에서 영적 성장기로 넘어서면서, 디엠엔의 연합예배, 디엠엔의 제자훈련학교 등을 통해 많은 재한몽골인 신앙인들이 영적으로 한 단계 성숙해지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몽골인 사역을 하는 교회들 가운데 재한 몽골인을 훈련시키고 제자화하는 사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귀국한 몽골인 신앙인들 중에 잘 훈련된 평신도 리더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들 중 다수에 제3유형의 귀국자 신앙인들이었고, 이들은 귀국자 디아스포라 교회가 세워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네 번째는 귀국자 몽골 디아스포라들이 교회를 세우기는 했지만 한국인 선교사나 목사의 도움으로 함께 동역해서 교회를 세우는 형태가 많이 있었다. 몽골의 이웰링 호르교회 경우는 2003년부터 이미 한국의 게르방교회 출신 귀국 몽골인 디아스포라들에 의해 모임이 시작되었고, 2005년에 한국교회는 안심원 목사를 몽골 선교사로 파송하여 2005년 10월에 개척예배를 드렸다. 우링어드교회는 2005년 1월에 한국의 신성교회가 한국에서 약 10년 체류하다 신앙인이 된 귀국 몽골인 디아스포라 장길마 목사(당시 신학생)와 함께 몽골에 개척한 교회이다. 또한, 2006년 서울몽골교회의 김요셉 목사가 보잉토하교회를 개척했고, 2008년 7월에 높은 뜻 숭의교회가 난자형제 가족들과 몽골에 개척한 ‘항 후슬(높은뜻초원)’교회를 귀국자 몽골 디아스포라 중심으로 교회로 세웠다.

3.3. 몽골인에 의한 독립적 교회개척기(2008년 9월부터 현재까지)
재한몽골인 역사상 재한 몽골인 숫자가 자발적인 원인에 의해 줄기 시작한 첫 해가 2008년이다. 또한 몽골의 1인당 GDP가 2,000US$을 초과한 시기가 바로 2008년이다. 몽골이 발전함에 따라서 재한 몽골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이 현상은 재미디아스포라 몽골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많은 재미몽골인들이 미국에서 몽골로 돌아오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 시기에 자발적으로 몽골에 귀국한 대규모 몽골인 디아스포라 신앙인들에게 전과 달리 교회 개척에 유리한 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 자신이 영적, 의지적, 재정적인 면에서 교회 개척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과, 그들은 이미 기존의 재한 몽골인 디아스포라들이 몽골로 귀국해서 교회를 개척했던 선례를 통하여 그들이 얻은 지식과 경험은 그들이 교회를 개척하는데 큰 도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시기에 세워진 대표적인 교회로는 한국의 갈릴리몽골교회가 귀국자 몽골 디아스포라 9명을 중심으로 2008년 9월 7일에 몽골 울란바트르에 개척한 아밍탈라흐(생명의 빵)교회를 들 수 있다. 

<표 1> 1999년부터 2014년까지 몽골인 국내 체류현황3)

상기 <표 1>을 보면 2001년에서 2002년에 재한몽골인이 감소했는데 이는 높은 불법체류율 때문에 한국정부에서 취한 조치 때문에 발생한 비자발적인 재한몽골인 감소의 결과였다. 하지만 2008년은 자발적 요인에 의해 재한몽골인의 감소가 나타난 최초의 연도이다. 이후, 재한몽골인의 감소추세선이 견고하게 형성되면서, 한국체류 몽골인의 감소가 시간이 지나면서 뚜렷하게 심화되고 최근에는 2만 4천 명 선에 머물러 있다.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고 재한몽골 디아스포라의 자발적 귀국이라는 하나의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자발적으로 몽골로 귀국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추세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인은 <표 2>와 같이 몽골의 1인당 GDP를 보면 그 이유를 추론할 수 있다. 1인당 GDP는 몽골 경제의 발전을 나타내는 지표로 파악하기에 충분하다. 2005년 이 후에는 몽골의 1인당 GDP가 확실한 증가추세를 나타내기 시작해서 2008년에는 몽골의 1인당 GDP가 2,000US$를 넘어서서 2,108US$에 이르고, 2009년에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상황으로 잠깐 주춤하다가 이후 다시 증가여 2011년에 3,000US$에 도달한다. IMF는 몽골의 1인당GDP가 2014년도에는 4,000US$, 2017년도에는 5,000US$를 넘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는 몽골의 경제 상황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몽골이 국가차원에서 국가발전전략을 몽골의 자원을 개발해서 국가를 발전시키기로 결정하고, ‘어유털고이’ 등의 몽골광산을 대규모로 개발하게 되어서 몽골 경제가 순조롭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재한몽골인들은 자신의 조국에 큰 기회의 시대가 열리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한국에 거주하게 되면 몽골 조국의 발전되는 시대상황에서 낙오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과 몽골의 임금격차가 전과 같이 크지 않게 되어 과거에 돈을 벌기 위해서 한국으로 이주했던 목적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 재한몽골인 신앙인들 역시 몽골의 발전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대거 몽골로 귀국하고 있다.

<표 2> 1993년부터 2017년까지 몽골 GDP와 1인당 GDP 추이(f: forecast)4)

이러한 귀국러시는 재한몽골인 교회들이 많이 약화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위기는 또 다른 기회가 되고 있다. 귀국한 재한몽골디아스포라들이 스스로 귀국자 교회를 개척하는 현상이 나타났으며, 이것은 하나의 흐름으로 형성되어 몽골교회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는 재한몽골사역의 측면에서는 3기에 해당하는 표출기에 해당한다. 재한몽골인들 가운데 축적되어진 영적에너지를 표출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자신들의 조국 몽골에 재한몽골인교회의 지교회나 관계교회의 형태로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사역의 트랜드가 되고 있다.

이 시기에 세워진 교회들에게 볼 수 있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귀국자개척교회의 성향이 그들이 전에 속해 있던 재한 몽골 이민교회의 영적성향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귀국자 몽골인 교회의 최초 개척자인 바야르마 목사는 2002년 7월에 뭉힝앰 교회를 개척했지만 울란바타르 몽골제자교회를 다시 10년 뒤인 2012년 7월에 개척한다. 이는 바야르마 목사의 목회 스타일이 G12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는데, 울란바타르 몽골제자교회는 G12의 성향이 나타나는 교회로 이전의 교회인 뭉힝앰 교회의 구성원들과 함께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게 된 것이다. 또한 2003년부터 귀국자 몽골인들이 자체모임을 하기 시작해서 2005년 10월 개척한 한국의 게르방교회의 현지교회인 이웰링호르(은혜의 피)교회는 그 교회에 출석하는 귀국자 몽골인들 중에서도 성향이 같은 사람들의 그룹이 조성되어 갈라목사를 중심으로 ‘게르방교회’라는 이름의 또 다른 교회를 2014년 1월에 다시 시작했다.

둘째, 제3기에는 한국인 선교사나 목사가 몽골에 교회를 개척에 간접적으로 관여하게 되지만 직접적인 관여는 없었다. 즉 1기 태동기에는 서기원, 조유상 목사에 의해서 두 교회가 개척되었고, 2기에는 4개 교회가 한국인의 직접적 관여에 의해 개척되었다. 이웰링호르, 우링어드, 보잉토하, 항 후슬교회가 네 개 교회인데, 2008년 7월에 개척한 ‘항 후슬(높은뜻초원)’교회가 한국인이 귀국자 몽골 디아스포라들의 교회 개척에 직접적인 관여한 마지막 경우이다. 즉, 이제 3기에는 한국인들이 권면하거나 관여하지 않아도 몽골인들이 스스로 적극성을 띠고 교회를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제 2기에는 귀국한 몽골 디아스포라 신앙인들이 한국교회의 재정적 후원을 받아서 교회를 개척하는 경향이 많았으나, 제 3기에는 귀국한 몽골인 디아스포라들이 교회개척에 관하여서는 한국인들의 재정적인 영적인 도움이 없어도 얼마든지 그들이 독립적으로 교회를 개척할 수 있는 영적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갈릴리교회와 연결된 몽골의 ‘아밍탈라흐‘ 교회는 한국교회의 후원이 전혀 없이 교회가 개척된 것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깊다 하겠다. 이는 재한몽골인 선교역사에서도 중요한 변곡점인 동시에 교회개척에서 완전한 독립이 선포되는 시기인 것이다.

사실, 2008년 이후에는 몽골의 기독교계의 확장세가 전체적으로 주춤하는 시기를 맞고 있었는데, 이러한 시기에 귀국한 재한몽골인 신앙인들이 몽골기독교계에 새로운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며 긍정적인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산시키는 시기였다.
<표 3> 재한몽골인 사역과 귀국자 몽골인 디아스포라 교회 개척사

4. 나가는 말: 귀국 몽골인 디아스포라 교회개척의 미래
1998년 처음으로 귀국자 몽골인 디아스포라를 위한 교회가 한국인에 의해서 개척되었던 1기인 태동기를 거치고, 2002년 7월에 귀국자 몽골인 디아스포라인 바야르마 목사(당시 신학생)가 교회를 개척하는 2기인 몽골인 교회개척기를 지나기까지는 교회 개척과 관련되어서는 한국인과 몽골인들의 협력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드디어 3기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귀국자 몽골인 디아스포라들에 의한 귀국자 교회개척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직 눈에 보이도록 드러나지는 않아 몽골의 기독교계가 미처 인식하지 못 하지만, 귀국자교회의 영향력은 점점 몽골교계에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2014년 현재의 귀국자 몽골인 디아스포라들에 의해서 교회개척이 이루어진 교회들의 특징들을 살펴보고, 디아스포라선교의 관점에서 향후, 귀국자 디아스포라교회에 나아가야 할 방향과 역할을 간략히 논하면서 본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첫 번째 특징을 보면 몽골의 귀국자 디아스포라 교회는 새로운 모습으로 전환되고 있고, 그 유형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불법체류자와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귀국자교회의 개척이 이제 세 방향으로 구분되어 확대되고 있다. 첫째, 2012년 4월에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몽골인들에 의해서 ‘우링슈드르(새벽이슬)’교회 개척이 이루어졌는데 재정도 몽골인들이 담당한 완전히 독립된 귀국자 교회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귀국 몽골인 유학생들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더라도 경제가 발전하는 몽골에서 취업이 가능하고 중산층으로 살아가게 되고, 이들의 십일조로 교회를 유지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들은 한국에서 영적인 훈련도 받았기에 자치, 자립, 자전이 가능한 교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교회가 앞으로 많이 개척되고 몽골에서도 직업과 직장에서 하나님 나라를 고민하는 신앙인들이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 또 다른 형태의 교회개척이 있다.

둘째, 신학생들에 의한 교회개척이다. 기존에는 한국에 노동자로 왔다가 돌아간 사람들이 교회를 개척했지만, 최근에는 신학교에 신학을 배우려고 한국에 왔다가 몽골로 돌아가서 교회를 개척한 전도사나 목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기존에는 귀국교회개척이라 하면 재한몽골인이주노동자들 출신의 귀국자들이 울란바타르에서 개척하는 것을 의미했지만, 이제는 유학생 출신과 신학생 귀국자들에 의한 울란바타르에서의 교회개척과 시골에서의 교회개척으로 그 유형이 다양해지고 영역이 확대되는 양상이 표출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13년에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형제가 시골지역인 홉스골(몽골 기독교 상황이 매우 열악하고 무당과 샤머니즘이 강해서 교회개척이 어려운 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했는데, 이는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셋째, 2008년 이후 사역자로 헌신한 귀국자 디아스포라들이 몽골기독교계에 사역자 공급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재몽한인선교사들의 철수로 인해 비어가는 사역자의 자리를 재한몽골인 귀국자 디아스포라들이 채우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재한몽골인 출신의 귀국자 디아스포라들의 가지고 있는 영적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몽골기독교계로 파급되고 있으며, 그 효과는 주목할 만하다.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몽골인들이 지속적으로 배출될 것이며, 한국에서 새로이 예수를 믿고 헌신하는 사람들 역시 계속해서 생길 것이고, 재한 몽골인 사역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안장로교회나 장석교회처럼, 아직은 몽골에 귀국자교회를 세우지는 않았지만 교회개척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는 교회들이 있다는 사실도 주지할 일이다.  

두 번째는 귀국자 신앙인과 몽골 본토의 신앙인의 구성 비율에 관한 문제이다. 현재 몽골에 존재하는 30여개의 귀국자 교회들에게 있어서 이 구성 비율은 교회의 지속적인 성장에, 그리고 교회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에도 중요하고 기본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태동기에 개척된 교회인 오마르딩천산교회와 울란바타르선교교회는 이제 더 이상 귀국자 디아스포라 교회가 아닌 현지인 교회로 취급된다. 또한, 개척된 지 1-2년 밖에 안 된 귀국자디아스포라교회들이 어떤 모양으로 한국교회와의 관계를 지속할 것인가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재한몽골인교회와 관계가 지속적으로 잘 유지되는 귀국자 교회에는 귀국자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순환이 가능하지만, 반면 그 순환이 단절되는 현상들도 발생할 수도 있다. 개척된 귀국자 교회 안에 한국생활경험자인 귀국자와 몽골에서 전도된 지역 신앙인들이나 그 가족들의 구성 비율이, 언제쯤이면 50:50이 될 것인지, 또 얼마나 지나서 그 비율이 역전이 되어, 본토 신앙인이 다수를 이루게 되느냐에 따라서, 교회의 성격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목회적 돌봄과 사역의 방향이 결정될 수 있다.

세 번째는 지속적으로 귀국자 교회의 목사나 리더들을 위하여 상황에 맞는 훈련과 교육이 중요하다. 현재 30여개 의귀국자 교회의 사역자들은 한국적 교회 스타일에 익숙한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재교육과 영적인 도전을 통하여, 사역자들이 목회 현장에서 발생하는 난제들을 새로운 사역 상황 안에서 다룰 수 있도록 돕고 네트워크를 통하여 연합하고  기도하며 함께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비전과 사역 목표를 어디에 둘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가 단순한 제자양육이나 양적성장을 목표로 하거나, 교회의 외형적 건축을 위한 교회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선교적인 교회가 되는 목표를 가질 것인가? 지금부터 교회의 정체성과 교회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하여 고민해야 한다. 에녹 완(Enoch Wan)이 말하는 디아스포라 선교 방법 중 ‘디아스포라를 향한(to) 선교’의 단계는 재한몽골인 사역을 통해서 잘 이루어졌고 2단계인 ‘디아스포라를 통한/의한(through) 선교’의 단계로 몽골인귀국자 디아스포라 통하여 의해서 몽골에 30여 개의 귀국자 교회들이 30여개 개척되었다. 마지막으로 ‘디아스포라를 넘어선(beyond) 선교’ 단계를 위해 몽골의 귀국자디아스포라교회들이 선교하는 교회로 세워져 가길 기대한다.

원래 유목민족인 몽골족들이 돈과 공부와 성공을 위해서 한국에 왔지만 예수님을 믿고 이제는 몽골 본토에서 몽골인에 의한 귀국자 교회를 이루었다. 앞으로 남은 것은 몽골인들에 의해서 선교가 자치, 자립, 자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하나님 나라의 도래의 또 한 가지 실현인 것이다. 2012년에 우링슈드르 교회를 개척한 림베형제는 한국에 한진그룹 장학생으로 왔다. 바닷가에서 가졌던 YDMN에 야유회에 참석하면서 처음 교회에 왔다. 여학생을 보려고 왔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그러나 자신은 바다에서 낚인 고기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변화되고 제자가 되었다. 그가 돌아가면서 한 말이 있다. 한국에 올 때는 혼자 왔다. 그러나 돌아갈 때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서 같이 돌아간다. ‘하나님과 함께..’ 라는 고백을 하고 돌아가서 몽골에 교회를 개척했다. 그리고 몽골에서 회사도 성실하게 잘 다녔고, 2년간 교회를 개척해서 잘 섬겼고, 이제는 미국에 MBA로 가려고 원서를 접수하려고 하고 있다. 미국에서 학교선택의 중요기준 중의 하나는 미국에도 몽골인은 많은데 몽골교회가 없는 곳에 가서 미국에서도 몽골교회를 개척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

참고문헌
이해동. 2013. 『재한 몽골인 이주민 사역의 역사와 전망: 한국 내 이주민 사역의 현재와 미래』. 기독서원하늘양식.
Lee, Myunghee. 2012. ‘Mongolian Migrant Mission: Case Studies in Korea and in Mongolia through the Returned Migrant Worker Churches’. Ph.D dissertation, Trinity International University.
Wan, Enoch. 2011. ‘Diaspora missiology: Theory, Methodology, and Practice’. Institute of Diaspora Studies.
http://www,immigration.go.kr(검색일: 2014년 5월 20일)
http://www.imf.org(검색일: 2014년 5월 21일)

각주-
미국의 한 단체에서 2012년부터 몽골 기독교계의 현황을 자세히 조사하고 있다. 2014년 말경에는 최종보고서 발표를 목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중 중간 결과는 비공개자료이기는 하나 현재 몽골교계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로서 가치가 있기에 기준으로 삼고자 한다. 현재 몽골교회 수는 470여개이고, 이중 201개 교회가 울란바타르에 있다. 몽골의 전체 기독교인은 약 3만 4천명으로 중간 집계 되었다.
  본 장의 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이해동, 2013: 133-159).
  출입국관리사무소 사이트 참조(http://www,immigration.go.kr).
  2014년 5월 현재 IMF(http://www.imf.org)자료. 



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