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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유해근]우리도 한때 ‘외국인 근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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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5-01-16 22:45]  



[동아일보]
내가 외국인근로자 문제에 뛰어든 지 13년이 됐다. 처음 서울 구로공단에서 활동하던 때, 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전무했고, 그들을 돕는 사람들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외국인근로자들의 환경은 최소한의 생존권도 보장받지 못할 만큼 열악했다. 임금체불과 산업재해는 말할 것도 없고, 심각한 인권유린의 사각지대에서 살아야만 했다. 처음 나는 그게 우리가 ‘타인’과 더불어 살아본 역사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소한 이방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서라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 나는 13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외국인근로자들을 돕고, 그들의 자녀를 위한 학교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세상은 많이 변했다. 정보화와 세계화가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지게 되었다. 국경이 없어지고, 세계인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세상이 됐다. ‘우리’만의 폐쇄적 태도로는 국제사회에서 생존할 수 없는 개방된 세상이 됐다.

사람들은 영어도 잘하고, 컴퓨터도 잘한다. 정말 정보화가 되고 국제화가 된 것처럼 보인다. 예전에 비하면 너무도 세련되어 있고 깨어 있는 세계 문명인이 된 것처럼 보인다.


▼이방인에 냉혹한 사회▼


세상이 변한 것만큼 사람들의 의식과 생각도 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우리는 작은 부(富)는 이뤘을지 몰라도 아직 진정한 세계인은 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전히 외국인근로자들에 대한 차별과 인권유린이 서슴없이 자행되는 원시적인 이기주의가 지배하는 사회가 바로 우리 사회라는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최근 경기 안산시의 어느 공장에서 자신도 모르게 마비되어 가는 몸뚱이를 매만지면서 절망하는 외국인근로자들의 얘기가 논란되고 있다. 그런 일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잔인한지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우리가 하기 싫은 일을 대신해 주는 그들을 향해 우리는 어떤 마음을 품고 사는가. 그들을 나하고는 다른 존재인 것처럼 얕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동물을 바라보듯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나와 똑같은 인간이다. 차별받거나 학대받아서는 안 되는, 나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냉대하는 것은 내가 얼마나 콤플렉스가 많은 불행한 존재인지 스스로 드러내는 자기모순의 반복이다.

성경은 ‘너희는 나그네를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급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고 말씀한다. 과거 수많은 우리 형제자매가 이국땅에서 나그네 신세로 품팔이를 했고, 지금도 적지 않은 이가 밖에 나가 있다. 우리가 나그네가 됐을 때를 생각하면 오늘 우리와 더불어 살아야 할 이방인들을 이리 대할 수는 없다. 이것은 죄다. 우리 모두의 죄다.


우리는 아직 멀었다. 진정한 세계화는 물질의 풍요가 아니라 인간성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중국 동포들도 제대로 돕지 못하면서 어떻게 통일을 할 것이며, 이 땅에 찾아온 이방인들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못하면서 우리가 사람으로 살기를 바라는가.

▼인격부터 세계화 돼야▼

외국인근로자를 보면 우리 사회가 보이고 내가 보인다. 우리는 이방인 나그네를 대접하는 만큼의 수준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도 사람으로 살기엔 멀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우리의 존재를 비추는 거울이며 내 삶의 깊이와 무게를 판단하는 잣대이다.

아직 우리는 너무 얕고 가벼운 존재들임을 고백해야 한다. 부자가 되기보다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대접할 줄 아는 인간이 되는 것이 성숙한 세계인이 되는 것이다.



유해근 서울외국인근로자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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