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들려는 몽골 평화캠프는 통일을 준비하는 베이스캠프다. 베이스캠프는 목적지까지 도달하기 위하여 중간지점에 만드는 임시 캠프다. 임시 캠프이기 때문에 가건물을 짓고 잠시 머물거나 밥을 해먹고 쉬면서 정상 도전을 준비하는 곳이다. 임시 캠프 혹은 가건물이라는 말은 그래서 한시적이며 제한적이다. 선교지는 그런 측면에서 베이스캠프다. 하나님나라가 완성되면 우리가 만든 선교지 혹은 모든 교회는 사라지게 된다. 모두 베이스캠프로서의 역할을 다했기 때문이다.
네팔에 가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일명 ABC라 불리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래킹 코스가 있다. 히말라야 트래킹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히말라야 곳곳에 베이스캠프까지 다녀오는 코스를 개발해 놓고 있는 것이다.
히말라야는 대부분 해발 8000m 이상의 고산들이다. 말이 8000m이지 실제로 그 산을 오른다고 하면 엄두도 내지 못할 큰 산들이 네팔 곳곳에 숨겨져 있다. 나는 지난 2013년 12월에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와 포카라를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포카라의 예쁜 호숫가 뒷동산엘 올라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도 나는 거의 기절할 뻔 했었다. 그만큼 힘들었다는 말이다. 포카라 호숫가는 매우 아름다운 호수다. 히말라야의 고산들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히말라야의 눈이 녹아 흘러들어 만들어진 호수이니 얼마나 아름다울까? 나는 그 호숫가에서 배를 타고 멀리 보이는 히말라야의 고산들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엄청난 산들이다. 네팔 사람들은 보통 5000m가 넘는 산이어야 산이라 부른다. 그들에게 그 이하의 산은 산이 아니라 언덕인 것이다. 우리의 개념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공동체에서는 수년 전까지 외국인들과 함께 매 년 두 번씩 국토순례라는 행사를 가졌었는데 한 해는 설악산에 간 적이 있었다. 외국인들에게 울산바위까지 다녀오라고 시간을 주었더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악산 아래에서 사진이나 찍고 돌아오는데 반해 네팔인들은 울산바위까지 단숨에 갔다 오는 경우를 보았다. 100m 달리기 시합하듯 그들은 그대로 달려 산을 오른다. 우리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네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이건 산이 아니란다. 자기네 마을에서 울산바위는 앞산만도 못한 작은 언덕이란다.
그런 네팔 사람들도 8000m급의 히말라야를 한 번에 오를 수는 없다. 그만큼 히말라야는 크고 거대하며 인간의 능력 밖에 존재하는 산들이다. 그러므로 히말라야를 오르기 위해서는 베이스캠프를 만들어야 한다. 베이스캠프를 거치지 않고 히말라야에 오를 수 있는 인간은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베이스캠프다. 베이스캠프를 어디에 두는가가 히말라야를 오르는 관건이 된다는 말이다.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등반가들이 오래전에는 3000m지점에 베이스캠프를 세워 그곳에서 잠시 휴영을 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8000m의 정상까지 올랐으니 한번에 5000m를 올라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베이스캠프가 왜 3000m 지점에 있어야 하는지 의문을 갖는 이가 없었다. 그러므로 정상까지 오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1950년대까지 히말라야를 오른 유일한 사람은 뉴질랜드의 등반가 힐러리 경과 셀파 텐진 노르가이 뿐이었다. 그들 모두 3000m에 베이스캠프를 만들고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다. 히말라야에 오르기 위하여 베이스캠프를 3000m 지점에 설치하고 오를 수 있었던 사람은 역사상 오직 힐러리와 노르가이뿐이었다. 아무도 오를 수 없었다. 그렇다면 히말라야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오를 수 없다고 포기해야 하는 산인가?
아니다. 베이스캠프의 위치를 조정하면 된다. 누군가 의심을 했다. 베이스캠프는 왜 3000m 지점에만 설치해야하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결국 그는 5000m 지점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다시 산을 오르니 베이스캠프로부터 3000m만 오르면 되었다. 히말라야까지 5000m가 아닌 3000m만 남은 것이다. 지금은 6000m 지점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한다고 하니 2000m만 오르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역사는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 세상의 일에 불가능이란 없다. 미션 임파서블이다. 베이스캠프가 문제의 핵심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었다. 베이스캠프를 어느 지점에 두는가에 따라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도 늘어갔다. 베이스캠프를 5000m 이상에 세우고 난 후, 그로부터 일 년에 약 200명 이상의 등반가들이 히말라야를 올랐다 한다. 역사가 바뀐 것이다. 단 두 명밖에 오를 수 없었던 그 거대한 산도 베이스캠프의 위치를 조정하고 나니 많은 이들이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통일은 히말라야를 오르는 것과 같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등반처럼 통일의 길은 멀고 힘든 것이 분명하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통일의 정상에 오를 것인가? 나는 마치 포카라 호숫가에서 배를 타고 히말라야를 바라보았던 것처럼 오늘 멀고 거대한 통일의 산을 바라보고 있다. 어떻게 저 산을 오를 수 있을까? 포카라 호숫가 뒷동산을 오르는데도 헉헉거리던 내가 어떻게 저 히말라야보다 더 크고 높은 통일의 산을 오를 수 있을까? 그건 베이스캠프의 개념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3000m가 아닌 5000m지점에 베이스캠프를 세우자고 제안한 어떤 사람의 위대한 생각처럼 우리의 생각과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우리도 세상을 바꾸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산에 오를 수 있음을 자각하여야 한다. 어디에 베이스캠프를 세울 것인가? 왜 통일이라는 산은 지금처럼 가야만 하는가를 묻고 의심하여야 한다.
이제 나는 새로운 베이스캠프의 개념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통일을 위한 베이스캠프는 바로 몽골이다. 몽골의 평화캠프가 바로 통일을 위한 새로운 베이스캠프다.
제1 베이스캠프는 몽골, 제2 베이스캠프는 블라디보스톡, 그리고 제3, 제4의 베이스캠프까지 한 번에 안되면 두 번 세 번의 베이스캠프를 통하여 마지막 정상에 오르면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베이스캠프를 만든다. 통일의 베이스캠프다. 이주민을 섬기고 그들을 역파송하며 나아가 그들을 통한 획기적인 베이스캠프까지 우리의 베이스캠프는 다양하다. 사람을 세우는 것이 베이스캠프다. 사람을 어떻게 세우는가에 따라 베이스캠프의 역할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베이스캠프는 사람이다. 사람을 세우는 것이 통일의 산에 오를 수 있는 가장 좋은 베이스캠프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역파송하여 그들의 땅에 베이스캠프를 세우고, 우리의 탈북자들이 그곳에 모여들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과 공간의 융합이다. 제1 베이스캠프가 성공하면 두 번째 세 번째는 더 쉬워질 수도 있다.
문제는 생각을 바꾸고 도전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제1 베이스캠프를 몽골에 세우는 것이다. 누군가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통일도 그렇게 우연한 발상이 만들어 간다. 몽골에 세우자는 평화캠프가 통일의 베이스캠프다. 이곳을 딛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지금은 한번에오를 수 없기에, 어쩌면 불가능해 보이기에 우리에게는 몽골이라는 디딤돌을 통하여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자는 제안을 하는 것이다. 그곳까지는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다.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하듯 웬만한 등반가들은 그 정도는 오를 수 있다. 그렇게 훈련하고 몸을 만들면 언젠가는 정상에도 오를 수 있다. 또한 베이스캠프를 중간 중간 곳곳에 세우면 된다. 힘들면 며칠이라도 쉬면서 오르고 또 오르면 된다. 오를 수 있도록 징검다리 베이스캠프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제1 베이스캠프가 한국에 있는 몽골학교이고 두 번째가 몽골현지이다. 평화캠프와 몽골학교가 베이스캠프의 시작이다. 제1캠프는 이미 세워져 있지 않은가? 두 번째도 가능하다. 세 번째는 더 가능하다. 우리는 그렇게 정상에 올라 갈 것이다. 통일의 날에 마지막까지 남아 오를 수 있는 이가 복된 삶이 될 것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