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취급방침
오시는길

TEL : 02-446-4195
FAX : 02-458-2982

서울시 광진구 광장로 1
(광장동 401-17)
나섬교회

COPYRIGHT© 2016
NASOMCHURCH
ALL RIGHTS RESERVED.



나섬사람들 이야기

> 교회소식 > 나섬사람들 이야기
bible
   
성서와 노마드 경제1 <남기는 삶과 노마드 경제>

마태복음 25 : 14 - 30

마태복음 25장은 종말의 때에 예수께서 우리의 달란트를 가지고 얼마나 남겼느냐에 따라 책망하고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주인이 맡긴 것들을 얼마나 남겼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공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니 이 본문은 하루하루의 일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말씀이기도 하다.
남기는 삶이란 무엇인가? 달란트의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왜 남긴 자와 남기지 못한 자를 구별하여 칭찬하거나 책망하셨을까? 어떻게 남기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기독교인에게 남기는 삶이란 무엇이며 투자법은 무엇인가?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과연 어디에 투자하여 이익을 남겼을까? 반면 한 달란트를 받은 이는 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아 가진 것까지 빼앗기는 상황을 맞이한 것일까?
기독교인 된 우리는 남기는 잉여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칭찬받는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히브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위 성경 본문의 남김의 삶은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분리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유대인들의 철학으로 보면 물질적인 이익의 실현이다. 다만 헬라적인 이원론으로서는 영적인 것이라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문에 나타난 남기는 삶은 영적인 동시에 물질적인 것까지 포함하는 전인적 가치의 이익을 실현하는 삶이다.
다섯 달란트를 투자해서 더 많은 이익을 남겼다면 그는 탁월한 투자자이다. 유대인들은 투자의 귀재들이다. 그들은 디아스포라의 삶 때문에 오히려 강한 민족이 되었다. 흩어져 살아야 하는 운명은 자생력을 키우는 힘의 원천이다. 고난은 강함을 키워내는 자궁이다. 고난받은 민족이었기에 유대인들은 강해질 수 있었고 그 강함의 결과가 오늘 유대인들이 모든 금융과 자본 시장을 지배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금융 산업의 시조가 된 흩어진 유대인들

마태복음 21장에 보면 유월절의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일 년에 한 번씩 유월절이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수 있었으므로 전세계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모여든다.
전세계는 당시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는 로마의 식민지로부터 더 먼 곳까지다. 정치적으로는 로마가 지배하는 식민지였지만 각 식민지는 로마의 지배전략에 따라 경제적 종교적 문화적 자주권을 가질 수 있었기에 자연히 그 식민지의 경제 문화적 영향권 아래에 살아야 했다.
그런 이유로 예루살렘으로 모여든 유대인들은 서로 다른 화폐를 갖고 있었으므로 화폐를 적절한 가치로 환전하여야 했다. 돈을 바꾸는 환전의 자리는 자연히 시장이 되고 시장은 남김의 장터가 되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흩어져 살아야했던 유대인들에게 환전의 묘미는 익숙한 문화다. 여기서부터 자본주의 이념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유대인들은 흩어진 사는 삶을 통해 경제를 배웠다. 예루살렘으로 모여든 유대인들이 먼저 할 일은 환전이다.
환전하지 못하면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지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사에 드릴 양과 비둘기를 사기 위해는 시장은 자연스럽게 예루살렘 성전 앞에서 열렸다. 그것을 본 예수께서 왜 성전을 더럽히느냐며 성전 정화사건을 일으키신다. 모든 것이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었다.
물론 성전 정화사건의 핵심은 그곳에서 장사를 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그 성전을 중심으로 밥을 먹고 살았던, 아니 더 나아가 성전을 이용하여 큰 부를 축적하던 제사장들과 바리새인 같은 종교 권력자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들을 장사꾼이라 꾸짖으셨던 예수님의 의도는 시장의 장사꾼들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의 종교권력을 독점한 이들에 대한 것이었다. 진짜 장사꾼은 성전의 환전상이나 제물을 팔던 이들이 아니라 그들 뒤에 숨어 더 큰 이익을 가지려는 위선의 종교지도자들이다.      
환전은 새로운 이익 창출의 시작이다. 돈을 바꾸는 과정에서 이익은 실현된다. 남기지 않는 환전은 없다. 돈을 바꾸려면 정보력이 필요하다. 저쪽에서는 어느 정도의 돈으로 금을 살 수 있는지 금이나 은을 중심으로 화폐의 가치가 결정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화폐의 차이는 금이나 은 같은 기축통화를 기준으로 환전한다. 가치의 척도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그 가치는 각 지역의 문화와 경제 사정에 따라 다르기에 환전에는 기가 막힌 기준점이 필요하다. 그 기준점이 정보력이다. 정보가 빠른 사람이 돈을 버는 이유다.

유대인들이 정보가 빠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흩어져 사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음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상황에서 살아야가야 했으므로 피차 필요한 다른 정보를 독점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었다. 고난 받는 민족이었기에 그들은 피차 서로 다른 곳에서의 정보를 나누며 살아야했다. 서로 돕는 삶이 더 큰 가치를 실현하는 길이었다.
이쪽과 저쪽의 다름은 이익 실현의 가능성을 갖는다. 서로 다름은 더 큰 이익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흩어진 노마드 유대인들의 고난 받는 삶은 동시에 그들을 돈에 눈뜨도록 가르치는 좋은 경제교육의 현장이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산다는 것은 서로 다른 곳의 가치를 잘 알 수 있는 배경이 된다. 노마드적 삶은 더 큰 경제적 이익을 실현하게 하는 좋은 조건이다. 노마드만이 큰 이익을 실현하는 정보를 갖는다.

알람브라 칙령과 새로운 금융 비즈니스의 발견

사실 유대인들에게 금융산업은 전세계로 흩어지는 민족의 고난과 함께 시작된 비즈니스다.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전세계로 흩어졌다는 말은 전세계의 모든 경제 상황에 익숙한 민족으로 탈바꿈했다는 말과 같다.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다. 돈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가장 고통받는 이들에게 돈은 그들을 생존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돈이 있어야 생존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욕구이며 동물적인 본능이다.

알람브라 칙령은 1492년 3월 31일 조인된 것으로 당시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1세, 아라곤의 페르디난드 2세가 합작하여 발표한 조약으로 그해 7월 31일까지 유대인들은 스페인 땅을 떠나라는 칙령이다. 8세기부터 이슬람 세력의 침략이 시작되면서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은 이슬람의 지배 아래 처한다. 이슬람의 지배아래 유대인들은 처세술을 발휘하여 더 큰 부를 이룬다.
한마디로 이슬람의 등장과 함께 카톨릭의 쇠퇴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유대인들은 이슬람의 비호아래 부를 축적한다. 큰 부자들이 생겨나면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가지각색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영원한 지배자는 역사에 존재할 수 없다. 이슬람세력이 쇠락하면서 그때까지 부를 누리고 축적하던 유대인들의 운명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알람브라 칙령이다.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은 카톨릭 군주였던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라와의 결혼(1469)으로 절정에 이른다. 이들의 결혼은 이슬람의 쇠락과 유대인에 대한 견제로 나타난다. 10년 후 두 지방이 스페인 왕국으로 완전히 통합되면서 단독 왕국으로 성장하자 근대 스페인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1492년은 이사벨라의 도움으로 지중해를 떠나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대항해의 탐험을 시작한 해다. 그해에 이슬람의 편에서 부를 축적한 유대인들에 대한 카톨릭 권력의 복수가 시작된 것이다.
그들의 땅을 떠나라는 명령이다. 그 명령에는 몇 가지 단서가 있었다. 재산권은 인정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것에는 많은 제약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금과 같이 보편적으로 통용되던 것들은 가지고 나갈 수 없었다.
일부 유대인들은 단 4개월 만에 떠날 것을 강요받거나 개종을 명령 받았다. 당시 스페인 인구 700만 명 중에서 유대인은 수십만 명 정도였지만, 도시 인구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다. 스페인은 유대인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칙령에 "유대인의 모든 재산권을 인정하고 보호하며, 동산과 부동산을 자유롭게 처분해 국외로 반출할 권리를 부여한다."고 명시했지만 단서 조항으로 "금과 은, 화폐의 반출을 비롯해 국가가 정하는 품목을 금지한다."고 하면서 겉으로만 재산의 반출을 허용했을 뿐 실제로는 금지시켰다. 명시한 기한까지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무조건 처형됐으며 유대인을 숨겨준 사람들로부터도 모든 재산을 압류했다. 추방의 결과로 스페인계 유대인은 마그레브 지역으로 대부분 이주하거나 흩어졌다. 남동부 유럽으로 안전한 생활을 찾아 이주한 자도 다수였으며 이미 존재하던 동부 유럽계 유대인 공동체에 흡수되기도 하였다.
한순간에 거지가 되어버린 유대인들의 운명은 또 한 번의 곡절을 겪어야 했다. 그토록 가혹한 민족이 또 있을까 싶지만 오히려 그러한 알람브라의 칙령으로 그들은 새로운 비즈니스를 찾아낸다. 그것이 환전과 같은 은행업의 시작이다. 금융산업은 유대인들에게 운명이었던 것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유대인들이 살아남기 위하여 찾은 것은 돈의 교환이다. 전 유럽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자연스럽게 정보를 공유하며 돈의 흐름과 교환에 대하여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것이 환전사업이다. 대항해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무역과 같은 새로운 영역의 비즈니스가 광범위하게 일어나기 시작했고 돈은 그 비즈니스를 가능하게 하는 소중한 통로였다. 돈은 흘러간다. 돈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유대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가까운 친척들의 도움으로 유럽전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비즈니스에 대한 정보를 독점하며 돈의 흐름을 알게 되었다. 금융산업이 시작된 것이다. 본격적인 금융산업은 유대인들의 역사적 고난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것이 오늘날 은행의 시작이다.

로스차일드가문(Rothschild family)과 정보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 금융시장

로스차일드가는 독일-유대계 혈통의 국제적 금융 재정 가문이다. 오스트리아와 영국 정부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았다. 174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유대인 지역에서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가 태어난다. 마이어의 아버지 암셸 모세 바우어는 골동품상과 대금업자였다. 가문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가기 시작한 것은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 때부터였다. 마이어의 아들들은 다음과 같다.
암셸 마이어 폰 로스차일드(1773–1855): 프랑크푸르트
살로몬 마이어 폰 로스차일드(1774–1855): 빈
네이선 메이어 로스차일드 (1777–1836): 런던
카를 마이어 폰 로스차일드(1788–1855): 나폴리
자크 마이어 드 로스차일드(1792–1868): 파리

로스차일드 가문은 워털루 전투로 상당한 부를 쌓으며 발전을 했다. 로스차일드가문에서는 전쟁이 발발할 때 산업 스파이를 보내어 프랑크푸르트-파리-런던-빈-나폴리로 이어지는 정보망을 구축했다. 그들은 정부의 정보 즉 워털루 전투가 영국군이 이겼다는 정보보다 1일이나 앞선 날에 사람들을 향해 영국군이 졌다하며 소리쳐 거짓 정보를 알려주었고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덜 손해 보기 위해 영국 국채를 팔기 시작해 영국 국채가 이전의 5%밖에 안되는 상황이었 때, 로스차일드 가문은 그 즉시 모든 국채를 사들였고 그 다음날 영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프랑스군이 패배 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20배나 되는 이득을 챙겼다.
로스차일드는 현재 가치로 6억 파운드 넘는 이익을 얻었다. 그 후 로스차일드 가문은 영국이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를 사들이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지금의 팔레스틴에 이스라엘을 세우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 모든 것의 힘은 돈이었다. 오늘날 전세계의 금융산업은 로스차일드가문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정도다. 현대 금융산업이 유대인들의 지배아래에 있게 된 것에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힘 때문이다.
그들은 고난을 통하여 새로운 금융산업을 일으킨 민족이다.

노마드 머니와 새로운 투자

어떻게 남길 것인가? 가장 많이 남기는 방법은 가장 좋은 곳에 투자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고리대금을 비롯한 환전과 무역이 대세였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상황은 녹녹하지 않다.
투자하고 싶어도 투자할 곳이 없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투자한 곳은 레드오션의 시장이 되었다. 지금과 같은 경쟁의 시장에서 남기는 인생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 달란트를 받은 종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땅에 묻어두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미련하고 우둔한 인생이 되는 것이니 그리 살 수는 없다.
어딘가에는 반드시 길이 있고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이들의 생각과 삶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나만의 투자법을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기만의 투자 노하우를 찾을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대박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경제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은 특별한 은혜의 삶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친다. 히브리 백성들의 역사 속에는 하나님의 은총의 경제학이 가득하다.
광야의 길목에서 만나는 숱한 은혜의 장면들은 그야말로 신나는 노마드 경제학이다. 유목민들을 어떻게 먹이고 입히시는지를 가르쳐 주는 대목에서 우리는 노마드 경제를 배운다. 히브리 백성에게만 이겠는가? 영적인 자녀들로서 우리에게 또한 노마드 경제를 가르치심을 믿어야 한다. 광야같은 세상에서 우리 또한 그 노마드 경제의 삶을 살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도 성공할 수 있다.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성서의 노마드 경제가 가르치는 결론이다. 성서 안에서 배우는 하나님의 노마드 경제는 세상이 가르쳐주는 경제학이 아니다. 성서적 경제학이며 하늘의 경제학이다.
유대인들의 역사 속에 그 경제의 원리가 숨겨져 있다. 그 민족은 고난 받는 삶을 살지만 동시에 그들만의 경제를 터득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의 경제는 노마드 경제의 모델이다. 고난은 새로운 경제를 창조한다. 위기가 기회였던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오히려 경제적 기회를 얻었다.

노마드 경제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하나님의 절대적 도우심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내편이심을 믿어야 한다. 믿는 자들의 편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여야 한다.  
두 번째는 스스로 노력하여야 한다. 여기서 노력은 열정이다. 간절함이며 성공에 대한 절박한 소망이다. 바라는 자에게 주시는 은총이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삶이 전제되어야 한다. 주시려 하지만 아무 것도 구하지 않는 자에게는 주시지 않는다. 주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와 받을 준비가 된 그 길목에 성공의 열쇠가 숨겨져 있다.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바라보고 그 진행방향에 맞도록 내 삶의 방향도 맞추어야 한다.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역사의 방향과 내가 살아가는 방향이 다르다면 어떻게 성공의 기회가 올 수 있겠는가?
그러니 영적으로 민감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 돈의 흐름도 마찬가지다. 그 흐름이 보여야한다. 돈의 흐름이 있다. 그 돈의 흐름이 바로 노마드 머니라는 것이다.
노마드 머니를 주목하라. 돈은 흐른다. 돈도 유목민처럼 흘러 다닌다. 돈은 본능적으로 증식하려는 욕구를 가진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돈은 금리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흘러간다. 다시 말하면 돈은 더 많은 이자를 주거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돈은 사람과 함께 노마드 유목민처럼 흘러다니는 것이다.  
돈이 흐르는 곳에 그물을 쳐라. 돈이 흘러가는 곳에 먼저 가 있거나 돈의 흐름을 알면 이미 성공은 보장된 것과 같다. 문제는 그 돈의 흐름 즉 노마드 머니의 거대한 흐름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리라.
하나님의 역사가 흘러가는 방향을 주목하면 돈의 흐름도 보인다. 돈의 흐름도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남김의 삶은 바로 그 노마드 머니가 흐르는 곳에 투자하고 그 돈의 흐름에 앞서 길목을 지키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총이다.

 



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