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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섬사람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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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가을, 어느 가장 멋진 결혼식에 다녀와서> 조규남 목사



                 인사말씀
지난 2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마지막 기도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고민하던 중 미가서 6:8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말씀대로 정의롭게 삽시다.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삶이 되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그리고 인정을 베풀며 말씀에 순종하면서 선한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그러면 기본에 충실한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저희 두 사람,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생략)

위의 내용은 지난 9월 20일 내가 하객으로 참석하였던 결혼예식 순서지 뒷면에 기록된 신랑의 '인사말씀'입니다.
일반적인 결혼예식 인사 내용과 사뭇 다르게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기도문으로 시작하는 인사말씀을 통해 이 집안의 가풍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의리'를 내세워 외치는 자들이 붙들고 있는 정의, 바로 그 정의입니다.
정의가 이 집안을 움직이고 있는 키워드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랑신부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지난 2월 돌아가셨다는 신랑의 할아버지 역시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신랑의 아버지인 나섬공동체의 유해근 목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신랑의 고백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된 것은 유해근 목사가 왜 정의파인지, 왜 그토록 부정직하고 부조리한 것에 대해 혁명적 투지를 품고 개혁의 선봉에 나서고 있었는가를 좀 알 수 있을 듯했습니다. 이 집안의 내력이요, 이 가문의 가풍이었던 것입니다.
유목사는 성격이 불같고 국가인종을 떠나 그 누구건 약자가 무시당하고 짓밟히는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직접 몸으로 맞부딪혀 돌진하였습니다. 또한 필설(筆舌)에 있어서는 그의 논리를 대적할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1990년대 초 내가 수도권 변방에 Pilgrim Church (순례자교회)를 개척하여 그 당시로는 생소했던 외국인근로자 선교를 처음 시작하고 있을 때 같은 사역방향의 동역자로 만났으며, 또한 고등학교 선후배로서의 끈끈한 관계로서도 그와 나는 죽이 잘 맞았습니다. 사실 나 역시 불같은 성격이었으나, 오히려 후배인 그 앞에서는 여유를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 약자들에 대한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던 그가 외국인 근로자 선교에 뛰어들면서 다소 바뀐 것이 있다면, 사회 제도의 모순이나 불합리한 구조적인 부분에 맞서는 대신 영혼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선교적 마인드로 전환되어 그야말로 전적인 선교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에게 절묘한 은사의 융합이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고민해왔던 우리 주위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개념을 국내 소외계층에만 국한 시키지 않고, 국내에 들어와 있는, 국내 노동계급보다도 더 훨씬 열악한 조건 속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에게로 관심과 사역 방향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정의파인 그에게는 당연한 방향전환의 동기가 되었고, 가장 약한 자들의 편에 서려 하는 그에게 당연한 귀결점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현재 서울 광장동에 근거를 두고 다국적, 다문화권의 외국인들을 상대로 '나섬 공동체'를 섬기고 있습니다.

20여년 동안 한 방향으로만 헌신해 온 그의 이러한 공로가 사회적으로 인정되어 작년 12월 말에는 '제4회 태평양공익인권상'을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또 이러한 중에도 가장 많은 인원수를 차지하고 있는 몽골인들을 위해 더 많은 집중적 노력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 서울시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광장동 워커힐로 한 부분에 '재한 몽골학교'를 설립하게 되어 300여 명의 몽골 어린이들의 교육을 공식적으로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세워진 바로 이 신축 몽골학교에서 그의 아들 유영규 군의 결혼식이 지난 9월 20일 올려졌던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이 있다면,  수년 전부터 시각 장애가 점진적으로 진행돼 오던 것이 이제 급기야는 1급 시각장애인 판정을 받게 되어 세상에서 빛이 되고 있는 그지만 정작 자신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예배 형태의 모든 결혼 예식이 끝나고 맨 마지막으로 그에게 잠시 하객들을 향해 인사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목회활동을 해 온 것이 전부 나그네를 섬기는 일이었고, 그러다보니 항상 주변 변두리에 머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동안 너무 어려운 일들이 많아 하나님께 불평해보기도 했지만, 하나님 은혜로 오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결코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좋은 길로 이끄신다는 것을 많은 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오늘 여기 오신 모든 분들에게 이렇게 보여드리게 되었습니다. 시력을 잃어 볼 수 없다는 자신의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나름대로의 하나님 뜻을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오늘만은, 오늘만은... 그동안 눈물의 기도로 쌓아 올렸던 오늘 제 눈 앞에 전개된 열매들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습니다...."
순간 결혼식장은 엄숙해졌습니다. 그리고 잠시의 침묵이 흐른 뒤에 곳곳에서 큰 박수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눈가로 손수건을 가져가는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내 더욱 밝고 기쁜 얼굴들이 되었습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 30:5)는 말씀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예식 순서지의 '인사말씀'으로부터 시작하여 유 목사님의 개인적 소망의 고백에 이르기까지, 이 결혼식은 집으로 오는 내내 감동이 그치지 않아 가장 멋진 결혼식 풍경으로 내 마음에 오래 남게 되었습니다.
그와 잠시 단 둘만의 짧은 대화시간이 주어졌을 때 지금까지의 그의 노고를 치하해주며 한 마디 던졌습니다.
"유목사, 이렇게 멋지게 지어진 학교 건물도 열매지만, 무엇보다 오늘 결혼식을 올린 아들과 그리고 이곳을 거쳐 지나간 수많은 외국인 나그네들이 세계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열매가 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게!"

눈이 보이지 않는 유 목사님에게 재한 몽골학교와 아들의 결혼 그리고 앞으로 가게 될 하나님 나라는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위 사진에서처럼 빛 속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빛의 줄기들에 의해 떠밀리듯 앞으로 뛰어나가는 신랑신부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부에게는 신랑 이외의 그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곳-정의가 행해지고 긍휼이 바다를 이루는 곳, 겸손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공의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바로 그곳이 천국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막 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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