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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섬사람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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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몽골여행기-박현옥 권사
       지난 한 주간 나는 네 번째 몽골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여행은 나를 설레게 하는 여행이었지만 이번 여행은 왜 나는 몽골행 비행기를 타고 그 곳을 찾아가고 있는가? 에 대한 질문을 앞서게 했다. 선교가 비젼이라고 생각하며 2002년말 나섬에 와서 만나기 시작한 몽골인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2004년부터는 몽골학교에 근무하며 몽골학생들, 몽골교사들, 몽골학부모들, 학교를 방문하는 많은 몽골사람들을 만났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한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몽골인들과 만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내가 몽골인들을 얼마나 사랑하기에, 그들 민족이 나에게 무엇이기에 나는 그들을 만나는가? 정말 예수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사람들, 보낼 수 없는 많은 시간들을 보내며 살아왔다. 과연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회의가 물밀 듯 밀려 올 때도 많았지만 그럴 때 마다 마음속에 들려오는 나의 주님의 위로와 격려 때문에 내가 여기 까지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여행 첫째 날 몽골 교육부 교사연수원에서 교사연수가 있었다. 잘 모르는 몽골어로 강의를 해서 몽골교사와 함께 듣다가 몽골교사에게 통시통역을 해 달라고 해서 강의를 들었다. 별 기대 없이 들었던 강의였지만 이내 열심히 강의를 듣게 되었다. 강의 교수의 진지함과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교육에 대한 열정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몽골교육이 그렇고 그렇지 뭐 라고 생각한 몽골교육에 대한 내 편견을 없애 주는 시간이었다.
  교사 연수를 마치고 보르마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에 잠깐 들렀다. 울란바타르시 외곽의 우리나라 달동네 분위기가 나는 열악한 그 곳에 교회가 자리하고 있었다. 작고 아담한 교회, 예수님의 겸손한 모습이 그대로 느껴지는 교회이다. 마당도 울퉁불퉁하고 땅에서는 흙  먼지가 날리는 교회이지만 그 곳의 영혼들, 특별히 주변에 사는 어린 영혼들이 마음껏 찾아와 쉴 수 있는 아름다운 교회였다. 나도 어릴 적 알 수 없는 느낌에 끌려 교회를 찾았던 생각이 떠오르며, 이곳에 사는 가난하고 어린 영혼들이 이곳을 그렇게 찾아 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곳에서 느껴지는 포근한 그분의 사랑이 그들의 영혼을 어루만지고 보듬어 안아줌으로 세상을 이길 작은 힘이 자라가게 될 것이라는 소망이 느껴졌다. 그 영혼들을 위해 삶을 드리는 보르마 목사님, 귀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이다.
  조금 머물고 있노라니 우리 나섬에서 신학수업을 마치고 몽골로 돌아 간 ‘벼’라는 지역에서 ‘이삭교회’를 개척한 초카전도사(목사-몽골에서는 교회를 개척하면 목사님이라고 부른단다.)이 오셨다. 전도사님 차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한참이나 지나 헤비타트에서 지은 집들이 줄지어 서 있는 지역에 있는 교회에 도착하였다. 보르마 목사님 교회와 다르게 평평하게 고른 땅위에 서 있는 아담한 교회였다. 아직 십자가도 없고, 문을 열고 교회 안에 들어서니 달랑 한 칸짜리 방 크기의 예배당이었다. 작은 십자가가 하나 걸려 있고 가구라고 할 것도 없는 작은 테이블 하나, 벽에 걸린 낡은 수납장하나. 그런데 왠지 모르게 그 곳에 들어갔는데 울컥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한국 땅에 찾아왔던 몽골인들을 섬겼던 그 시간들로 맺혀진 작은 열매가 이 곳이라는 생각, 너무도 부족하고 작은 겨자씨보다도 작은 씨의 열매가 그 자리에 있었다. 고난의 자리에 있으며 참고 인내하며 섬겼던 그 작은 열매가 그 곳 몽골 땅에 가 있었다. 아직은 너무 작아 많은 보호와 사랑의 물주기가 필요한 작은 교회가 그 곳에 문을 열었다. 영적으로 척박한 ‘벼’라는 지역에 작은 소망처럼 고개를 살포시 들며 서 있는 예배당 앞마당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주님의 마음과 눈길이 돌보아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튿날 오전 교육을 마치고 우리는 바쁘게 울란바타르 대학으로 향했다. 몽골학교를 다녀간 학생들을 위한 홈커밍데이(Home Comming Day)를 하기 위해서다. 울란바타르 대학 1층 B강당 에 도착하니 한국에 있는 몽골학교가 시설이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질러져 있는 강의실를 정리하고 의자배치를 새롭게 하고 우리와 함께했던 몽골아이들을 만날 준비를 열심히 했다. 텔뭉바타르가 친구들과 함께 일찌감치 도착해 우리의 일손을 도왔다. 말썽 많던 녀석이 벌써 의젓하게 성장해서 우리를 돕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흐뭇했다. 시작 시간이 지나도 10명 남짓 밖에 모이지 않아 70인분의 음식을 주문해 놓고 마음이 조마조마한 우리들은 아이들에게 남은 음식을 싸줄 생각으로 비닐을 사다 놓고 동그랗게 모여 잠깐의 기도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기도해서 일까 갑자기 아이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60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모였다. 여기저기서 서로 끌어안으며 탄성을 지르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먼 타국에 와서 함께 지냈던 선생님, 학우들을 만났으니 얼마나 기쁘고 반가웠겠는가? 나도 함께 보는 아이들마다 껴안고 악수하며 반가움을 표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또 다시 울컥 우리 삶의 보람이 이것이었구나! 이런 기쁜 만남이 우리 공동체의 열매라는 생각이 들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껄렁하게만 보았던 몽골아이들이 동그란 학교 마크가 들어간 흰 티셔츠를 입고 있으니 얼마나 깔끔하고 예뻐 보이던지 정말 몽골의 훌륭한 지도자가 곧 될 것 같아 보였다. 행복하고 기쁜 시간들이 쏜살 같이 지나갔다.
  셋째 날 우리는 그렇게 가보길 원했던 홉스골로 향하는 작은 비행기를 탔다. 들뜬 마음으로 우리는 어린아이들처럼 해맑게 웃으며 작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무릉이라는 지역에 도착해 우리는 간단한 점심식사를 했다. 재래시장도 들렸다. 정말 온갖 다양한 냄새들이 어우러진 몽골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 시장이었다. 이 후 우리는 유적이 발굴된 현장에 잠깐 들렀다. 고대 유적지라는 곳의 큰 돌들에는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사슴의 모습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 후 우리는 홉스골로 향하는 짐차에 몸을 실었다.  말로만 듣던 홉스골 얼마나 아름다울까?  설레임을 가득 안고 짐차는 드넓은 초원을 시원하게 달렸다.
  얼마간을 달리자 침엽수림으로 가득한 타이가 지역이 나왔다. 비포장도로가 나타나고 유난히 돌이 많은 울퉁불퉁한 도로를 운전하는 기사도 힘들어 보였다. 한참을 그렇게 가다보니 숲 속에 게르 집들이 군데군데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묵을 게르호텔에 드디어 도착했다. 신선한 공기에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이내 찾아 왔다. 늦은 시간인데도 밖은 환하고 언제 별이 뜰지 모르는 시간에 우리는 오늘 밤에 쏟아져 내릴 환상적인 별 빛 생각하며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였다. 게르 안에 놓인 작은 난로에 장작을 가득 넣고 불을 피우니 이내 게르 안은 찜질방처럼 더워졌다.  넓고 푸른 홉스골 호수를 바라보며 타이가 숲에 있는 게르 안은 일류 호텔보다 더 좋았다. 다음 날 우리는 말타기를 하였다. 몽골선생님들도 말을 처음 타보는 사람이 몇 분 있었다. 몽골에서 세 번째 타보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무섭지 않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뭉근체첵 선생님 동생이 우리를 대접한다고 양한마리를 잡아 허르헉을 해 주었다. 장작불을 때고 그 곳에 주먹 만한 돌멩이들을 달구어 뜨겁게 해서 통 안에 양고기, 감자, 당근, 소금과 함께 넣고 다시 장작불 위에서 익혀 주면 맛있는 허르헉이 된다. 전에도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더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 후 우리는 모터가 달린 배를 타고 순록이 있는 홉스골 안에 있는 작은 섬으로 향했다. 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모터 보트안에 몽골 선생님들은 “야나, 야마르 고임 베! (야,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 연신 외쳐 되었다. 몽골말을 모르는 한국스텝들도 함께 외쳐 되었다. 야나, 야마르 고여힘 베!  섬에는 순록 한 가족 세 마리와 뾰족한 유르트 집에 원주민처럼 살고 있는 한 가정을 만났다. 섬 밖의 세계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어 보이는 순박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아마 외계인처럼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뭐라도 알려주고 싶었다. ‘당신들이 사는 이 곳 밖에 아주 넓고 다양한 세계가 있어요’ 라고 말이다.
  그날 밤 우리는 밖에서 모닷불을 피워 놓고 한국에서 가져온 맛있는 라면을 먹으며 쏟아지는 별을 보기로 약속했지만 피곤해 아무것도 못하고 자고 말았다.
  다음 날 우리는 여행 마지막일이라는 아쉬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홉스골을 빠져나와 무릉으로 가는 중간에 세계에서 네곳 밖에 없다는 지구의 위도 100도와 경도 50도가 만나는 지점을 방문했다. 사람들이 이곳에 오면 신비한 기운을 받고 갈 수 있다고 소문이 나  있는 곳이란다. 정말 그곳 에서는 이상한 기운 때문이지 이름 모를 다양한 들꽃들이 많이 피어 있고 아주 따뜻했다. 신기하게도 한 덩어리의 돌 속에서도 안개꽃 같이 작고 가날픈 꽃들이 피어 있었다.
  국내선을 타고 울란바타르 시내에 도착해서 아마르자르갈 선생님의 부모님 댁을 방문하였다. 아마르자르갈 선생님은 몽골에서 부부 교사였는데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들어와 아동복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내 남편이 위암 판정을 받고 세상을 먼저 떠났고 홀로 정신지체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학교에 새로 들어온 몽골선생님이다. 얼마나 심성이 곱고 예쁜지 벌써 좋은 선생님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분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집 부모님들의 얼굴과 집안 분위기에서는 인생의 파고를 꿋꿋하게 이겨낼 만한 힘을 키워준 훌륭하고 인자함이 흐르고 있었다. 안타깝게 타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딸을 위해 함께 근무하는 선생님들에게 정성껏 준비한 맛있는 음식들을 즐비하게 차려 주셨다. 정말 고마우신 분들이었다. 식사를 마칠 즈음 한국에 근무하고 있는 제자들을 보기위해 몽골교육대학교 뭉흐자르갈 교수님이 오셨다. 제자를 바라보는 교수님이 얼마나 흐뭇한 마음이었을까 새삼 다시 보게 되었다.
  우리는 바삐 그 집을 나와 숙소인 에르뎀툭소 선생님 동생네 아파트에 와서 짐을 꾸려 징기스칸 공항으로 향했다. 5박6일의 여행 일정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 아쉬움을 남기고 서울로 향하는 대한항공 편에 몸을 실었다.  나섬교회 박현옥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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