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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 6 ---유해근목사

눈이 보이지 않은지 벌써 수년이 지났다. 때로 이 육신의 눈이란 것에게 농락당하는 것 같아 속이 상하고 마음이 저려오기도 한다. 눈이 잘 보이고 아무런 문제가 없이 살 때에는 모랐던 것들이 새삼 느껴지는 것은 늦은 후회일까?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내 눈과 시력의 문제 있음을 먼저 말하게 된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면 먼저 나는 지금 시력이 없어진 눈 때문에 당신을 볼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악수를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아마 내 눈이 나를 몹시도 곤란하게 하는 모양이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서 나는 자꾸만 움츠려들거나 혹은 자신감을 상실한 모습으로 더듬거리게 되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보호본능처럼 느껴진다. 조심스럽게 만져보거나 걸어야 한다. 만약 위험스러운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면 즉각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몸동작이거나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리라. 나는 작아지고 열등해졌으며 소극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아마 이것이 장애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있게 팔을 흔들며 씩씩하게 다니고 싶지만 어느새 나는 누군가를 붙잡거나 혹은 조심스럽게 나의 움직임을 축소시키려 한다. 나는 작아지는 것이다. 나는 몹시도 작은 존재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나를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드러내고 당당하게 나타내고 싶지만 그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정말 아무 것도 보지 못하며 그래서 이제 내 존재감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종종 우리 공동체를 방문한 이들이 어떻게 눈이 보이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큰 사역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나는 눈에 뵈는 것이 없어서 그렇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우리는 모두 크게 한바탕 웃곤 한다.
정말 그런 것일까? 아무 것도 뵈는 것이 없어 무서운 것을 상실한 존재가 되어 그렇게 살고 있다는 말은 맞는 것인가? 아니다. 정말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눈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부터 더 무서움을 느끼고 있다. 아무도 없다는 어두움의 삶 속에 왜 두려움이 없겠는가? 나는 무섭고 두려워 떨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눈이 보이지 않아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른 일을 할 수 없기에 지금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거나 당장 해야 하는 일에 그만큼의 집중력이 있어 그나마 이런 정도로 살 고 있을 뿐.

나는 약해졌지만 지금 내 삶에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큰 흐름이 느껴진다. 내 약함과는 관계없는 어떤 다른 존재의 개입이다. 내 안에서 꿈틀대는 거스를 수 없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이전에는 알지 못하던 거대한 흐름이다. 때때로 나의 장애로 절망하곤 하지만 거시적으로 내 약점과 장애가 강점이거나 유익이 될지도 모른다는 설레임 같은 것이다. 나는 작아져 가고 있지만 내 안에서는 더 큰 거인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필리핀에 가서 며칠을 가족과 보내면서 아무런 제약 없이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아마 내 눈에 문제가 생기면서 시작된 나의 독서 습관은 내 삶에 있어 엄청난 유익이 되고 있다. 나는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책을 읽는다. 뿐만 아니라 절대적 독서량에 있어서도 많은 책을 읽고있다. 요즘 나는 다시 또 하나의 목표를 세웠다. 죽을 때까지 일만권의 책을 읽겠다는 것이다. 말이 만권의 책이지 사실 물리적인 계산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 목표를 달성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나에게 독서는 거의 유일한 삶이며 습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에서는 하루에 두 권에서 세 권의 책을 읽었다. 이런 추세로 책을 읽을 수 있다면 한 달에 삼십권, 일 년이면 300권, 십년이면 3.000권의 책을 읽는 것이다. 반드시 일만권의 책을 읽으리라 나 자신에게 다짐한다. 그래서 내 몸은 작아져 움추러들지만 내 마음은 더 크게 자라 큰 거목이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두 번째 내 눈의 장애가 가져다 준 은혜는 집중력이다. 더 이상 세상의 것에 두리번거리며 살지 않게 된 것은 결과적으로 내 삶에 큰 은총이다. 나는 본디 세상에서 살기 좋아하던 사람이다. 놀기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는, 말 그대로의 건달 인생이다. 아마 지금쯤 건강한 눈이라도 있었다면 분명 나는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호기심 천국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역마살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었을 나를 그려보면 끔찍할 정도로 차라리 지금의 한계가 감사할 뿐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자리에 눌러앉아 오직 한가지의 일에 전념한다는 것은 은총이다. 내 아픔이 궁극적인 은총의 삶이 되고 있음을 조금씩 자각하면서부터 내가 또 다른 섭리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나는 지금 내 약함에 감사한다. 정말 이 고백이 있기까지 나는 얼마나 절망하고 좌절했던가! 나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들게 버텨왔다. 그러나 이제 알 것 같다. 내 삶에 함께 하는 엄청난 은총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나는 집중력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한 가지에 몰입하는 강도가 강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집중하면 태양을 끌어다 불을 낼 수 있다. 내 삶에는 태양을 끌어 모으는, 그래서 변화의 불을 지르겠다는 집념과 의지가 점점 커가고 있다.
집중력은 후천적인 것이다. 두리번거리지 않고 한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은총이리라. 반드시 이 약점과 장애가 집중력이라는 또 하나의 은총임을 보여주리라.

세 번째는 사람에 대한 연민이 생겨난 것이다. 눈으로 보던 사람을 마음으로 그려보면서부터 편견과 차별의 선을 긋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을 보는 것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다. 우리는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드러난 겉모습에 사람을 판단하려는 못된 문화와 얕은 눈속임의 문화 속에 살아간다. 성형과 포장과 화장의 문화다. 이것이 우리를 속이고 우리는 속아간다. 겉이 속이 아님에도 우리는 겉에 속을 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는 27년 동안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말이 27년이지 정말 지독한 수감생활이었을 게다. 그는 힘든 감옥살이를 하면서 어떻게 그 시간을 극복할 수 있었느냐는 물음에 자신을 옭아맨 자들을 용서하면서 자유를 얻었다고 말했다. 만약 그가 용서하지 않으면 그들이 자신을 죽였을 것이라고도 했다. 나중에 여러 가지 이유로 고통 받고  있던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만델라는 이렇게 조언했다 자신을 잡아가둔 자들이 자신의 모든 것들을 가져갔으며 하물며 모든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렸지만 그럼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자신의 마음과 정신만큼은 잡아 가둘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마음만은 빼앗기지 않겠다는 만델라의 철학이 그를 결국 승자로 만든 것이다.

어떤 책에서 만델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새삼 내 육신의 눈은 잃어버렸지만 내 마음의 눈만큼은 꼭 지켜내리라는 생각을 했다. 몸은 가두지만 마음은 가둘 수 없다는 지극히 알만한 이야기가 내겐 큰 울림으로 들려온다. 육신의 눈이 아니라 마음이 더 소중한 눈이다. 겉에 속고 살면서 눈이라 하지 말고 마음으로 사람을 보는, 그래서 아름다움의 깊이를 찾아가는 속 눈가진 삶이 더 근사한 삶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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