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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섬사람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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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어야 미래가 있다

내가 몽골의 유목민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고정관념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그들의 삶에 대한 태도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유목민들은 공간중심적인 사고가 아니라 시간과 속도를 지배하는 사고를 갖고 살아간다. 하긴 그들에게 어떤 국경이나 경계선 같은 것들이 있을까? 지금이나 국경이며 국가라는 단위의 공동체를 중시하지만 예전에는 그들에게 그런 사고는 있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유목이라 함은 그들이 가축떼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가축들이 가고자 하는 대로 목동이 뒤를 쫒아가는 것이라 한다. 그러니까 유목민들이 가축을 앞에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가축 떼 뒤에서 그들이 가는대로 따라가는 것이 진정한 유목이었다.
사람들이 경계를 설정했지만 가축들이 그 경계의 의미를 알고 있었을 리 만무하니 유목민에게 경계는 없다. 1206년 칭키스칸이 몽골제국을 세우고 전세계를 지배하려 했을 때에 그들에게는 오직 조랑말과 몇 가지의 무기뿐이었다. 그 조랑말이 초원을 달리고 그들이 달리는 속도는 땅의 넓이와 비례했다. 속도를 지배하는 최초의 민족이 몽골민족이었다. 속도를 지배하는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를 칭키스칸의 제국은 800년 전에 이룩한 것이다. 그는 세계화를 이루었고 다문화를 통치의 기본이념으로 삼았다. 요즘 들어 다문화니 세계화니 하지만 사실은 칭키스칸이 그 원조인 셈이다. 제국은 바다 같은 사람만이 세울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물을 조금의 편견이나 차별 없이 받아들여야 진정한 바다가 되는 것처럼 제국은 그런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민족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역사는 지금까지 그런 민족에게만 제국의 영광을 안겨 주었다. 로마제국이 그랬고 몽골제국이 그랬으며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의 미국이 그렇다. 세계적 석학인 예일대 교수 에이미 추아는 제국의 일대기를 통해 지구의 미래를 전망한 책 '제국의 미래'에서 제국이 될만한 나라는 모든 민족을 포용할 수 있는 나라여야 한다고 말한다. 즉 세계화와 다문화를 이루는 민족이 제국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지금 어떠한가?      
    
우리는 지극히 공간중심적인 사람들이다. 좁은 땅에서 살다보니 부동산이 가장 중심이 되는 부의 상징이며 공간에 의지하는 민족이다. 공간이 삶의 중심이니 그 공간의 넓이와 비례해서 사람을 평가하고 그 공간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끼리 만의 공동체 의식이 강한 지라 타인에 대하여 지나치게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타인에 대하여 경계하는 눈초리가 매서우며 때로는 공간 안에 갇혀 전혀 새로운 가치나 문화에 대하여 그 문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고정관념이 강하다. 목회를 한다면 교회가 먼저 떠오르고 일정한 틀 안에서 목회의 영역을 그린다. 그러나 나는 이제 교회밖에 또 다른 교회를 상상한다. 기존의 교회를 지배하던 틀거리를 깨고 과감하게 새로운 교회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미래가 열린다. 지금의 교회구조로는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정관념이다. 고정관념이 지배하는 삶에 새로운 것이 있을 수 없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새로운 것이 주어질 수 있겠는가? 우리 교회는 세상 안에 존재한다. 그런데 세상이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동안 교회가 공간 안에 갇혀 있다면 교회는 세상에서 버림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은 속도를 말하는데 교회는 여전히 공간 안에 갇혀 있다. 자본주의의 위기를 넘어 몰락이 눈에 보이는데도 교회는 자본주의의 우상을 신봉하며 여전히 성공과 성장이라는 콤플렉스에 갇혀 있다.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믿고 있는 그 경계선을 과감하게 뛰어넘어야 한다. 왜 교회가 사회적 기업을 하면 안되는가? 왜 목회자가 기업을 하면 안되는가? 나는 그런 의문을 갖고 살았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술을 마시지 말아야하고 담배를 피워서는 안된다고 한다. 맞다. 나도 그것을 안다. 그런데 거꾸로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사람은 교회에 나오면 안되는가 하고 되물어본다.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관습에 대하여 우리는 왜 의심하지 않는가?
우리를 지배하는 경계선과 고정관념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런 물음도 없이 그렇게 믿고 살았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에베레스트는 8,848미터이다. 백두산의 3배의 높이다. 30년 전에는 이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일 년에 2.5명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 년에 500명이상이 정상에 오른다고 한다. 어떻게 해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그것은 베이스 캠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깼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베이스캠프를 3,000미터 이하에 두었다. 사람들은 아무런 물음도 갖지 않고 무조건 3,000미터 이하에만 베이스캠프를 설치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관습이었다.  1953년 뉴질랜드의 등반가 에드먼드 힐러리가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올라간 이후 사람들은 근 30년 동안 베이스캠프는 3,000미터 이하에 설치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다 누군가가 6,000미터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정상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왜 베이스캠프는 3,000미터 이하에만 쳐야 하는지 물어보았다면 그래서 6,000미터에도 베이스캠프를 설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정상에 오를 수 있지 않았을까? 경계를 넘어야 새로운 미래가 열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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