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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섬사람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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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섬이다.그러나 그 섬은 세계다.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을 읽었다. 19년 이상을 무기징역수로 감옥생활을 하던 선생의 옥중서신을 묶어 만든 책이다. 간결한 필체로 담담하게 써나간 글 속에서  선생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선생은 감옥이라는 특별한 공간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묘사하며 자신의 절망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감옥, 벽, 담 안에 갇혀있는 한 실존자의 아픔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신선생은 그 감옥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감옥살이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곳에서도 나름대로의 생활이 있다고 한다. 물론 신선생의 책에도 그런 부분이 자세히 묘사된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갈등과 소박한 일상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가장 큰 아픔은 자신이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없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없다는 자괴감이라고 말한다. 자유란 감옥에 있는 사람에게 가장 절실한 욕구다. 자유를 말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 자유에 대하여 그리 많은 고민이 없다.
언제부터인지 우리가 말하는 자유는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관념화된 것 같다. 자유를 말하자면 정치적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 같은 자유를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자유보다 더 원초적인 자유가 있다. 감옥에 갇힌 자들이 추구하고 원하는 자유다. 가고 만나고 언제든 움직일 수 있는 자유가 그것이다. 우리는 적어도 그런 자유에 대하여는 모른다. 오히려 원초적 자유에 대하여 우리는 무관심하다. 하긴 누가 그런 부자유를 경험할 수 있는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경험도 쉽지는 않다. 죄를 지었거나 아니면 우리 시대의 아픔을 홀로지고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는 우리에게 그런 경험은 간단치 않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며 신선생의 아픔을 공감하게 되었다.

나섬공동체에서 '나섬'이라는 말은 '나그네를 섬기는'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나섬공동체는 '나그네를 섬기는 공동체'라는 말이다. 나그네를 섬기는 공동체를 오랫동안 운영해 오면서 나는 가끔 나섬이라는 말에 또 다른 의미가 없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물론 '나눔과 섬김', '나서서 섬기는'이라는 뜻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는 다른 곳에 가서 설교를 하거나 강의를 할 때마다 나섬은 '나그네를 섬기는'이라는 뜻으로 해석해 달라고 말한다. 그 의미가 가장 우리를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신선생의 책을 읽은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그분의 아픔과 내 고통이 이렇게 비슷할 수 있을까 하는 동질감으로 눈물을 흘리며 그 책을 읽었다.

감옥 안에 갇힌 한 인간의 절규를 생각하면서 감옥은 아닐지라도 감옥보다 결코 덜하지 않은 내 삶을 생각하면서 울었다. 선생은 감옥에서 근 20여년을 살았다. 답답하고 절망적인 감옥살이다. 갈 수 없고 올 수 없는 단절되고 고립된 그곳에서의 긴 세월을 잘도 이기며 살았다. 분노를 삭이고 절망을 희망으로 만들기 위하여 몸부림치며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가족들을 오히려 위로해야만 했을 아픔은 또 어땠을까?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마다 그는 위로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들을 위로해야만 하는 이중의 아픔을 겪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주변을 사랑하노라며 오히려 당신들의 사랑에 감사하노라며 그렇게도 자신의 운명을 포장해야했던 한 인간의 잔인한 삶을 공감했다. 이렇게 사는 것도 인생이라면 괜찮다며 말하고 싶지 않았을 그 서러운 고백도 서슴없이 해야만 했던 감옥보다 더 힘든 형벌의 고통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를 보았다. 지금의 감옥 같은 내 삶을 바라보았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이 부자유함의 극치를 살아야 하는, 죽을 때까지 이 긴 형벌의 삶을 살아야 하는 나 자신을 말이다.
그는 19년 만에 감옥에서 나왔지만 나는 죽을 때까지 이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 그는 무기징역에서 해제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무기징역이다. 아침이면 아내의 손을 붙잡고 나와 광나루 뒷골목 나섬의 울타리 안에 갇히면 나는 오고 갈 수 없는 감옥살이를 시작한다.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게 살아왔으니 하루 이틀의 이야기는 아니다. 집에 갈 때까지 그리고 집에 가서도 나는 집밖으로 나갈 수 없는 연금 상태의 연속이다. 나갈 수 없는 장애는 언제나 나를 감옥 같은 느낌으로 살아가도록 마음을 옥조이고 삶을 움츠러들게 한다. 다른 사람들이 물으면 이렇게 사는 것도 살만하다고 과장된 표정과 목소리로 나를 포장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 말은 거짓말이다. 어떻게 눈이 보이지 않는 삶이 그리도 좋단 말인가?

그날 나는 신선생의 책을 읽으며 나섬과 나를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나섬'은 '나는 섬 안에 갇혀 있다'는 말입니다. 나는 지금 섬입니다"
그랬다. 나는 분명 나섬을 '나는 섬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나는 섬 안에서 꼼짝달싹 못하는 감옥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아무도 돌아보거나 알아주지 않는 이 섬과 같은 뒷골목에서 눈에 보이는 것 없어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상처를 일상처럼 여기며 살아야 한다. 차라리 겉에 난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치료가 되겠지만 내 안의 상채기는 회복될 것 같지 않아 죽을 때까지 부둥켜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은 이미 내 눈보다 더 아프다.
그래서 나는 섬 안에 갇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물으며 기도했다. 어떻게 나를 이런 섬 안에 가두어 두실 수 있느냐며 부르짖었다. 그래서 나는 울었고 내 방문을 잠그고 한참이나 소리죽여 울었다. 억울하다고 아프다고 이제는 어떻게 좀 해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한참 울다보니 응답이 왔다. 내 마음속에서 다음과 같은 주님이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맞다. 너는 섬이다. 앞으로도 너는 섬 안에 갇혀 살아야 한다. 하지만 내가 그 섬을 세계로 만들어 주지 않았느냐?"

내겐 놀라운 발견이었고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나는 섬 안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섬을 세계로 만들어 주셨다는 것이다. 감옥을 세계로 만들어 전 세계에서 사람들을 보내주셨고 그들과 교제하게 하셨으니 그때마다 고독하지 않도록, 바쁘게 살도록 하지 않았느냐는 말씀이었다. '너는 이런 감옥도 보았느냐?'고 하시는 것 같았다. 감옥이지만 세계를 품는 감옥이다. 열방이 함께 하는 섬인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이곳은 섬도 감옥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광나루 뒷골목을 세계로 만들어 주었는데 또 왜 그런 응석이냐는 말씀이다.
    
나는 섬이다. 그런데 그 섬은 세계다. 이제 나는 또 하나의 깨달음 속에 일어선다. 또 눈물을 훔치고 가슴을 활짝 펴고 일어나려 한다. 언젠가 또 울지 모르지만 이제는 그런 눈물은 아니다. 힘들지만 내가 있는 곳이 세계가 되었으니 감사하며 섬 안을 두루 살피고 손을 눈 삼아 돌아보아야 한다.
그동안 내가 원망하고 쓰러지면 하나님은 어김없이 달려와 나를 일으켜 주곤 하셨다. 내게 큰소리로 호통을 치시다가는 등을 토닥거리며 나를 안고 함께 울어주시면서 조용히 그렇게 가르쳐 주신다. '그래. 많이 힘들겠구나. 그래도 너는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말이다. 그렇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족하지만 내 손의 온기를 통하여 하늘을 만나고 삶을 회복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섬 안에 갇혀 산다. 그래도 그 섬이 세계이니 누가 이를 알겠는가?
오래전 경기도 가평의 남이섬 대표 강우현 사장의 글을 읽었다. 작은 남이섬을 가장 멋진 브랜드의 섬으로 만들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찾아오는 섬으로 만들고 싶다는 그의 상상력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섬 안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그 섬으로 세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삶을 살고 있었다.
여기는 광나루 나섬이다. 그리고 이곳에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제 나섬이 그런 브랜드의 섬이 되고 있다. 오늘도 나는 그 섬을 사랑한다. 조용히 그 섬을 살피고 그 섬 안에서 자라는 아이들과 하나가 되고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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