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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톡 112 평화캠프(Peace Camp)로 통일학교를 만들자

평화캠프(Peace Camp)로 통일학교를 만들자

오래전부터 꿈을 꾸었다. 내 생애 가장 마지막으로 하고픈 일이 있었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군목을 전역하고 연구소에서 책을 번역하고 일을 하면서도 그 꿈을 꾸었다. 나그네 이주민들을 선교하면서 통일과 이주민이라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주제에 대하여 연구하고 생각하면서 하나의 큰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독일의 통일과 이주민은 매우 중요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얼마나 흥분하며 책을 읽었는지 모른다. 우리나라의 탈북자와 이주민의 관계는 독일 통일과정에서 드러난 동독 이탈주민과 독일내 이주민 사이에서 벌어진 심각한 사회적 문제와 비교할 수 있어 나에게 큰 연구과제로 남아 있었다. 오랫동안 이주민 목회를 하면서 이제는 통일이 내 사역과 나섬의 마지막 과제라는 사실을 점차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조금씩 생각하며 준비해왔다. 그리고 이제 그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더욱 그 생각이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개성공단은 우리민족의 통일학교이며 훈련장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더 이상 개성시대는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다시 문을 연다하더라도 누가 개성에 공장을 세우고 투자를 하겠는가? 이미 신뢰를 잃은 개성의 시대는 오지 않을 것 같다.
여기에 덧붙여 탈북자 문제가 심각하다. 현재 2만 7천여명의 탈북자가 우리 사회에 들어와 있지만 그들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던 이들이 자본주의 문화에 적응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일자리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 그러니 이들의 문제는 곧 우리의 문제가 된다.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게 되었다. 겨우 3만도 되지 않는 탈북자 문제도 풀어내지 못하는 우리에게 미래 통일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되었다. 여기에 이주민들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결부된다.
독일통일 과정에서 동독인구의 8%가 서독으로 내려온다. 국민소득의 차이가 약 4:1정도에서 벌어진 난민들의 이동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만약 북한 이탈주민들이 우리 쪽으로 내려오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 숫자는 재앙의 수준이다. 겉으로 계산하여 독일의 경우처럼 인구의 8%만 내려온다고 하더라도 약 200만 명의 탈북난민들이 내려오게 된다. 지금 3만 명이 채 되지 않는 탈북민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200만 명의 탈북민이 내려온다면 이건 통일이 아니라 피차 망하는 지름길로 달려가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우리의 상황은 아찔할 정도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갑작스러운 통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제대로 준비도 되지않은 가운데 우리는 통일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이 문제로부터 우리의 사역은 시작된다. 교회가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몽골을 주목했다. 몽골은 역사적으로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206년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이 시작되면서, 그리고 그의 손자 쿠빌라이칸의 원나라 제국이 들어서면서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이 된다. 약 100년 동안 우리는 몽골제국의 위성국가로서 존재한다. 그 후 800년이 지나 세계화가 되고 우리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몽골은 우리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나와 나섬은 그 한복판에 서 있다.
1996년 우리나라에 몽골인들이 처음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나는 몽골인들과 만나기 시작하였다. 당시는 성수공단지역에서 이주민사역을 했었다. 수많은 몽골인이 우리 공동체를 찾아왔다. 운명처럼 몽골인과 만나진 것이다. 얼마나 많은 몽골인이 우리 사역지를 찾아왔던지 심지어 몽골의 신문광고에 우리 공동체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한국에 가면 2호선 뚝섬역 근처 어떤 교회 지하에 있는 유해근 목사를 찾아가라는 광고였다.
그 후 우리는 한걸음 나아가 몽골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교회를 세웠다. 그것이 오늘날 울란바타르 선교교회다. 당시 울란바타르시의 엥흐볼트시장이 파격적으로 내어준 땅에 교회를 세웠고 지금 그 지역은 몽골의 중심이 되었다.
그 후 1999년 나는 서울에 재한몽골학교를 세웠으며, 현재 전교생 200명이 넘는 큰 학교로 성장했다. 2001년에는 몽골문화원을 만들어 외교통상부 법인으로 인가를 받아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수많은 몽골인들을 만나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몽골의 지도자들을 만났다.
이제는 몽골이다. 몽골을 평화 공동체의 베이스캠프로 만드는 꿈을 꾼다. 몽골은 1921년 중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몽골은 소련을 제1수교국으로, 북한을 두 번째 수교국으로 두고 있다. 현재의 주한몽골대사도 평양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한 사람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몽골의 관료들 중 한국말이 유창하다면 거의 대부분 평양에서 근무하였거나 김일성 대학 출신들이다. 그만큼 몽골은 북한과 가까운 나라다. 현재 몽골에 거주하는 북한 사람들은 우리나라 교민들보다 많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탈북자들의 대부분이 몽골을 경유해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몽골은 우리에게 가장 효과적인 통일학교의 교육장이 될 수 있다. 선교적,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이제는 통일을 위한 평화캠프가 바로 몽골이라는 것이다. 통일을 위한 베이스캠프가 몽골이다. 히말라야를 오를 때에 베이스캠프가 필요하듯이 통일을 향한 우리에게 베이스캠프는 몽골이다.
개성을 대체할 수 있는 몽골에 평화캠프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사역이다. 우리는 몽골을 위하여 20여 년을 헌신해 왔다. 다시 말하여 우리는 몽골에 대하여 도덕적 명분을 갖고 있다. 우리의 평화를 위한 분명한 명분이 나섬공동체와 재한몽골학교에 있다. 이것은 몽골을 경제적으로 먹고 살게 하는 길이며 동시에 우리 민족의 통일을 위한 큰 사역이 된다. 많은 목회자와 은퇴자 그리고 청년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컨텐츠다.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나섬은 오랫동안 이 일을 준비해 왔다. 오늘의 평화 캠프 프로젝트를 위하여 준비해 왔다. 이제 그 사역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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