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지금처럼 사는 것은 어떨까?
한 달에 한 번씩 나섬공동체에 오셔서 의료 진료를 해주시는 집사님이 계시다. 과거 강남의 큰 의료기관의 원장이기도 하셨던 집사님은 이제 거의 80이 되신 분이다. 그렇게 연세가 드셨음에도 몇 년째 우리 공동체에서 의료봉사를 하신다. 올해도 어김없이 진료를 오셔서 만나 뵙게 되었다.
차 집사님은 나를 보시면 언제나 내 눈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하여 매우 안타까워하신다. 얼마 전에도 내 눈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던 중 줄기세포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지금 집사님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시신경을 재생시키는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니 빨리 신청을 해 놓으라 하신다. 아마 상당한 가능성이 있을 거라며 말이다.
어느 병원이라 병원의 이름까지 말씀해 주면서 내게 분명히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주신다. 앞으로 내 눈이 보이는 것은 문제가 없으니 힘을 내라고 위로하시는 집사님의 말씀 속에 진정성이 느껴지니 참 감사하고 고맙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한다.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희망을 가져보기도 한다. 정말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도 힘들고 고통스러워 다시 볼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다.
그러다 문득 혹시 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보다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본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보게 된다면 가장 좋은 것은 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언제나 만날 수 있고 그리고... 그 다음은 무엇인가? 지금 돌아다닐 수 없음이 불편하지만 그래도 나는 가야할 곳은 다 간다.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보게 된다는 것이 불편함만을 이겨낼 수만 있다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보게 된다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쓸데없이 시간만 소비하는 삶을 살지도 모른다. 이미 충분히 보았고 충분히 돌아다니지 않았던가? 본다는 것과 보지 못한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아무 것도 아니다. 그저 내 마음의 문제일뿐 내 삶에 본다는 것의 의미는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나는 보게됨으로 더 많은 희생을 각오해야만할지도 모른다.
볼 수 없었음으로 나는 여기까지 왔다. 학교를 세웠고 선교공동체를 만들었으며, 볼 수 없음으로 더 많은 생각을 했다. 보지 못함으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 육신의 눈이 보이지 않아 마음의 눈, 영혼의 눈을 뜨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육신의 눈을 다시 보려한다는 것은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본다는 것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차라리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나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좋은 것일 게다. 이 고통만 이겨낼 수 있다면 더 많은 은혜를 누릴 수도 있다. 헬렌 켈러는 그녀의 수필집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서 하나님은 한 쪽문을 닫으시면 또 다른 문을 열어놓으신다 했다. 내가 살아온 날들을 이리저리 계산해보면 보지 못하고 살았던 삶이 더 유익했다. 더 은혜로웠으며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볼 수 없음은 저주가 아니라 은총일 수 있다. 모두가 보지만 그들이 본 것은 실로 작은 것들이다. 나는 보지 못함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볼 수 없음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상상하는 습관이 생겼다. 눈으로만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훈련을 하기 시작했으며,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내기 위하여 나는 집중하는 능력을 키웠다.
생각하고 상상하는 습관은 꿈을 꾸는 삶으로 나를 이끌었으며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힘을 갖게 했다. 보지 못함으로 나는 더 강해졌으며 볼 수 없음으로 나는 내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 보지 못함으로 나는 간절해졌고 열정을 소유하게 되었다. 보지 못함으로 나는 집념이 생겼으며 오기가 살아났다. 그래서 세상을 이기고 싶었고 더 위대하게 쓰임받기를 갈구했다.
오늘 나의 모습은 보지 못하는 삶의 결과다. 보게 되었다면 이보다 더 잘 살았을까? 아니다. 보지 못한 것이 다행이다. 그래서 내 삶에 고난은 은총이며 감사의 조건이 되었다.
보지 못해도 된다. 보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성공했고 그들이 모두 쓰임 받고 살았는가? 몇 년 전 만났던 강영우 박사님이 '유목사님, 나는 눈이 보이지 않아 성공한 사람입니다'라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내게 울림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