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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톡74 송재천 목사님을 보내면서


송재천 목사님을 보내면서

송목사님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얼마 전 전화를 하셔서 내게 안부를 물으셨기 때문이다. 그때에 송 목사님은 아들 문호가 카페를 잘 운영하고 있다며 좋아하셨다. 하긴 그 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사님의 목소리에 힘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언제나 활기차게 살아가는 분이셨기에 그리 큰 걱정이나 염려는 없었다. 오히려 나보다 더 건강한 분이셨으니 목사님의 소천 소식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송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90년이다. 나보다 신학교 기수는 3년 선배셨지만 나이 차이가  많이 났으니 목사님과 마주할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내가 군목을 전역하고 기독교아시아연구원에서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을 때에 목사님을 처음 만났다. 언제나 유모와 배려가 남다른 분이셨기에 자연스레 큰 형님처럼 모시게 되었다.
그 당시 가난한 연구소에서 점심 때 자장면 한 그릇이 전부였지만 나는 그 때를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한다. 오래전 위암으로 소천하신 한준식 장로님과 송 목사님 등 나는 내 아버지쯤 되시는 어른들과 어울리며 그분들의 삶과 가르침에 적지 않은 힘과 위로를 받으며 살아왔다. 때로는 혼이 나기도 했지만 한참 어린 나를 사랑하시는 마음은 언제나 내게 용기를 갖게 하였다. 
내가 외국인노동자선교를 한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만류하였지만 그분들만큼은 내게 잘한 결정이라며 칭찬하셨다. 그리고 내가 구로공단에서 외국인노동자선교를 하다가 2호선 강변역 근처로 사역지를 옮겨 재한몽골학교를 처음 시작하였을 때에 송 목사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당시 송 목사님은 홀트아동복지회 회장으로 계셨는데 그 때 목사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몽골학교가 지금에 이르지 못했으리라. 그렇게 맺어진 관계였기에 일 년에 두어 번은 만나 뵙고 좋아하시는 보신탕이라도 대접하며 교제를 나누기도 했었다. 그런 날이면 기분이 좋아 크게 웃고 행복해 하시던 송 목사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몽골학교를 다 짓고 한 번 더 모시려 했는데 그만 시간을 놓쳐버렸다. 정말 아쉽고 아프다. 목사님이 계셨기에 재한몽골학교를 시작할 수 있었다는 나의 고백은 사실이며 그래서 목사님과 몽골학교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한번은 우리 학교가 광장동 어느 고시원 지하실에 있었을 때다. 그날은 우리학교 이전예배를 드리는 날이었으며 몽골의 울란바타르 시장도 참석했었다. 홀트 회장으로 송 목사님을 꼭 모시고 싶다고 연락을 했더니 마침 지방에서 또 다른 행사가 있어 참석이 어려울 거라 하셨다. 우리에겐 큰 행사이며 의미있는 출발이었기에 무척 아쉬웠고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우리가 행사를 시작하려 할 때에 홀트 회장님이 오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얼마나 고맙고 반가웠던지! 꾸벅 인사를 하고는 “형님! 감사합니다.”하고 덥썩 그분의 손을 잡았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매월 40만원씩을 몽골학교 후원금으로 보내주셨기에 학교를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그것은 매우 큰돈이었다. 염과장이라는 착하고 똑똑한 홀트 과장을 우리에게 직접 보내어  잘 도우라 당부하셨던 기억도 난다. 15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내게는 생생한 기억이다.
아들 문호가 시각 장애인이 되었지만 씩씩하게 잘 살고 있다며 좋아하시던 모습, 그러다 내가 시각장애인이 되어 울고 있을 때에 나를 꼭 안아주시던 그 형님의 손길은 이제 세상에 없다. 아들과 내가 모두 눈이 안보였음으로 그렇게나 안타까워하시던 목사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홀트회장으로 계시면서도 집에서 복지회관까지는 전철을 타고 다니실 만큼 청렴했던 분이셨다. 오래전 당신이 기독공보 기자시절에 겪었던 교계 이야기를 해 주시면 그 자체가 역사였다. 나는 그렇게 목사님을 존경하고 사랑했다. 내게는 정말 큰 형님이셨다. 그런데 그분이 돌아가셨다. 인생의 허무함이 몰려온다.
내가 외국인노동자 사역을 하면서 다시 교회를 시작하였을 때에는 목회의 상담자였으며 동역자였다. 내가 외국에라도 가게 되면 형님 목사님이 예배를 인도해 주시기도 했다. 든든한 힘이 되었던 목사님이 가셨다. 왜 이리 빨리 가셔야 했는지 묻고 싶지만 이제 그분은 세상에 없다. 
오늘 아침은 나와 몽골학교를 사랑하셨던 송 목사님이 더욱 더 그립다. 정말 소중한 선배가 떠나 가셨다. 많이 아쉽고 허전하지만 기꺼이 인사드리고 싶다.
"재천 형님! 잘 사셨습니다. 이제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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