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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하이웨이 2 / 터키편(2)미션하이웨이


이스탄불에서 호잣 목사와 걷다.

미션 하이웨이 프로젝트는 나섬과 뉴라이프 선교회의 마지막 비전이다. 이주민 나그네를 순례자로 만들고 그들을 다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역파송의 선교사로 보내면 세계에 선교거점이 마련된다. 그리고 그 거점 혹은 선교의 베이스캠프를 나섬의 성도들과 뉴라이프 선교회의 회원들이 찾아가 섬기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미션 하이웨이 프로젝트의 개념이다.
역파송된 현지인 선교사들을 위하여 중보기도 하며 위로의 말 한마디와 평안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실제로 현지인들을 위한 선교적 삶을 사는 것까지 모두 미션 하이웨이 프로젝트의 사역이 될 수 있다. 
이번 터키의 여정 중에 우리가 호잣 선교사 가정을 만나고 그들을 위하여 중보하고 위로하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의 성지순례 일정이 있었으므로 호잣트 가정은 첫날과 마지막 날 잠시 만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위로와 중보의 시간이 얼마나 의미있는 미션 하이웨이의 사역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가 돌아오는 마지막 날 오후, 나와 아내는 호잣 선교사 내외와 두 자녀 에스더와 요한이 네 식구와 더불어 이스탄불을 한 시간 동안 걸을 수 있었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걷는 그 길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우리 외에 그곳을 걷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바닷가 곳곳에서는 고등어 케밥을 파는 곳이 있는지 고등어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러나 그  비린 냄새가 그리 싫지는 않았다.
앞에서는 요한이와 에스더가 서로 장난을 치며 뛰어간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줘서 무엇보다 고마웠다. 그들을 보낸 후 가장 걱정이 된 것이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적응을 못하면 어떻게 하나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던 터라 더욱 그랬다. 네 식구가 처음 이스탄불에 왔을 때에 요한이가 매우 힘들어 했다고 들었다. 밤에 잠을 자다가는 갑자기 일어나 소리를 지르고 한바탕 우는 등 힘들어했다는 얘기를 들었으므로 더욱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와서 보니 아이들이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정말 다행이다. 가장 큰 염려가 사라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그 가정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지난 8개월의 시간이 얼마나 가슴 저리게 느껴지는지 내 가슴에서 공감이 되며 눈물이 흘렀다. 도착하자마자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삿짐을 받지 못한 것이었다. 서울에서 짐을 보낸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 조금 싸게 보낼 방법을 찾다보니 물류회사를 잘못 선정한 결과였다. 뿐만아니라 터키세관에서도 지루하게 시간을 끌며 짐 통관을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아이들과 살아야 하는 현지에서의 삶은 그자체가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내야했던 시간이 수개월이었다 한다.
집을 구하는 문제도 간단하지 않았다. 우리가 보내는 적은 선교비로 집을 얻어야 하는 상황에서 그에 맞는 집을 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게다. 특히 아이들의 학교까지 고려해야했으니 참 고민이 많았음이 느껴졌다. 미안했다. 넉넉하게 지원하지 못해서 미안했고 아이들의 문제를 더 많이 고민해 주지 못해 미안했다. 그러나 오늘은 참 좋다. 아이들이 이스탄불을 뛰고 우리는 그 길을 걷고 있었음으로 참 좋았다. 

그리고 그들이 힘들었던 것은 한국인들과의 관계 문제였다고 한다. 특히 선교사들과의 관계는 매우 민감하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나는 안다. 선교지에서 가장 힘든 것은, 아니 무서운 것은 같은 선교사들이라고 한다. 이 말은 내가 지어낸 것이 아니고 선교사들이 하는 일관된 이야기이니 분명 호잣의 그 말은 맞는 말일게다.
특히 한국인이면서도 한국인이 아닌 호잣 선교사에게 한국인 선교사들의 경계하는 눈초리와 때로는 함께 사역을 하자고 내미는 손 사이에서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고 버텨야 하는 것은 참으로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실제로 이스탄불과 앙카라 지역 등에서 직접 서울에 있는 나에게까지 연락을 할 정도였으니 그의 곤혹스러움은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에는 할 수 없이 호잣이 앙카라까지 방문하여 어느 선교단체가 운영하는 이란인 예배에도 참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어느 선교단체와도 관계를 하지 말고 독자적으로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라고 이야기해 주었음으로 호잣은 지금 어느 누구와도 손을 잡고 있지 않다. 사실 그는 다른 사람과는 확연히 차별화된 이란계 한국인이다. 그런 그의 조건은 전혀 새로운 선교를 위한 조건이라고 판단했다. 그런 배경은 그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의 선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창조적으로 살아야 한다. 선교도 창조적으로 할 수 있음을 믿는다. 그것은 나섬과 호잣 그리고 내게 주신 은사라고 생각한다. 아류는 싫다. 창조적으로 살고 싶다.
이호잣 목사는 이스탄불을 걷는 내내 그런 내 마음을 알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비전을 이야기했다. 먼저 현재까지 그의 선교 상황을 보고했다. 이스탄불에 도착한지는 8개월 여 되었지만 이삿짐 문제, 집 문제, 아이들 학교 문제 등을 해결하고 나니 5개월 여의 시간이 흘렀다 한다. 그리고 사역에 몰두한 지 이제 불과 3-4개월이다. 그런데 벌써 6명의 이란인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한다. 세례 베푸는 동영상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이야기를 듣자니 큰 감동이 몰려왔다. 세례를 받고 있는 이란인 부부 옆에서 그들의 어머니가 눈물짓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감격적이다. 아내는 내게 그 모든 장면들을 설명하면서 자신도 은혜를 받고 있었다. 참 고맙다. 기쁘고 감사하다.

몇 년 전 아랍에미리트 선교사 한분이 내게 그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아랍에미리트에 파송된 지 13년이 지났지만 솔직히 단 한명도 선교할 수 없었노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서울에서 이루어지는 이슬람 선교를 보니 참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말하였다. 그 말이 기억나면서 우리의 나그네 선교와 역파송의 선교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실감했었다. 그렇다. 지금은 이주민 선교의 시대다. 그리고 나아가 역파송의 선교가 답이다.
호잣의 역파송 선교를 보면서 이 사실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가능성과 비전이 더욱 분명히 보였다. 지금 터키는 난민들의 용광로다. 이란에서 온 난민들은 물론이고 아프카니스탄과 타지크스탄, 시리아 난민, 이라크 난민, 쿠르드 난민 등 수많은 난민들이 몰려오고 있다. 나는 현지에서 직접 그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터키는 이슬람 선교의 베이스  캠프다. 터키를 주목하여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터키에 이란계 한국인 이호잣 선교사 가정을 파송한 것이다. 이런 기가 막힌 타이밍이 어디 있는가? 하나님의 섭리는 오묘하며 위대하다.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시간에 오랫동안 훈련받은 호잣이 거기에 있다. 나는 이스탄불을 걸으며 하나님의 때가 이렇게 절실하고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세계는 바뀌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이 변하고 있다. 갈등하고 충돌하면서 콘스탄티노플과 이스탄불이 싸웠던 그 역사처럼 세계는 치열하게 자신의 종교와 영성을 위하여 다투고 있다. 서양과 아시아가 경쟁하고 있다. 그 한복판에 한국에서 온 이란계 한국인 호잣 목사가  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
우리 인생이 쓰임 받고 위대해지는 것은 역사의 현재와 하나님의 시간이 내 삶과 오버 랩 되는 순간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시간에,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는 땅에 우리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공간에 다름 아닌 나라는 실존이  머물러 있어야 역사가 일어난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와 관계가 있기를 원한다면 우리 각자는 그 순간 결단하고 그 자리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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