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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화성 외국인 보호소로 돌아가시는 예수님


2012년 11월 이란에서 온 아르민 형제가 화성의 외국인 보호소로 들어갔다. 물론 불법체류자였기 때문에 그리된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런 이유만은 아니다. 그는 이란의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다가 한국으로 피신하여 왔고 처음에는 정치 난민을 요청하였으나 불허되어 불법체류자로 남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찾아온 곳이 우리 공동체다. 무슬림으로 살던 아르민 형제에게 기독교는 특별한 느낌을 주었을까? 그는 매우 적극적으로 교회에 출석하였으며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그는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으로 회심하였다. 그리고 다시 종교난민 지위를 얻기 위하여 법무부를 찾아갔지만 거절되었고 몇 번의 시도를 했지만 결국 불법체류자 신분이 드러나는 바람에 화성의 외국인 보호소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내가 그를 면회하기 위해 화성의 보호소를 찾아간 것은 작년 12월쯤이었다. 화성의 외국인 보호소로 가는 길은 멀었다. 일찍 출발했지만 그곳까지 가는 길은 짧지 않아 결국 점심을 먹고 그를 면회하게 되었다. 그의 친구이자 이제는 목사가 된 이란인 호잣트와 함께 면회실에 들어갔다. 겨우 얼굴의 윤곽만 보이는 흐릿한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우리는 전화기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설픈 한국말이지만 그의 한국말은 내게 마치 예수님의 한국말 음성처럼 들렸다. 마태복음 25장 36절의 옥에 갇힌 자를 찾아 가는 것이 곧 나를 찾아가는 것이라 말씀하신 예수님을 생각했다. 나그네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고 있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고통을 위로하기 위하여 찾아온 것이 그리 고마웠을까? 아르민은 보호소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도 울고 그도 울며 우리는 한동안 서로의 안부를 묻고 위로의 말을 주고받았다. 면회를 마치고 나오는 내게 호잣트 목사는 '목사님은 오늘 예수님을 만나고 나오시는 거네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나그네는 언제나 내게 예수님이었다. 예수님처럼 그들을 영접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고백하며 이 사역을 하고 있다. 벌써 20여년이 훌쩍 지났다. 구로동에서 처음 시작한 나그네 사역은 어느새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하였다. 짧게 경험삼아 한 번 해보자고 시작한 나그네 사역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 사역은 나의 전부가 되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고통 받으며 늙어간다. 이제는 눈도 보이지 않는 장애인이 되었다. 머리는 온통 희어졌고 이빨도 하나씩 내 잇몸에서 이탈하고 있다. 내 삶에 남은 것은 고통의 흔적과 소외의 삶에 대한 기억들뿐이다. 그러나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럴 리 없겠지만 또 다시 태어나는 일이 생긴다면, 내게 또 한 번의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렇다. 나는 다시 나섬의 사역을 할 것이다. 나그네를 섬기는 나섬의 사역이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역이니 말이다. 아르민은 얼마 전 일시보호해제를 통해 잠시 외출을 했다. 무릎수술을 위해 내가 보증을 하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3개월의 일시보호해제 기간 동안 그는 수술을 받고 난민지위를 얻기 위한 마지막 노력을 다하려고 한다. 만약 그렇게 해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그는 다시 화성의 외국인 보호소로 들어가야 한다. 내가 그를 보증하기 위하여 출입국 관리소의 담당자를 만났을 때에 그는 내게 아르민을 2013년 12월 26일까지 보호소에 입감시켜야 한다는 서약서에 사인을 하라고 했다. 나는 그 약속을 지키겠다며 사인을 했었다. 그 시간이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다. 나와 아르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미약한 존재임을 느끼며 좌절한다. 내 능력의 한계 앞에 마음이 아프다. 무엇이 하나님의 섭리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냥 돕고 섬기는 것이 내 삶이고 주어진 사역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제 곧 아르민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은 화성의 보호소에 다시 들어가야 한다. 역사는 그렇게 언제나 예수님을 춥고 고달프며 소외된 곳으로 보냈었다. 오늘도 우리는 예수님을 그렇게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섬공동체 유해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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