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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과 커피


유목민과 커피

커피가 인류에게 알려진 것은 이슬람 때문이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시작된 이슬람은 북아프리카 이디오피아에서 커피를 발견하고 자신들의 본거지인 예멘에서 커피를 경작하기 시작한다. 무슬림들이 예멘에서 커피를 경작하고 즐기기 시작한 것이  언제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최근의 고고학 발굴에서 나타난 바에 따르면 대강 주후 12세기 정도라고 추측하고 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무슬림들이 술 대신 카페인이 들어있는 커피를 마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커피를 무슬림의 와인이라고도 한다. 
커피가 처음 경작되기 시작한 예멘에서는 철저히 자신들만이 독점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커피의 씨앗은 예멘 이외의 다른 곳으로 반출할 수 없었다. 오직 원두로 만들어진 커피만이 모카항구를 통하여 지중해 인근으로 수출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모든 사람이 마시고 즐기는 커피를 예멘에서만 경작한다는 것에 대하여 동의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네덜란드의 어느 상인에 의하여 커피의 생두가 몰래 반출되었다. 마치 문익점에 의하여 중국의 목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의 결단을 통하여 역사는 진보한다.

네덜란드로 들어온 커피는 곧장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에 뿌려지고 연이어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과 같은 제국들의 식민지에서 경작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커피는 전세계인의 가장 선호하는 음료가 되었다. 초기에 커피는 악마의 음료라고해서 기독교인들은 마실 수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 인간들의 삶속에 흘러가는 문화와 문명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을까. 
지중해를 중심으로 마시기 시작한 커피는 기독교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마시기 시작하자 로마의 교회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급기야 17세기에 들어 클레멘트 8세는 커피에 세례를 주고 기독교인들도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공포한다. 이슬람에서 시작된 커피가 기독교인들에게도 마실 수 있는 공통의 음료가 된 것이다.
아마도 이슬람과 기독교가 하나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커피 앞에서이다.

나는 사회적기업 나섬을 만들고 '커피볶(coffee福)'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커피를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커피는 내게 단순한 음식 이상의 의미를 던져준다. 커피 안에 들어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찾아가면서 나는 마치 어린아이가 보물을 찾은 것 같은 즐거움을 느낀다. 

먼저 커피의 역사와 전래에서 보는 것처럼 커피가 우리에게까지 오는 과정은 복음의 전파와 같은 방법을 통해서다. 만약 커피가 아라비아 반도의 예멘에서만 경작되어야 했다면 과연 그 커피가 세계인의 음료가 될 수 있었을까?
인간은 독점하려는 욕구가 강하지만 역사는 결코 인간이 독점하는 그것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독점과 지배는 인류를 불공평하게 만들며 만약 그 독점을 용인하는 어떤 세력이 있다면 그것을 거부하라고 가르쳐왔다.    
한 곳에 머무는 역사는 없다. 흐르지 않고 머물고자 하는 문화와 문명은 이미 죽은 것이다. 종교와 철학, 기술과 과학, 그리고 예술이 의미 있는 것이 되려면 반드시 흘러가야 한다. 흐르지 않고 한 곳에서 머물려한다면 그것은 이미 썩은 것으로 도태하고 말 것이다. 
커피가 썩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커피를 독점하려는 세력과 그것을 전파 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한바탕 투쟁을 한 결과이다. 
불공정한 독점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죄성의 결과이다. 그것은 성에 갇힌 기득권자들이 자기의 것을 지키고 독점하려는 욕심과 같다. 우리는 부패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없이 그것을 본다. 뿐만아니라 흐르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서도 그것이 나타나고 있으니 지금 우리는 죄성에 갇힌 독점의 시대를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커피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인간사의 이야기이며 종교와 문명의 이야기이다. 흘러야 한다는 확실한 역사적 명제를 함축하는 분명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나는 커피가 곧 유목민이라고 부르고 싶다. 유목민의 삶과 커피는 같은 이야기를 갖고 있는 것이다.

내가 다문화 이주자들을 목회하면서 사회적기업을 만들고 커피를 알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분명 필연이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섭리이다.
2009년 11월 초 어느 날 나는 가배두림의 이동진 사장을 만났다. 무척이나 섬세하고 깔끔한 젊은 기독교인이며 기업가다. 나보다 한참이나 연하인 그에게서 느끼는 것은 경솔하지 않은 진중함과 그러나 결코 부담스럽지 않는 친근함이었다.
말하는 자세에서부터 사람을 대하는 모든 태도에 커피 향 같은 냄새가 났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친구를 만났다. 국회의사당 안에 있는 카페 가배두림에서 만난 그는 첫 인사로 내게 무슨 커피를 드시겠느냐고 묻는다.

"목사님, 오늘은 제가 선택해 드리는 것으로 드시지요."
"이사장님, 저는 커피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몰라요. 그러니 주시는 것으로 할께요."
"그러지요. 자, 오늘은 카페라떼입니다."

내가 카페라떼를 마셔본 적은 있는가? 라떼가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무식하면 이렇구나하는 생각이다. 정말 나는 커피에 대하여 무식을 넘어 무지했다. 카페라떼가 나온다. 커피에 우유를 섞어 만든 것이란다. 가배두림의 그 카페라떼는 냄새부터가 다르다. 잘 볶아진 원두를 갈아 훈련된 바리스타가 순간적으로 추출한 원액에 우유를 섞었으니 그 신선함과 향, 그리고 맛은 일품이었다. 내가 이런 커피를 마셔본 적은 있는가?

나는 천원짜리 라면 먹고 5천원짜리 스타박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은 여전한 내 생각이다. 아직도 내게 커피는 뛰어넘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지금 내게 커피는 가장 매력적인 것이며 조금씩 그 매력 앞에 나를 내려놓고 있다.

내가 호주의 시드니로 집회나 안식년을 갈 때면 내게 아주 조촐한 아침식사를 대접하는 집사님 부부가 있다. 나는 그분들과 함께 하는 아침 식사를 좋아한다.
때로는 집 앞의 작은 길거리 카페에서 큰 머그컵에 가득한 카페라떼와 토스트가 전부인 아침도 좋고, 토요일 브런치로 즐기는 시드니 외곽의 해변 카페에서의 식사도 좋다.
그 길거리 카페든 해변 카페든 나는 카페라떼를 마신다. 아마 호주의 시드니에서 마셔본 그 카페라떼 이후 나는 한국에서는 마셔본 적도 없는 카페라떼를 이동진 사장의 권유로 받아 마셨다.     

"어떠세요?"
"아주 맛이 있어요."

카페라떼란 이런 것이었다. 라떼라는 말이 우유라는 것도 그날 알았으니 정말 라떼 한 잔의 새로운 경험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이렇게 무식한 놈이 있었나' 싶겠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나는 카페라떼도 몰랐고, 사실은 카페에 커피 마시러 간다는 것에 대하여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저 믹스 커피 한 잔이면 족했으며, 그것도 없으면 마시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목사님, 커피 안에는 많은 이야기 꺼리가 있어요. 커피는 우리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소통하게 하는 어떤 힘이 있지요. 커피 안에는... ..."
이동진 사장의 계속되는 커피자랑에 정신을 잃을 뻔했다. 한 시간인가 이 사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득하게 무엇인가 나를 감싸는 어떤 힘을 느꼈다. 커피 안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말에 새삼 도전해 보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가 생겼다. 정말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제 커피 안에서 찾고 싶은 것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도 있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설사 실패한다고 해도 나는 후회하지 않을 새로움에 도전을 시작했다. 어쩌면 보기 좋게 패배할지도 모른다.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눈깜짝할 사이에 나는 커피의 모든 것에 올인을 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신출귀몰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정말 저돌적인 추진력이라고도 한다. 겁도 없이 시작한 커피 사업은 나와 나섬의 성격 그대로인지도 모르겠다.

커피를 내리는 사람을 바리스타라고 한다. 바리스타라는 말도 커피를 시작하면서 알았으니 무식해도 분수를 넘는 무식이다. 어째든 나는 바리스타가 아니지만 바리스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희망을 주는 바리스타라면 좋겠다고 판단했다. 또 하나는 우리 공동체 안의 이주자들에게도 바리스타 교육을 시키면 좋겠다 싶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가장 고민스러운 것은 언제나 돈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주자들이 스스로 자립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터전을 어떻게든 만들어 주고 싶었다. 바리스타가 되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성질 급한 내게 단 하루라도 시간을 끓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그날 당장 이주자들을 모았다. 처음에는 장신대를 다니는 우리 신학생들이 대상이었다.
우리 나섬공동체 안에는 장신대를 다니는 신학생들이 여럿이다. 몽골, 이란, 터키, 중국, 인도... 이들을 역파송하고, 그렇게 해서 새로운 선교를 만들어가고 싶었다. 욕심인가? 아니다. 이것은 비전이다. 이미 몽골에 역파송한 일도 있다. 문제는 지속적인 선교비를 충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공부시키고 역파송하고 지속가능한 선교를 해야 한다는 부담은 언제나 내 삶에 무게를 더 했다. 그런데 커피가 내게 다가왔다. 커피가 대안이다. 지속가능한 선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소중한 통로다. 그렇다! 바리스타가 되어 스스로 자립하고 자생할 수 있는 어떤 근거를 만들어 줄 수 있겠다 싶었다. 역파송된 선교사가 바리스타가 되어 카페를 운영하는 것이다. 평일에는 카페와 바리스타로, 주일에는 예배공간과 선교사로 쓰임 받으면 된다. 카페교회가 답이다. 바리스타가 선교사가 되면 되는 것이다.
삶은 언제나 선교적 이어야 한다고 배웠다. 삶과 증인이 나누어지는 것은 이원론의 결과이다. 우리 삶은 언제나 선교이고 증인이어야 한다고 어떤 선배로부터 배웠다. 그 선배가 누구인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그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아니다. 사실은 그 말은 내가 한 말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기에는 너무 부끄러워 누군가 이름 모를 선배를 끌고 들어온 것뿐이다. 그러나 내 말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비록 거짓과 위선의 삶은 여전하지만 그렇게 일치된 삶을 살고 싶었다. 앞으로라도 아주 짧은 시간일지라도 그렇게 한번 살다가 죽고 싶었다. 

카페교회와 바리스타 선교사에 대한 생각이 익어가자 나는 서슴없이 우리 신학생들에게 바리스타 교육을 시켰다. 그리고 그들에게 분명히 말했다. 여러분들은 언젠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서도 바리스타가 되어 선교사로서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생각이라고도 했다.

유목민들에게 커피를 가르치는 것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안산에서 몇 명의 태국인들이 찾아와 바리스타 교육을 받겠다고 한다. 놀랐다.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커피를 가르치고 그 교육이 그들의 고국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기회를 줄 것이라는 예감이다.
중국의 신장 우루무치에서 선교사를 하던 어떤 젊은 자비량 선교사도 커피를 배운다고 한다. 또 태국의 어떤 선교사님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인도네시아의 손 선교사님 가족은 모두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돌아갔다. 곧 인도네시아에서 커피볶(coffee福)을 시작하고 싶다고도 한다. 각 교회 카페 운영자들을 위한 커피 교육도 시작했다. 지난 5월에는 경기도 양평에서 커피 축제도 했었다. 이런 정신없는 사람을 보았는가?

나는 유목민이다. 나는 유목민들을 선교하고 유목적 삶이 한국교회가 나아가야하는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언제나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도전을 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21세기 한국교회와 목회자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해왔다.
지금은 오해와 왜곡의 시선으로 힘들겠지만 그래도 이겨내야 한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무지한 사람들의 비판에 대하여도 극복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저들이 나와 나섬의 새로움에 대하여 존경할 날이 올 것이라고 예언 아닌 예언을 한다.
우리는 성을 쌓는 사람들이 아니고 길을 내는 사람이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언제든 떠나는 것에 대하여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창조하고 혁신하는 것은 우리 사역의 가장 중요한 화두다. 창조하는 사역, 혁신하는 사역을 통하여 한국교회가 새롭게 개혁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나와 내 생각이 허위가 아님을 커피 한잔에 섞었다. 우리가 가는 유목민의 삶과 커피의 사역에 마지막 희망을 탔다. 나는 실패할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패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망하면 좋아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는 후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차피 성공하기 위하여 살아온 세월은 아니었다. 나는 수없이 좌절했고 절망하면서 살았다. 긴긴 밤을 눈물로 채웠고, 속에서 터지는 분노를 친구처럼 살아야 했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눈먼 자의 삶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단 10미터도 홀로 나갈 수 없는 절망감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 얼마나 이 고통이 큰지를 당사자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눈에 대한 나의 고통은 나를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지탱할 수 없도록 만들어 간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 처절하게 죽어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하나의 희망으로 유목민들에게 커피를 탄다. 커피 한잔을 대접하기 위하여 커피를 만들고 그 안에 새로운 대안이 있음을 몸으로 알려주고 싶어 커피를 내린다.

눈먼 목사가 만든 커피는 맛이 어떨까? 하긴 맛이 뭐 그렇게 중요할까? 커피 안에 들어있는 이야기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새로운 미래를 커피 안에 녹여주는 우리 커피 한잔 마셔보면 어떨까?

가배두림 이동진 사장은 내 삶에 새로움을 가르쳐 준 은인이다. 나는 그를 위하여 기도한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반드시 일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확신하기는 그는 분명히 성공적인 기업을 이룰 것이다. 그는 한낱 몇 푼의 돈을 쫒는 장사꾼이 아니라 꿈꾸는 요셉 같은 기업가이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우리 커피볶의 커피만을 마신다. 이런 주책없는 자기 자랑? 그러나 확신하건데 이것은 맞다. 우리커피가 가장 맛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도 우리 나섬의 커피볶(coffee福) 만큼 맛있고 향기 좋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우리 커피 한잔을 곁에 놓고 그 기막힌 향을 맛보며 앉아 있다. 
유목민과 커피는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동일한 이야기를 갖고 있다. 철학적이며 신학적 주제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창조물 중에 가장 향기로운 음식이 커피라고 했던가! 그렇다. 유목민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모습이다. 떠나고 길을 만들어가는 유목적 삶은 인간 역사의 전진을 위한 하나님의 마음이다. 
나섬의 사역은 유목적 인간학에 기초한 것이며 그래서 한국교회의 영원한 비주류로서 살아야할 운명이라해도 결코 이 험하고 고달픈 나그네 사역을 포기할 수 없다.
우리는 비주류의 길을 간다.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가야할 길이 이것이라면 우리는 간다. 커피 한잔 머금고 길 떠나는 유목민 바로 그들이 우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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