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와 갈렙 두 정탐꾼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가데스바네아의 정탐꾼의 이야기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떠올리는 이야기다. 모세는 가나안 헤브론 땅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냈고 정탐꾼들이 돌아와 각자가 보고 느낀 바를 보고한다. 군에서는 그것을 정보 보고라 하는데 나는 군에서 연대훈련을 할 때 정보 보고를 하던 당시 연대 정보과장 김대운 장로님을 잊지 못한다.
어쨌든 정보 보고는 매우 중요하다. 지휘관이 정보 보고를 듣고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지휘관은 앞으로 갈 것인지 돌아갈 것인지를 정보 보고를 통해 결정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10명의 정탐꾼은 가나안 땅의 주민들이 강하고 성읍이 견고하다며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능히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긍정적인 보고를 했다. 모세는 백성들을 설득하려 했으나 실패하였고, 결국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가나안 정복을 연기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도록 이끌었다.
왜 똑같은 현실과 사건을 보고서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은 이렇게나 다를까? 컵 안의 물이 반쯤 있으면 그것을 어떤 이는 반이나 남았다 하고 어떤 이는 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을 프레임이라 한다. 프레임에 매몰되면 정상적인 것을 볼 수 없다. 프레임은 우리의 눈을 가리고 생각의 방향을 왜곡시킨다. 상식적인 것을 반대로 이해하고 해석하게 한다. 그래서 세상은 피차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프레임으로 역사가 왜곡되고 세상이 어지럽혀지고 수많은 이들이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이다.
자기 혼자만의 생각으로 끝나고 주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프레임이라면 어떻게 말하든 상관이 없다. 그러나 나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있어 혹 학생들을 가르치고 교회에서도 나름의 위치에 있는 지도자급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그가 말하는 것이 마치 그가 속한 공동체나 교회의 입장이라는 착각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자들이라 하는 이들의 말은 매우 조심스럽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상식적이어야 하고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이들의 논리를 가져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교회 안에서 목회자의 말은 때로 절대적 힘을 갖는다. 그런데 목회자 혹은 교수라는 자들이 자신의 이념을 교인들 혹은 학생들에게 그것이 갖는 무게감에 대하여 얼마나 고민하며 말하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 10명의 정탐꾼이 보고한 그 한마디에 백성들은 40년을 헤매었고 광야에서 죽어갔다.
자칭 영향력 있다는 몇몇 이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는 이들에게 두 정탐꾼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계속 그길로 간다면 결국 광야에서 죽어갔던 이들처럼 당신들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해 주고 싶다. 독일의 히틀러가 가리키는 방향을 아무런 의심 없이 따라갔던 뮬러 목사의 독일기독교회처럼 말이다. 결국 모든 것은 역사가 판단 한다. 그래서 교회 리더들의 선택은 두렵고 때로 그들이 하려는 말 한마디에 세상과 교회가 뒤집힌다. 결국 책임은 그들이 짊어져야 할 몫이다. 하지만 그들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깊은 무지의 구렁텅이로 빠져든 이들은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다시 한나 아렌트와 본훼퍼를 생각한다.
두 정탐꾼의 말을 듣고 조금 힘이 들어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갔다면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가나안에 들어갔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오늘 한국교회에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