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에서 온 사람들과 땅끝 선교
- 외국인근로자는 세계선교의 모판이다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끝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행1:8)
우리 선교회에는 주일이면 몽골, 인도, 필리핀, 아프리카, 그리고 이란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모두 외국인근로자들이다. 나는 벌써 이 사역을 시작한지 14년이 되었다. 구로동에서부터 시작한 외국인근로자 사역을 지금까지 해온 것이다. 사실 외국인근로자 사역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늘 문제투성이로 찾아오는 저들은 사회적으로는 약자로 혹은 나그네로 천덕꾸러기 정도로 취급받으며 살아간다. 내가 처음 만난 외국인근로자들은 단순히 인권과 소외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임금체불과 산재 그리고 인권유린의 사각지대에서 절규하는 저들을 보면서 나도 함께 분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만난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이해였다. 인권과 복지의 관점에서 바라본 외국인근로자들은 참으로 혹독한 나그네 생활을 해야만 했다. 마치 집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에 얹혀살아야 했던 야곱처럼, 아니면 애굽에 팔려간 요셉처럼, 그리고 미디안 광야의 모세처럼 말이다. 그렇게 임금도 못 받고, 때론 오해와 괄시를 받으며 도망자처럼 살아야 했던 성서의 사람들과 똑같은 처지의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이다. 거기까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비슷하게 인식한 외국인근로자들에 대한 이해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너무도 뜻밖의 사람들을 만났다. 네팔, 이란, 인도 그리고 몽골과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과의 너무도 특별한 만남과 고백을 들으면서부터였다. 나는 그들을 통하여 이들이 인권과 복지의 한계를 넘어 세계선교의 모판이라는 사살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이라는 사실도 함께 깨닫게 된 것이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로부터 나는 인권상담과 복지 서비스 제공이라는 일차적 사역의 내용과 더불어 목회와 세계선교라는 틀로 이들을 끌고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그런 결단은 정확했고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었다. 그저 나그네로 살았던 사람들이 순례자로서의 비젼을 갖게 되었고, 그것은 세계선교의 중요한 지렛대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단순히 문제를 가지고 온 사람들이 이제는 더 적극적으로 비젼을 품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믿으며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뜨네기 나그네에서 목적과 비젼이 있는 순례자로 바뀐 것이다.
외국인근로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땅끝까지 선교하라는 긴급한 명령에 대한 표시였던 것이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마지막 분부가 서둘러 땅끝에서 사람들을 보내실 만큼 긴급한 명령으로 바뀐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우리 선교회의 사역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목회와 선교지향적인 내용으로 채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목회와 선교의 대상으로 변화된 외국인 형제자매들은 단순한 나그네로서가 아니라 세계선교의 지렛대와 모판으로서 더 존귀하고 소망이 있는 사람들로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인권과 복지의 대상으로서의 가난하고 소외된 나그네에서 하나님 나라의 씨앗과 웃자란 못자리로 바뀐 사람들은 운명처럼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란에서 온 형제 호잣트는 그런 우리의 고백과 결단으로 얻어진 소중한 열매다. 사실 이란이라면 우리가 이미 30년전에 외국인근로자로 나가서 돈을 벌어오던 나라다. 한때 전 세계를 주름잡던 페르시아가 그 나라다. 우리가 나그네로 살았고, 유대인이 포로로 잡혀가 나그네로 살았던 이란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모슬렘 원리주의를 신봉하는 선교하기에 가장 어렵고 실제적으로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이란에서 말이다.
호잣트 형제는 한국에 외국인근로자로 들어와 인쇄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어느 날 교회에 찾아오게 되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었는지 그는 점점 기독교 신앙에 심취하기 시작하였고, 토요일이면 성경공부로 밤을 새우고, 주일이면 이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하나님은 호잣트 한 사람의 변화를 통하여 수많은 이란인들에게 복음이 증거되게 하셨다. 그를 통하여 많은 이란인들이 우리 교회에 찾아오게 되었고,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일년에 서너명, 어느해에는 십여명이 넘는 이란인들이 세례를 받겠다고 찾아오기도 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이란을 비롯한 모슬렘 선교의 터전을 마련하신 듯하다. 그는 2004년 12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종교난민지위를 얻게 되었고, 현재는 서울장로회신학교에 다니고 있다. 앞으로 호잣트는 이란을 비롯한 터키와 중앙아시아의 모슬렘들을 선교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호잣트와 같은 형제는 또 있다. 인도에서 온 빵가지는 우리 교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형제중 하나다. 그는 인도 북부 펀잡의 수도 찬드갈에서 온 사람으로 원래 힌두교도였다. 인도 북부의 명문가의 아들로서 어려서부터 부족함이 없는 교육과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인생을 돌이켜 한국으로 오게 하셨고 급기야 교회에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신앙을 갖고부터 그의 인생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싸움꾼에서 화해자로, 죄인의 괴수처럼 살았던 사람이 바울처럼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빵가지의 고향은 인도의 성자 썬다씽이 태어나고 사역하던 그 지역이다. 나는 어쩌면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는 썬다씽의 선교열정과 사역이 빵가지를 통하여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그는 그만큼 복음으로 거듭난 사람이 된 것이다. 그는 현재 대학에서 한국어 학당을 다니고 있으며, 내년이면 장로회신학대학에 입학하여 신학공부를 하려고 준비 중이다. 그 외에도 몽골에서 온 츄카와 보르마는 외국인근로자로 시작하여 지금은 장로회신학대학 신대원과 서울장신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몽골인 전도사들이다. 그들은 얼마 후 몽골의 기독교 지도자가 될 것이며, 목회와 선교의 지평을 더 활짝 넓혀나갈 중요한 자원들이 되었다.
이들 모두는 땅끝에서 온 사람들이다. 땅끝까지 가는 선교에서 땅끝에서 온 사람들을 통한 선교로 그 파라다임이 변하고 있다. 그것은 시대적 흐름이며,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이다. 세계화와 정보화의 시대에서 외국인근로자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이 시대 마지막 선교의 기회인 것이다.
아직도 땅끝에서 온 외국인근로자들을 세계선교의 중요한 모판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한국교회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되라는 명령이 땅끝에서 온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꿈을 꾸며 이제 21세기 새로운 선교 파라다임을 인식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