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의 후예들의 코리안 드림 [세계일보 2005-0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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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7-21 13:00 조회5,87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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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의 후예들의 코리안 드림
[세계일보 2005-06-30 21:12]
“칭기즈칸의 대를 이어 몽골제국을 더욱 번성시킨 네 아들은 누구죠?”
지난 24일 낮 12시 서울 광진구 광장동의 재한 몽골학교.
‘털 털 털’ 시원찮은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선풍기 3대로 더위를 간신히 쫓는 4층 교실에선 사회 수업이 한창이다.
담당교사 체랭(43)은 칠판에 세계사와 몽골사를 비교한 연표를 붙인 뒤
13∼14세기 강력했던 몽골제국의 영토를 그린 인쇄물을 나눠 주면서 5학년 학생 11명에게 이처럼 묻는다.
# 학생 45명 지난 3월 정식 인가… 재한 몽골학교
“주치, 차가타이, 오고타이, 툴루이.” 떠듬떠듬 간신히 따라 말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손가락 하나하나 야무지게 꼽아가면서 외워대는 학생도 있다. 역사상 가장 방대했던 제국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망울은 모두 초롱초롱하다.
학생들이 칭기즈칸의 후예로 느끼는 자존심도 대단했다. 4학년 안나르는 “우리 조상이 너무 자랑스럽고, 칭기즈칸을 본받아 똑똑하게 자라겠다”며 “미래의 몽골이 잘살도록 도움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제법 의젓하게 말한다. 800년도 더 된 옛 조상의 웅장한 기상을 이어받은 듯 한낮 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은 수업시간 내내 숙연해진다.
1999년 12월 건물 지하 한쪽에 학생 8명으로 시작한 재한몽골학교는 코리안 드림을 키우는 한국 속의 작은 몽골이다. 지난 3월 1∼8학년(초등·중학교에 해당) 45명을 거느린 정식학교로 인가받았다. 부모가 일터로 나간 뒤 방치되다시피 했던 몽골 어린이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자 맨손으로 시작했던 일이 작은 결실을 맺었다.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서울외국인근로자선교회의 공도 컸지만 유목민족 특유의 뿌리 깊은 가족애도 한몫했다. 가족 단위로 움직이던 유목민의 전통 때문에 지금도 어머니가 먼저 한국에 와 정착한 뒤 남편을 부르고, 다시 아이들을 불러들여 가족이 함께 산다. 우리 나라에 몽골 어린이가 다른 나라 어린이보다 훨씬 많은 것도 이 때문. 몽골학교 이강애 교감은 “칭기즈칸은 심지어 전쟁터에서도 가족과 함께 있었다”며 “가족 구성원 모두가 반드시 모여 살아야 한다는 신념이 투철하다”고 말한다.
강한 가족 결속력은 때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현재 학교에는 불법체류자 단속이 강화된 뒤 부모가 몽골로 추방되면서 국제미아로 전락한 재학생이 3명이나 된다. 친척이나 교사 집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모두 불법으로 입국해서 돌아갈 방법이 막막하다고 한다.
# 간판부터 광고전단지까지 온통 몽골어… 서울 몽골타운
서울 중구 광희동 광희1가 중심부 몽골타운에 가면 한국인이 오히려 이방인이 된다. 지하철 동대문역 12번 출구에서 걸어서 3분 거리 있는 10층짜리 건물 3∼10층 40여 상점 대부분은 몽골인이 세를 내 동포를 상대로 장사하고 있다. 택배점, 여행사, 환전소, 술집, 식당, 잡화점, 의상실, 미용실, 무역상, 사진관 등 10평도 안 되는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곳에서는 정성 들여 마련한 선물이나 소중하게 모아온 돈을 고향으로 부치는 몽골인을 흔히 접할 수 있다. 또 몽골에 남겨둔 그리운 가족을 목소리나마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어 전화카드 판매점 앞에 길게 줄을 서는 모습도 익숙하다.
몽골타운은 1990년대 말 경제위기 때 이곳에 터를 잡았던 러시아 보따리상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형성됐다. 주로 수도권에 흩어져 생활하는 몽골인들이 토·일요일이면 모여 서로 안부를 묻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선남선녀의 데이트도 흔하다. 300∼400명이 함께 북적이는 곳이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건물 3층 알림판을 찾는다. 여기에는 구인과 구직을 알리거나 아무개를 찾는다는 글이 빽빽하다.
이곳은 한국인에게 이색지대다. 간판부터 광고전단지까지 몽골어가 엘리베이터 내부와 복도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보이는 것은 온통 몽골의 공식문자인 러시아어요, 들리는 것은 몽골말이다.
몇 주 지나긴 했지만 고국의 신문과 대중음악을 접할 수 있고, 조국에서 가져온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보는 곳. 독주를 즐긴다는 남자들은 전통 마유주(馬乳酒)나 보드카로 왁자지껄 술판을 벌이며 타국 살이 울분을 삼키고, 멋쟁이 여성들은 머리를 매만지고 옷을 고르면서 한껏 여유를 즐기는 제2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곳의 최고 인기 품목은 한국에서 쉽게 찾을 수 없지만 조국에서는 주식이었던 양고기. 잡화점 냉장고 가득한 양고기를 고르는 손길이 분주하다.
이곳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불법체류자 단속. 그래서 한국인이 나타나면 긴장한다고 한다. 한 몽골 여성은 “한국인이 이곳에 오래 있으면 (몽골인들이)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불법체류 노동자 단속이 한창일 때 이곳에서는 사복경찰에게 잡혀간 몽골인이 꽤 많았다고 한다.
불법체류자 단속과 함께 경기불황은 몽골 노동자를 더욱 궁지로 몰고 있다.
“평일 낮인데도 하는 일 없이 돌아다니는 몽골인을 붙들고 왜 놀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일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날마다 술만 들이켜다 폐인이 된 사람도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거칠기는 하지만 솔직한 친구들인데… 쯧쯧.” 건물 경비원인 김모씨는 이렇게 말하고는 긴 한숨을 쉬었다.
글 황계식 cult, 사진 허정호 기자 hoya@segye.com
[세계일보 2005-06-30 21:12]
“칭기즈칸의 대를 이어 몽골제국을 더욱 번성시킨 네 아들은 누구죠?”
지난 24일 낮 12시 서울 광진구 광장동의 재한 몽골학교.
‘털 털 털’ 시원찮은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선풍기 3대로 더위를 간신히 쫓는 4층 교실에선 사회 수업이 한창이다.
담당교사 체랭(43)은 칠판에 세계사와 몽골사를 비교한 연표를 붙인 뒤
13∼14세기 강력했던 몽골제국의 영토를 그린 인쇄물을 나눠 주면서 5학년 학생 11명에게 이처럼 묻는다.
# 학생 45명 지난 3월 정식 인가… 재한 몽골학교
“주치, 차가타이, 오고타이, 툴루이.” 떠듬떠듬 간신히 따라 말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손가락 하나하나 야무지게 꼽아가면서 외워대는 학생도 있다. 역사상 가장 방대했던 제국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망울은 모두 초롱초롱하다.
학생들이 칭기즈칸의 후예로 느끼는 자존심도 대단했다. 4학년 안나르는 “우리 조상이 너무 자랑스럽고, 칭기즈칸을 본받아 똑똑하게 자라겠다”며 “미래의 몽골이 잘살도록 도움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제법 의젓하게 말한다. 800년도 더 된 옛 조상의 웅장한 기상을 이어받은 듯 한낮 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은 수업시간 내내 숙연해진다.
1999년 12월 건물 지하 한쪽에 학생 8명으로 시작한 재한몽골학교는 코리안 드림을 키우는 한국 속의 작은 몽골이다. 지난 3월 1∼8학년(초등·중학교에 해당) 45명을 거느린 정식학교로 인가받았다. 부모가 일터로 나간 뒤 방치되다시피 했던 몽골 어린이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자 맨손으로 시작했던 일이 작은 결실을 맺었다.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서울외국인근로자선교회의 공도 컸지만 유목민족 특유의 뿌리 깊은 가족애도 한몫했다. 가족 단위로 움직이던 유목민의 전통 때문에 지금도 어머니가 먼저 한국에 와 정착한 뒤 남편을 부르고, 다시 아이들을 불러들여 가족이 함께 산다. 우리 나라에 몽골 어린이가 다른 나라 어린이보다 훨씬 많은 것도 이 때문. 몽골학교 이강애 교감은 “칭기즈칸은 심지어 전쟁터에서도 가족과 함께 있었다”며 “가족 구성원 모두가 반드시 모여 살아야 한다는 신념이 투철하다”고 말한다.
강한 가족 결속력은 때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현재 학교에는 불법체류자 단속이 강화된 뒤 부모가 몽골로 추방되면서 국제미아로 전락한 재학생이 3명이나 된다. 친척이나 교사 집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모두 불법으로 입국해서 돌아갈 방법이 막막하다고 한다.
# 간판부터 광고전단지까지 온통 몽골어… 서울 몽골타운
서울 중구 광희동 광희1가 중심부 몽골타운에 가면 한국인이 오히려 이방인이 된다. 지하철 동대문역 12번 출구에서 걸어서 3분 거리 있는 10층짜리 건물 3∼10층 40여 상점 대부분은 몽골인이 세를 내 동포를 상대로 장사하고 있다. 택배점, 여행사, 환전소, 술집, 식당, 잡화점, 의상실, 미용실, 무역상, 사진관 등 10평도 안 되는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곳에서는 정성 들여 마련한 선물이나 소중하게 모아온 돈을 고향으로 부치는 몽골인을 흔히 접할 수 있다. 또 몽골에 남겨둔 그리운 가족을 목소리나마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어 전화카드 판매점 앞에 길게 줄을 서는 모습도 익숙하다.
몽골타운은 1990년대 말 경제위기 때 이곳에 터를 잡았던 러시아 보따리상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형성됐다. 주로 수도권에 흩어져 생활하는 몽골인들이 토·일요일이면 모여 서로 안부를 묻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선남선녀의 데이트도 흔하다. 300∼400명이 함께 북적이는 곳이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건물 3층 알림판을 찾는다. 여기에는 구인과 구직을 알리거나 아무개를 찾는다는 글이 빽빽하다.
이곳은 한국인에게 이색지대다. 간판부터 광고전단지까지 몽골어가 엘리베이터 내부와 복도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보이는 것은 온통 몽골의 공식문자인 러시아어요, 들리는 것은 몽골말이다.
몇 주 지나긴 했지만 고국의 신문과 대중음악을 접할 수 있고, 조국에서 가져온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보는 곳. 독주를 즐긴다는 남자들은 전통 마유주(馬乳酒)나 보드카로 왁자지껄 술판을 벌이며 타국 살이 울분을 삼키고, 멋쟁이 여성들은 머리를 매만지고 옷을 고르면서 한껏 여유를 즐기는 제2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곳의 최고 인기 품목은 한국에서 쉽게 찾을 수 없지만 조국에서는 주식이었던 양고기. 잡화점 냉장고 가득한 양고기를 고르는 손길이 분주하다.
이곳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불법체류자 단속. 그래서 한국인이 나타나면 긴장한다고 한다. 한 몽골 여성은 “한국인이 이곳에 오래 있으면 (몽골인들이)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불법체류 노동자 단속이 한창일 때 이곳에서는 사복경찰에게 잡혀간 몽골인이 꽤 많았다고 한다.
불법체류자 단속과 함께 경기불황은 몽골 노동자를 더욱 궁지로 몰고 있다.
“평일 낮인데도 하는 일 없이 돌아다니는 몽골인을 붙들고 왜 놀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일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날마다 술만 들이켜다 폐인이 된 사람도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거칠기는 하지만 솔직한 친구들인데… 쯧쯧.” 건물 경비원인 김모씨는 이렇게 말하고는 긴 한숨을 쉬었다.
글 황계식 cult, 사진 허정호 기자 h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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