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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톡396 안질 걸린 바울과 시력 잃은 목사

   바울에게서 나와 비슷한 동질감을 찾는다면 그의 몸을 괴롭히던 '육체의 가시'. 그는 나처럼 안질로 시력이 급속하게 떨어진 삶을 살았을 것이다. 어떤 이는 바울의 육체의 가시가 간질이라고 하지만 나는 안질이라 말하고 싶다. 그래야 바울에게서 위로를 얻고 그에게서 내가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더 친근하게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안질이든 간질이든 그것이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바울의 가시는 안질이었을 것이다. 다메섹에서 사울의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는 사건으로부터, 두 번째 선교여행에서 의사 누가가 합류하였고, 디모데와 실라 같은 바울의 동역자들이 언제나 바울을 떠나지 않고 동행하였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에 그렇다. 뿐만 아니라 바울의 모든 편지 글은 바울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을 빌려 썼다는 사실에서도 안질설()은 설득력이 있다. 어쨌든 바울을 괴롭히던 가시가 안질이거나 아니거나 둘 중의 하나지만 그럼에도 그는 죽는 날까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순례와 선교의 삶에 헌신하였다는 것이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죽는 날까지 그는 멈추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었다. 마지막에 예루살렘과 로마로 가기까지 말이다. 그것은 죽음의 길이었다. 그러나 그는 죽음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받아들였다. 그것이 그의 신학이며 삶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아 누군가의 동행 없이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바울을 생각하며 나 자신을 생각한다.

요즘 나는 나의 남은 삶에 대하여 깊은 묵상과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보이지 않는다는 현실 앞에 나는 한없이 무기력해지고 절망한다. 고통스럽다는 말을 넘어 이제는 이 어둠의 깊은 수렁에서 너무 외롭고 두렵다. 죽는 날까지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만큼의 시간이 흘렀건만 나는 작은 문제에도 시각장애를 탓하거나 그것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

그런 날이면 언제나 바울을 생각하며 위로와 희망을 찾는다. 그에게서 나는 내 남은 삶의 길을 배워야 한다. 바울처럼 살아가야 내 장애의 한계를 넘어 의미있게 잘 살다가 떠나는 은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한 번도 한곳에서 안주하거나 영원히 머물러 있지 않았다. 안디옥은 바울의 근거지였음에도 그는 안디옥을 베이스 캠프로 여겼을 뿐 그곳을 자신의 마지막 거처로 여기지 않았다. 하물며 마지막으로 여겨지던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상황에서도 그는 안디옥이 아닌 예루살렘을 선택했다. 고린도와 에베소는 바울의 사역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곳이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도 길어야 3년을 머물렀을 정도로 영원한 유목민으로 살아가려 했다.

안질로 고생하며 보이지 않는 눈을 대신해 누군가와의 동행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을 바울은 그런 한계와 장애도 아랑곳 하지 않고 떠나고 또 떠나는 삶으로 자신의 삶을 규정했다. 그는 떠남의 영성을 보여주었다. 떠날 줄 아는 자만이 자유롭다. 마치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말이다. 이처럼 인간은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 그런 자만이 성공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바울은 죽는 날까지 사역자로 남았다. 은퇴하고 집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나아가 로마에까지 스스로 찾아가 순교의 자리에 섰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서머나 교회에 남긴 사도요한의 권고에 그대로 순종한 것이다. 은퇴의 시간 앞에서 나는 어떤 결단을 하여야 하는가?

죽는 날까지 선교적 삶을 살았던 바울에게서 나는 장애와 관계없이 살았던 한 인간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그는 안질이라는 고통 앞에서 절망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선교하려는 의존적 삶을 살지도 않았다. 스스로 텐트를 만들며 선교했다. 바울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나는 다시 나섬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한다. 그는 자유인이었다. 예수처럼 그는 자유인으로 살아가겠다는 철학과 꿈을 이룬 사람이다. 조금도 구질구질하지 않았던 바울이다. 어느 누구 앞에서도 당당했으며 하물며 로마황제에게 자신을 데려다 달라는 황당한 주장도 서슴지 않았던 사람이다. 끝까지 간다는 의지는 말로만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처럼 십자가 꼭대기까지이며 바울처럼 로마에서 죽는 날까지다.

 

어젯밤에는 밤새 비가 내렸다.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거리는 밤이었다. 수면제를 먹어도 잠은 오지 않았고 나는 현실과 미래를 오가며 수많은 생각을 했다. 자유를 선택했다면 외로움과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구질구질하지 않은 삶을 원한다면 고통을 친구로 여겨야 한다. 그리고 눈이 안 보이는 것이 특별한 은총임을 알아야 한다. 밤새 그런 생각을 했지만 아침이 되니 다시 화가 난다. 또 하루의 고통이다. 나는 바울처럼 살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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