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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톡277 세계사의 흐름과 나섬 선교

   미국과 이란의 갈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1979년 이란에서의 이슬람 혁명을 시작으로 미국과 이란은 적대국이 되었다. 물론 그 이전부터 두 나라의 갈등은 잠재되어 있었다. 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이란은 영국의 영향력 속에서 갈등의 불씨를 갖고 있었다. 19세기 이란은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있다가 마침 영국이 러시아의 이란 지배를 저지하려 이란에 진출하게 되었고 그 이후 이란은 영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착취와 억압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이란 민족주의가 서서히 성장하게 됨은 당연한 것이다. 영국은 1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이란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이란 원유에 대한 영국의 독점이 시작되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미국이 세계의 경찰로 등장하면서 미국은 영국이 갖고 있던 이란에 대한 지배력을 대체하게 되었다. 당시 이란은 새로운 왕정이 시작되었는데 그 왕조가 팔레비 왕조다. 1960년대 팔레비 왕조의 독재에 대하여 이란에서는 새로운 시민혁명이 일어나지만 결국 미국에 의하여 권력은 팔레비 왕조의 시대로 돌아가게 된다. 그때부터 이란의 이슬람 민족주의는 미국에 대하여 적대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 미국에 대한 반미 정서는 1979년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 민족주의를 탄생하게 한다.

그 이후 지금까지 미국과 이란은 4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갈등과 충돌을 이어왔다. 때로 미국은 이란을 세계의 악의 축 가운데 하나로 규정하고 그들을 세계지도에서 지워버릴 것 같은 기세로 경제 봉쇄를 가하여 왔다.

이란은 역사 속에서 가장 오래된 제국 중 하나다. 20세기 이전에는 이란을 페르시아라고 불렀는데 그 페르시아는 성서의 메대와 바사이기도 하다. 성서의 다니엘서와 에스더서는 페르시아 제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예루살렘 귀환을 결정하고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준 고레스는 페르시아의 왕이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찾아온 동방박사가 페르시아에서 온 점성술의 박사들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도 이란에는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 중 일부는 기독교인으로서 소수이긴 하지만 이란에서 살고 있다.

그러다 최근 미국은 이란의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을 이라크에서 살해했고 그러한 미국의 일방적 태도는 이란에서의 반미주의를 더욱 부채질 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이란이 지배하는 호르무즈 해협에 우리 군을 파병하는 문제로 미국의 압력을 받고 고민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얼마나 곤혹스러운 상황인가? 우리가 원하지 않는 파병을 미국의 압력으로 어쩔 수 없이 결정해야 한다면 우리는 이란과 또 어떤 관계를 갖게 될 것인가?

우리가 터키로 역파송한 호잣트와 나섬 페르시안교회가 걱정되는 것은 나의 기우일까? 100여명이 넘는 이란 난민들이 터키에서 신앙생활을 한다. 호잣트가 그들을 돌보며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의 비전은 이란이 더욱 아름답고 행복한 하나님 나라로 변해가는 꿈이다. 하나님 나라는 전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미국이라는 막무가내식의 경찰국가로 대표되는 그런 기독교 국가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하나님 나라는 성서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호잣트를 역파송했으며 지금까지 엄청난 선교적 열매를 거두고 있다. 지금 그곳에서 이슬람권의 선교사역은 한층 고무되어 있다. 그런데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한국의 파병으로 이어지고 있고 우리는 원치 않는 갈등의 역사 속에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얼마나 안타깝고 위험한 현실인가? 이 불안함이 터키의 하나님 나라 사역에도 큰 위기를 초래한다면 누가 하나님 나라의 악인가?

우리는 다시 지혜를 모으고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이라도 찾아야 하는 기로에 서있다. 우리 민족과 역사의 운명이 미국이라는 한 나라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누가 그들에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역사의 주권까지 내어 주었단 말인가? 미국이 모든 결정권을 갖는 세상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역사를 거부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우리가 미국이라는 나라에 의하여 우리 민족의 운명마저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지경이라면 정말 슬픈 일이다. 다시 한 번 한국교회의 맹목적 친미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오늘 터키에서 편지가 왔다. 이란인들이 참여하는 페르시안 교회의 안전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는 간절한 요청이다. 정말 기도가 필요하다. 이란의 이슬람 민족주의자들에 의하여 하나님 나라 사역에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나만의 걱정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선교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나비 한 마리의 날개 짓이 역사를 바꾸듯 우리도 모르고 살아가는 세계에서 우리는 때로 당사자가 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원치 않는 현실이 우리의 운명과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단호히 나는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한 주체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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