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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통 총량의 법칙을 믿는다8


나는 지금 무척 아프다. 몸과 마음 모두가 힘들고 고달파 아픈 것이다. 하긴 외국인 노동자를 비롯한 유목민 목회를 하면서 단 한시도 고단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으니 내게 고통은 일상이 되었다. 고난의 일상은 웬만하면 면역이 되었을 법도한데 여전히 아픈 것은 덜하지 않다. 작은아이 영길이가 장애아로 태어난 후 지금까지 아내와 나는 작은아이의 미래와 남은 삶에 대하여 걱정과 근심을 놓지 못하고 있다. 장애아이를 둔 부모들은 너나할 것 없이 내 아이보다 단 하루만 더 살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한다. 그것은 장애아이를 둔 부모가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없는 처절한 고통이다. 나와 아내가 죽은 후에 우리 아이는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까에 대한 두려움과 근심 때문이다. 영길이는 아직도 유치원 아이 수준의 지적 능력밖에는 없다. 집에서도 영길이는 어린 아이들이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는 어른 아이다. 새해가 되니 제 나이가 몇 살이 되었는지도 잘 몰라 제 엄마에게 자기가 몇 살이냐고 묻는다. 아직도 점심과 저녁을 헷갈려한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시력을 상실한 채 세상을 살아야 한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답답함이 몰려오면 이를 악물고,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싶은 억누를 수없는 고통에 절망하기도 한다. 주어진 일에만 전념해도 정신이 없건만 때로는 예상치 못한 일로 큰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작년 8월부터 시작된 어떤 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스러움은 정말이지 폭발일보 직전의 핵을 끌어안고 사는 느낌이다. 지난 1월 필리핀에 가서는 치통을 앓고 일정보다 앞당겨 돌아와야 했다. 돌아온 직후 치과병원에 들르니 의사는 내 치통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 것인지를 그 치통의 원인과 함께 아내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렇다면 아내는 내 고통의 크기를 알까?

전에는 아프고 힘들면 눈물이라도 나더니 올해 들어서는 눈물도 마른 것인지 눈물도 나오지 않고 머리만 안개 속에 갇힌 것처럼 뿌옇게 흐려온다. 가슴이 답답해지면 어느새 온 몸이 저려 손끝이 찌릿하다. 숨도 쉴 수 없을 것 같은,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같은 것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일어나기도 한다. 차라리 이렇게 죽는다면... 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 죽음도 내 삶을 편안하게 만들 것 같지가 않다. 내가 죽어도 영길이 문제가 풀어지고 내가 죽어서 나섬의 사역이 온전히 이루어진다면 몰라도 내 죽음은 아무런 문제해결의 도움이 되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섬의 사역은 점점 늘어나고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걱정과 충고의 말을 한마디씩 내게 던진다. 그러다 쓰러지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그러니 천천히 쉬면서 하라고 한다. 나또한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하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자전거를 탄 느낌으로 또 하루를 산다.
반복되는 고단함은 축적되고 그래서 오늘은 정말이지 어딘가로 숨고 싶은 날이다. 내 친구  김목사와 단 하루만이라도 도망가고 싶은 날이다. 내 친구 목사에게 전화를 해서 나 좀 데리고 어디좀 같이 가자고 했더니 바쁜 일이 있는지 오늘은 안 될 것 같다는 답변이다. 또 아프다. 혼자서도 어디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 더 아프다.  
정말이지 아픔을 이렇게 일상처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지 이것이 인생인지 다른 이들에게 묻고 싶다. 내 몸의 장애와 아들놈의 장애는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하다. 죽는 날까지 내 삶의 동행자가 된 장애라는 멍에, 그리고 그 근심은 어느새 나의 친구가 되었다. 다른 이들도 나 같은 친구, 멍에의 친구가 있는 지 묻고 싶다.

베트남 투하 자매가 서울장신대 신대원에 합격을 하여 오백만원이 넘는 등록금과 기숙사 비용을 마련해야 하는데 믿고 있던 교회에서는 절반이 안되는 정도밖에는 도울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 나머지는 또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머리가 아파온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니 행복하게 일한다고 말하면서도 주어지는 문제는 종종 내게 부담을 준다. 어떻게든 투하 자매가 신학공부를 하게 되겠지만 당장은 내게 주어진 짐인 것은 분명하다. 그 문제도 풀어야할 숙제다. 

오후에라도 어딘가 바람 따라 가고 싶지만 아내는 나보다 더 바쁘고, 누구에게든 전화를 해서 나 좀 데리고 밖으로 나가달라고 부를 사람이 없다. 고독하다. 이렇게 섬 안에 갇힌 아니 감옥에 갇힌 죄인처럼 자유를 포기한 인생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미칠 것 같아 속이 저려온다.

외국인근로자선교회와 외국인 신학생 공부 문제, 몽골학교 건축과 학교 운영문제, 어린이 집 운영문제, 나섬교회 목회에 대한 일, 새롭게 시작한 동대문 선교회, 한국 다문화 사역 연구소, 나섬아시아 다문화 학교 등등 이제는 내 머리로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커져버린 이 구석진 공동체의 일은 내게 무엇일까? 정말 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하여 어떤 의미를 갖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쉬고 싶다. 도망가고 싶다. 그러나 갈 곳이 없다. 도망가고 싶어도 나는 혼자서는 다니지도 못하는 시각 장애인이 되었으니 혼자서 살아가지도 못하는 이 몸둥아리는 왜 끌고 다녀야 하는지 속에서부터 터지는 뜨거운 무엇이 올라와 아프다. 아픈 것을 설명하려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나는 누구인가 묻는다. 나는 왜 살아야 하는지 묻는다. 누구 거기 친구하나 없소?

오늘은 하늘대신 땅을 보고 싶다. 그냥 하늘의 섭리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 나는 그런 일탈을 종종 살아왔다. 고통에도 뜻이 있다는 따위의 말에 펑펑 울며 따지고도 싶다. 왜 나에게는 고통 총량의 법칙이 여전히 끝이 없는가! 라고. 

그런데 나는 행복하다고 고백한다. 지랄 같은 행복이다. 또 태어나도 나섬의 목회를 할 것이라고 장담하며, 또 가족을 이루어야 한다면 우리 영길이를 비롯한 내 가족을 선택할 것이라고, 그리고 이 저주스러운 내 몸둥아리의 장애마저도 주신다면 받아들일 것이라고 고백한다. 

인생에 지랄 총량의 법칙이 존재한다면 고통 총량의 법칙도 있다. 사실 이런 법칙이 있는지
는 몰라도 나는 적어도 고통은 그 반대의 은총과 이어져있다는 것만큼은 믿고 산다. 그러니까 고통의 반대편에는 그만큼의 비율로 은총이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내 경험적 차원에서 하는 고백이다. 뿐만 아니라 하늘은 언제나 공평하다고 믿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지금의 이 고난도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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