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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태어나도


나는  다시  태어나도  나섬의 목사

                                               나섬공동체 대표 유해근목사

나섬은 밑바닥 공동체다. 바닥목회지인 것이다.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가장 낮은 곳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꼴찌 목사다. 어지간한 목회자라면 노회장은 못해도 동네 시찰장은 하는 것이 상례인데 나는 그런 벼슬(?) 한번 못해보고 목회를 한다. 하긴 밑바닥 교회에 눈먼 목사라는 두 가지 핸디캡이 있으니 누가 나 같은 사람에게 그런 제안 한번 해볼 생각이나 하겠는가? 너무도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이겠기에 나는 처음부터 모든 영역에서 예외다. 절대 예외라는 말이 나 같은 사람에게 꼭 맞는 말일게다. 그러니 나는 등수에도 들지 못하는 지진아 목사인 셈이다. 아예 등수에 속할 어떤 조건도 갖지 못한 가장 불쌍한 존재다. 꼴찌를 넘어 처음부터 등수와는 별개의 어떤 예외적 존재다. 바닥에서도 더 낮은 바닥이다. 나그네 목회자요 장애를 가진 목사이니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불행한 사람으로 볼까. 거기에 아들 하나도 장애라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나는 언제나 열등감에 빠져 살아간다. 이미 자존감은 사라지고 열등감이 넘쳐 내 가슴은 뜨거운 물에 덴 것처럼 쪼그라들어있다.    

몇 년 전에 우리 공동체에서 함께 동역할 목회자를 구하는 광고를 내었더니 기막히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력서가 단 한 장도 오지 않은 것이다. 어느 누구도 우리 공동체에서  사역하겠다고 신청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만큼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목회지라고 소문이 난 것이다. 그럴 즈음 동기 목사님 한분과 대화를 하던 가운데 얼마나 기분 상하는 이야기를 들었던지...

"우리 교회에서 부목사 한 사람을 뽑는데, 글쎄, 이력서가 50장이나 왔어"
"우리는 한 장도 없던데?"
"누가 당신네 교회 같은 곳에 가나?" 

그는 꽤나 성공한 동기목사다. 이제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이력서가 몇 장이나 들어왔는지를 살펴보면 알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실패하고 말았다. 이력서 한 장 보내오지 않는 목회를 한다는 것이 이렇게 나를 실패한 목회자로 전락시켰다. 나는 분명히 실패한 목사요 꼴찌이며 불쌍한 목사다. 나섬은 그런 곳이다.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곳이며, 오고 싶지 않은 곳이다. 단 한 장의 이력서도 받을 수없는 나섬지기다. 오십 장의 이력서가 밀려왔다고 자랑하는 동기 앞에서 나는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말이 씁쓸한 웃음이지 사실은 가슴이 아파서 얼마나 혼이 났는지 모른다. 가슴이 아프다 못해 속에서 무언가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 몰려와 그 자리를 도망치듯 나오고 말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왜 이 자리를 그렇게도 힘들다며 남몰래 눈물 흘리고, 떠나야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으면서도 여기에 남아 있는가? 속에서 너무도 아파 이젠 그만 하겠노라고 절규도 했건만 나는 왜 이곳에서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겉은 떠난다고 허풍을 치고는 속으로는 다시 내일을 생각하며 찾아오는 나그네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 눈을 질끈 감고는 겉 허풍은 잊어버린다. 그만 둘 때는 두더라도 당장 찾아오는 사람과 문제 앞에서 나는 이미 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만두긴 어떻게 그만두나? 매일같이 전쟁하듯 살아가는 이 난리판에서 그만둘 여유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나를 향해 한 마음 먹어본다. 이중적인 내속에 대하여 나도 모르겠다. 그만 두지도 못하면서 나는 매일같이 그만두는 꿈을 꾼다.  

내안의 열등감만 없었으면 좋으련만 세월이 갈수록 점점 그 강도 깊어지는 것 같아 무척 힘이 든다. 바닥에서 꼴찌로 그리고 지진아요 눈먼 목사로 살아가는 내 안의 이 초라한 열등감 때문에 정말 못살겠다. 너무도 마음이 아파 그 열등감 때문에 눈물이 난다. 이미 버릴 것은 거의 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직도 남은 내 안의 자아가 나를 미치도록 아프게 한다. 그 형편없는 자아까지도 나를 못살게 구는 것이 정말 힘이 들어 못살겠다. 누가 내안의 그 다 걸레처럼 찢겨진 마지막 남은 자존감만이라도 가져갔으면 좋겠다.
이제 다른 사람과 비교받을 일은 없겠기에 조금은 자유롭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여전히 타인을 의식하고 그 열등감에 조금도 상처받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더 이상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예외라는 사실이 더욱 나를 견딜 수 없게 한다. 이제 나는 비주류가 아니라 예외다. 저 독도보다 더 외로운 예외의 존재다. 고독한 등대가 아니라 아예 잊혀져도 아무 상관이 없는 이미 버려진 존재다.  

이력서가 한 장만이라도 도착했더라면 또 달라졌을까? 웃긴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하여 허탈하고 허무하여 웃는다. 이게 뭔가? 냄새나는 똥 걸레 같다. 걸레로도 쓸 수 없는 가장 밑바닥의 쓰레기 같다. 내가 불쌍해서 돌아보는 몇몇 사랑하는 분들이 있지만 그분들 떠나면 이제 정말 버려진 쓰레기가 될 것이다. 아무런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는 눈멀고 버려진 쓰레기다.

그러다 다시 잠을 자고는 꿈을 꾼다. 꿈을 꾸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 눈을 감는다. 왜 그런 꿈일까? 다시 태어나서도 여전히 나섬에 있는 꿈이다. 제기랄 그렇게도 저주스러운 자리이건만 꿈속에서도 나는 또 여기에 버려진다. 나섬이다. 또 버려져도 나섬이다. 태어나도 나섬이다. 도망할 수 없다는 말일까? 떠날 수 없다는 말일까? 아니 떠나지 말라는 윗 분의 주문일까?

내 열등감은 그래도 좋다. 아내에게 미안하고 미안해서 미치겠다. 그 많은 사람들 중 하필 나 같은 놈에게 와서, 그 많은 목사들 중 하필 나 같은 목사에게 시집와서, 이런 자존심 상하는 수없이 많은 일들을 마주해야 하는 아내가 나를 더 힘들게 한다. 그래서 아내를 생각하면 더 아프다. 
거지에게 동냥 던져주듯이 내 앞에 돈 몇 푼 던져주던 동기 목사, 그래도 좋다. 그러나 그 자리에 아내만 없었으면 나 혼자 그런 무너지는 자존감의 고통도 이길 수 있었으련만 아내는 그 앞에서 모든 것을 보았다. 그날 밤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다 썩어빠진 내 차안의 창문에 비친 내 눈물 보았을 아내 때문에 나는 정말 미치도록 가슴이 아팠다.
나 혼자 당하는 서러움이라면 이겨가겠는데 말없이 그 수모 당하는 나를 아프게 바라보아야 하는 아내 때문에 정말 가슴이 아파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라도 나는 이제 나섬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만 나섬을 떠나자고 몇 번이나 그렇게 결정했다.

그러다 또 꿈을 꾸었다. 다시 태어나서 살아가는 곳이 보였다. 어디서 많이 본 자리다. 나섬이다. 아프다고 소리치고 미치겠다고 절규하며 이제는 그만 살려달라고 기도하였건만 내 삶은 여전히 여기 나섬이다. 나그네를 섬기는 나섬이다. 

나섬의 자리는 고난의 자리다. 그러나 그 고난이 힘든 것만은 아니다. 견딜만한 아픔이다. 일 때문에 아픈 것이 아니라 나 자신 때문에 아프다. 내 안의 세상에 대한 연민 때문에 힘이 드는 것이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나그네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만나는 바로 나 자신 때문에 고통스럽다. 찌꺼기 같은 자존심 때문에 아픈 것이다. 똥 같은 열등감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일이 아픈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버리지 못한 욕망 때문에 아픈 것이다. 십자가가 고난이 아니라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겠다는 내가 나를 힘들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십자가지고 싶지 않다고 버티는 내가 나를 못살게 군다. 내가 짊어질 짐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 나를 누르는 내 마음이 더 무겁다. 

내겐 눈먼 꼴찌 목사의 열등감이 있다. 그래서 예외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내 초라함이 나와 우리 나섬을 먹여 살리는 은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불쌍해서 던져주는 그 동냥 같은 느낌이 들 때면 동냥 바가지 집어 던지고 싶은 마음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 날이면 또 꿈을 꾼다. 다시 태어나서 살아가는 내 모습에 대한 꿈이다. 이번에도 또 나섬이다. 도망하고 싶은 내 지금의 자리이다. 도망해도 소용이 없는 모양이다. 운명같은 자리인가보다.

이제 나는 다시 태어나도 나섬에 머물 것이다. 이곳이 가장 나하고 맞는 곳인가 보다. 수없이 부정해도 여전히 하늘은 내게 가장 좋은 곳이라 한다. 내게 가장 의미있는 곳이 나섬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땅이며 자리라는 것이다. 나도 성공의 자리에 이력서 많이 받는 자리에, 내 아내에게 자랑스러운 남편모습만 보여주는 떳떳한 자리에 앉고 싶건만 거기는 아니란다. 나섬이란다. 내가 살아야 할 가장 소중한 자리가 여기란다. 

예수가 그렇게 힘들어 했었을 십자가 고난의 자리를 생각해 본다. 이 작은 아픔에도 매일같이 눈물 흘리는 내 모습 보니 예수가 흘렸을 눈물바다를 절실히 느껴본다. 그래도 그 자리 지킨 그분처럼 살아야 한다. 이런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었다. 나는 지금 이 정도로는 결코 죽지 않는다. 죽지 않으면 가장 재미있는 것이 전쟁이라는데... 여긴 영적 전쟁터다. 결코 죽지 않는 영적 전쟁터이니 얼마나 행복한 꼴찌 목사인가?
나는 다시 태어나도 나섬에 살 것이다. 나섬을 섬기고 그렇게 목회하는 목사가 될 것이다. 이제는 체념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결단하는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예수가 다시 오실 곳이 분명히 나섬일 가능성이 많아 이젠 결코 이 자리 떠날 수 없다. 지난 세월이 억울해서도 나는 여기에 남아야겠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열등감과 상처 입은 자존감으로 떨고 있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불투명한 내 삶의 미래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기에 살아야 한다. 매일 꿈을 꾸니 주께서 남아 있으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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