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한 시쯤 잠이 깨면 더 이상 잠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책을 읽는다. 그렇게 책을 읽기 시작하면 때로 꼬박 새벽까지 책을 읽는데 그렇게 책을 읽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며칠 전 한 권의 책을 잡아 처음부터 끝까지 단번에 다 읽어버렸는데 박완서 작가의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책이다. 오 남매를 둔 작가는 외아들이 26살이던 1988년 아들을 잃었다. 그 아들은 준수하고 아름다웠으며 착하고 존귀한 아들이었다. 그 아들은 공부도 잘해 의대에 다닐 정도로 자랑스럽고 그녀에게는 큰 위로와 기둥 같은 아들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그 아들이 세상을 떠난다. 그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으며 환장할 정도로 아니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하늘을 원망하며 박 작가는 절망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의 날들을 보내야 했다. 누군가 아무리 위로를 해도 그녀의 절망을 바꿀 수는 없었다. 차라리 아들을 따라 죽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했을 것이다. 아들을 먼저 보낸 어미의 심정을 이토록 절절하게 표현한 일기는 오랜만이다. 그리 길지 않은 책을 넘기며 나도 따라 울었다. 그냥 울고 싶었고 그녀의 불행한 현실이 내 불행인 듯 공감되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내 불행의 순간을 이길 수 없어 죽음을 생각했고 실제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
어디선가 매우 혁신적인 안과 수술이 성공했다며 보도된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 주는 이들도 있고 분명 몇 년 안에 반드시 볼 수 있을 거라며 위로를 해주는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그 어떤 위로도 내 고통을 해결하지 못한다.
내 작은 아이가 장애아로 태어난 것도, 내가 장애인이 된 것도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억울하고 이해할 수 없어 지금도 때로 분노가 치밀고 화가 난다. 하늘에 대고 원망의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괴로운 날이 수없이 반복된다. 박 작가는 2011년 세상을 떠났는데 죽는 날까지 아들을 잃은 슬픔을 해결하지 못했다 한다. 죽는 날까지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야 했던 사실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했다 한다. 결국 그 고통과 절망을 해결 받지 못한 채 작가는 눈을 감았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이었을까?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아픔이 있다. 그 아픔의 무게가 조금씩 다를 뿐 모두가 아프다. 모두가 불행하다. 누가 자신 있게 행복하다 말할 수 있으랴! 하긴 가끔 행복해 보이는 이들도 있기는 하지만 인생은 본질적으로 불행이 행복한 시간보다 더 많다.
박 작가는 하나님께 왜 그러셔야 했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왜 그 불행의 당사자가 자신이어야 했는지 그것도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을 데리고 가셔야 했느냐고 묻고 싶었다. 왜 하필 그 고난이 자신이어야 하며 그 대상이 왜 그렇게 잘생기고 미래가 창창한 자랑스러운 그 아들이어야 했느냐고 울고 부르짖는다. 왜 그 고통이 하필 자신이어야 했냐고 말이다. 살아계신 것이 맞는다면 정말 대답해 달라고, 한마디만 해달라고 울며 절규한다. 그래야 미칠 것 같은 이 고통이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지 않겠느냐고 작가는 울며 말했다. 나도 그랬다. 살아계시면 내가 왜 하필 시력을 잃어야 하는지 내 아들이 왜 장애아로 태어나야 했는지 한마디만 해달라고 하늘에 대고 소리를 지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분은 말이 없으셨다. 내가 소리를 지르며 악다구니를 쓰고 하늘에 대고 울부짖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울다가 지쳐 떨어져 여기까지 살아왔다. 아직도 나는 왜 내게 이 고통이 주어져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도 죽는 날까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나도 박 작가처럼 불행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한 채 죽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내 삶을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오늘도 살아 있으매 산다.
산다는 것은 그런 거라며 말하는 이들에게 나는 아직 삶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불행에도 뜻이 있을 거라며 함부로 말하는 이들에게는 나는 욥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욥이 아니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