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팔레스타인에서는 인격이 되고 그리스에서는 철학이 되고 로마에서는 제도가 되고 유럽에서는 문화가 되고 미국에서는 기업이 되었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 와서는 무엇이 되었을까? 나는 기독교가 한국에 와서는 시장이 되었다고 말하련다.
이승훈이 중국 베이징에서 영세를 받고 한반도에 들어온 것이 1784년이니 카톨릭을 포함하면 241년이지만, 개신교는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한반도에 들어온 1885년부터를 말하므로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는 140년이 되었다. 그날은 4월 5일 부활절 아침이었다.
처음 기독교가 한반도에 들어왔을 때 선교사들은 어떤 교회를 기대했을까?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바라던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초기 기독교는 한반도에 학교와 병원을 세웠다. 그래서 가난한 민중들과 여성들이 학교에 갈 수 있었고 병든 자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양반과 상민이 함께 예배드리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지언정 교회는 그래도 열린 공간이었다.
1907년에는 회개 운동이 일어나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는 대부흥 운동이 시작되었으며 급기야 1919년 3.1운동을 통하여 교회는 고통받는 민족과 함께하는 교회로 역사에 거대한 흔적을 남겼다. 물론 그 후로도 농촌과 가난한 서민을 위하여 곳곳에서 계몽운동에 앞장섰으며 일부는 만주 벌판을 떠돌며 독립운동에 헌신하기도 했다. 그런 헌신과 수고가 거대한 일제의 힘 앞에서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신앙의 힘으로 출애굽의 역사를 믿고 죽음으로 저항했다. 신사참배의 폭력 앞에서도 일부 목회자와 교인들은 무릎을 꿇지 않았으며 그것이 교회의 힘이라고 가르쳐 왔으므로 우리는 오늘 여기 존재한다.
그런 교회가 오늘날 어떻게 변했는가? 진정 우리는 초기 기독교가 가르치고 바라던 교회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우리는 다시 미래를 만들어 갈 시대의 전환점 위에 서 있다.
나는 교회를 사랑하며 교회가 희망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것이 내가 오늘 목회자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 자리에 있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물음에 대하여 나는 긍정적으로 답할 용기가 없다. 교회가 시장이 되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무한경쟁의 시장주의가 교회를 지배하고 있다. 교회가 자본과 힘의 논리에 매몰되었다. 힘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양극화와 갈등, 일방적인 지배와 힘의 논리에 포로 되었다. 한국교회 전체가 몇몇 포식자들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다. 이것은 시장이다. 매우 위험하고 폭력적인 지배자들이 존재하는 시장이다. 부와 권력이 자본주의 시장을 이끄는 이데올로기라면 교회는 그 이념에 종속되었다.
나는 지금 이 엄중한 시장 논리와 경제 논리 앞에 무기력하게 멈추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이 나를 한없이 고통스럽게 한다. 우리 공동체는 어떻게 이 위기의 시대를 이겨나갈 수 있을까? 아무런 도움 없이 우리는 다시 광야를 걸어야 할 것 같다. 애굽이 시장이었다면 광야는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공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광야로 간다. 순수와 감동을 만드는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하여 광야로 들어간다. 고통스러웠던 광야의 기억이 부담과 불편과 고단함의 기억으로 떠오르지만 그래도 시장의 논리 앞에 무릎 꿇지 않기 위하여 광야로 간다. 결코 교회는 시장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기를 위하여 의지적으로 광야를 선택한다.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그분이 주시는 은혜를 구하기 위하여 광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