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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와 다문화 이주민 선교

코로나가 가져다준 변화와 단절

 

코로나의 확산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사회적 경제적 변화는 물론이고 오늘 우리 교회와 선교 현장을 거의 혁명적인 상황으로까지 몰아가고 있다. 먼저는 교회의 예배가 현장예배가 아닌 온라인 예배를 통하여 드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코로나 상황이 종료 되더라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사람들은 온라인 예배와 온라인 교회에 대하여 익숙해져 가고 있는 듯하다.

두 번째는 거의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혹 현지에 남아있을 지라도 더 이상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부분 선교지의 코로나 상황은 우리나라의 경우보다 훨씬 심각하여 이미 모든 것이 단절되고 폐쇄되었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과거처럼 선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한국교회의 목회와 선교 현실이 이렇게 단절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큰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선교와 미래 교회의 대안적 선교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인구절벽과 우리의 미래

 

이런 코로나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커다란 숙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인구절벽의 문제다. 이미 우리사회는 저출산 초고령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한 쌍의 젊은 부부가 낳는 아동의 숫자는 0.9명 미만에 그치고 있으며, 반면에 우리 인구 중 65세 이상의 노년층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미 고령사회를 넘어 2025년이 되면 노년층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로 바뀌게 될 것이라 한다. 이렇듯 저출산과 초고령 사회로의 변화는 우리 사회의 인구문제를 넘어 경제적으로 큰 고민거리가 되었다. 노동인구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농촌총각들을 비롯하여 우리 사회의 소외된 젊은 청년들에게는 결혼의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자연스럽게 결혼이민자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국내의 대학교들은 이미 저출산의 문제로 생겨난 학생 수의 감소로 유학생을 받지 않고서는 더 이상 학교를 유지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민자의 증가는 필연적 상황이 되었다. 이주노동자와 결혼 이민자 그리고 유학생의 증가는 이제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되었다.

코로나 이후의 선교적 대안 다문화 선교

 

코로나가 가져다준 선교현장의 변화와 우리 사회의 인구절벽이 만든 현실은 다문화 이주민을 주목하게 한다. 다문화 이주민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며 이들이 곧 우리 교회의 미래를 담보함은 물론이고 선교적 사명을 다할 수 있게 하는 대안이다.

우리에게 이주민은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이웃이며 더불어 살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친구이다. 우리는 새로운 유목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전세계인구의 3%가 넘는 이들이 길 위의 이주민으로 살고 있으며 이들은 이주노동자와 난민, 혹은 갈 곳 없는 나그네로 살아간다. 우리 사회에도 250만 명이 넘는 이주민들이 이주노동자와 결혼 이민자 그리고 유학생과 난민이라는 이름으로 유입되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이주민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사람들이다. 더욱이 코로나 이후의 선교와 미래 교회를 위한 소중한 자원이며 자산이다.

 

코로나 시대에 어떻게 선교할 것인가?

 

다문화 이주민들을 선교함에 있어 몇 가지 선제적으로 알아야 하는 요소가 있다. 다문화 가정이라고 할 때에는 부부 중 한쪽은 한국인이며 다른 한쪽이 외국인인 경우다. 우리는 그들을 결혼 이민자라 부른다. 이들의 자녀들은 물론 우리나라 아이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어떤 이유에서든 차별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다음으로 이주노동자들과 유학생들은 외국인이다. 우리나라는 영주권과 시민권을 쉽게 주는 나라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신분은 외국인이다. 이주민에 대한 편견은 우리 사회의 오래된 문제다. 서구 사회의 인종차별의 문제보다 우리 내부의 인종차별은 더 심각하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주민들은 유입 경로와 동기에 따라 다양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인권의 문제에서부터 생존권과 같은 기본적인 문제, 비자문제와 노동현장에서 당하는 문제, 가정 폭력의 문제 등. 수많은 문제 앞에 노출되어 있다. 이 문제들의 상당한 원인은 의사소통의 부재 때문이다. 문화적 갈등은 더욱 심각하다.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의 문화와 규례만을 강요하는 일방적 태도는 매우 위험하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주민들이 갖고 있는 문제로부터 선교적 접촉점을 만들어야 한다. 즉 이주민의 문제가 선교사역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언어 소통의 문제가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면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여기에 더하여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한 한국식 육아법과 교육 그리고 가족 문화에 대한 이해 교육도 좋다. 그리고 이들을 위한 한국 음식 배우기와 같은 프로그램도 교회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조금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하다. 노동현장에서 당하는 산재와 임금체불, 인권문제 등 법적인 문제를 상담할 수 있어야 한다. 유학생들에 대한 선교는 매우 의미 있는 선교프로그램이다. 이들에게도 한국어 교실과 문화 이해교육을 할 수 있으며 이들에게 깊이 있는 신앙교육을 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더하여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방과 후 교실과 장학사업 그리고 지속적인 보살핌은 매우 필요하다

 

나그네를 섬기는 나섬교회

 

나섬교회는 오랫동안 국내의 다문화 이주민을 위한 사역을 해왔다. 종종 내가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듣는 말 중 하나가 '섬이 무슨 뜻이냐?'는 물음이다. ‘나섬이라는 말은 나그네를 섬긴다.’ 는 뜻이라 알려 주면 그제야 알겠다는 듯 머리를 끄덕인다. 30여년을 나그네와 함께 살아온 내게는 그리 이상할 것도 생경할 것도 없는 말이 다른 이들에게는 낯설게 들리는 모양이다.

우리 교회 이름이 나섬이라는 것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리 호감 가는 이름은 아닌 듯하다. 교회 이름 앞에 붙여진 나섬이라는 말은 때로 십자가를 짊어져야하는 의미인 것 같다. 누가 무거운 짐을 지는 교회를 좋아하겠는가?

우리 공동체는 작은 자들을 섬기는 교회다. 그리고 그들을 품으려는 교인들의 모임이다. 당연히 작고 보잘 것 없으며 때로 나섬이라는 이름의 무게 앞에 부담을 느끼게 되는 곳이다. 나는 나섬의 목회를 하며 많은 생각을 한다. 처음 신학교에서 목회자의 길을 선택할 때에 내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예수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당시의 우리나라 상황은 어둡고 고통스러움 그 자체였기에 작고 연약한 사람들은 더욱 고통스럽게 살아야 했다. 군부독재의 시절이었으니 자신의 생각을 자유스럽게 표현할 수도 없었다. 정의를 말하면 안 되는 시절이었다. 나는 그것을 고민하며 바라보았고 부자유의 삶을 살아야 하는 그 시대를 몸으로 경험하였다.

그때에 나는 예수를 따라가는 삶은 부자유가 아니라 자유이며 고통이 아니라 희망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약한 자들을 섬기는 것이 진정한 예수 제자의 삶이라고 고백하였다. 고통 받는 자들의 친구로 사는 것이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삶이었다. 작고 연약한 자들을 위하여 갈릴리를 떠나지 않았던 예수를 따르기로 결심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느덧 나도 목사가 되고 세상에서 내 자리를 찾아야 했다. 짧은 군목 시절을 마감하면서 나는 결심했다. 나는 내 자리를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세상을 헤매었다. 한 달간 유럽으로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나섰다. 어디가 내가 가야 할 곳인지를 물으며 길을 걸었다. 길을 걸으며 예수께 물어보았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고 또 물었다. 그때에 예수께서 내게 가르쳐 주셨다. 길 위로 올라가라 하셨다. 길 위의 삶을 가르쳐주셨다. 성 쌓는 삶이 아니라 길 위의 삶이 내가 살 길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급기야 찾은 곳이 나그네를 섬기는 목회지였다.

나그네였다. 나섬은 나그네를 위한 공동체가 되어야 했다. 나는 그것을 찾았고 그 공동체를 선택했다. 내게는 운명이었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그대로 길 위의 삶이었다. 길 위에는 십자가가 놓여 있었고 아무도 찾지 않는 공간 안에서 오랫동안 외롭게 살아야 했다. 그곳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했고 급기야 내 몸에 고난의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눈을 잃었다. 고통의 자국이 내 육체와 영혼에 선명하게 찍혔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지금도 나는 고통을 온몸으로 짊어지고 산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요즘도 나를 괴롭힌다. 죽는 날까지 이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하는 나를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나섬은 내게 운명이지만 거부하고 싶을 만큼 힘들고 아픈 자리다. 그러나 더 깊이 묵상하면 이 자리가 복된 자리임을 확신한다. 고통을 말하지만 그 고통 너머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는다. 나섬은 존재 자체가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이들의 공동체이기에 나섬을 찾는 이들이 많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나는 나섬의 교인들을 사랑한다. 그들이 나섬을 찾아준 것만으로도 놀랍고 감사하다.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지만 그래도 작고 부족한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이들의 공동체가 있음이 감사하다. 나섬이 있음으로 나는 행복한 목회자이다. *(광주제일교회 2021온라인선교학교 강의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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