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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도 다함께/열린 문화, 국경을 허문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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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동 합숙 교육기관 베들레헴 어린이집

움츠렸던 다문화자녀들 놀이치료 받고 자신감 쑥쑥

《네 살배기 현수(가명)는 왠지 표정이 뚱했다. 자동차 모형을 손에 쥐고도 어쩔 줄 몰라 한다. “보통 저 나이에 좋아하는 장난감이 있으면 갖고 노느라 정신이 없죠.”(박혜정 예술치료사) 하지만 현수는 자꾸만 박 치료사를 돌아본다. 눈빛은 애절할 정도다.

“많은 다문화가정 자녀에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어떻게 하라’고 하면 그제야 움직여요. 노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주체성이 떨어져요. 아이 지능엔 문제가 없어요. 어릴 때 적절한 교육과 지도가 부족한 결과예요.”》

국악 발레 영어 체육 미술 등 재능 찾아주려 다양한 교육
2평 방에 아이들 9명 동숙, 수용공간 모자라 지원 절실

지난달 29일 방문한 서울 성북구 성북1동 ‘베들레헴 어린이집.’ 권오희(세례명 세라피나) 수녀가 운영하는 이곳엔 현수처럼 결혼이민자나 외국인노동자 자녀 34명이 모여 산다. 국내에서는 민간 재원으로 다문화가정 영·유아 및 초등학생 자녀를 돌보는 거의 유일한 교육기관이다. 아이들은 권 수녀 등 여러 자원봉사자 덕분에 이런 놀이교육을 포함해 일반 아이도 받기 힘든 양질의 교육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이라고 문제가 없진 않다.

○ 초기 교육 부재가 자녀 문제 키워

가장 안타까운 것은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문제가 자신감 부족에 멈추지 않는다는 점.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가면 또래 아이보다 줄곧 뒤처지곤 한다. 특히 언어와 관련된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베트남 엄마를 둔 초등학교 3학년 영수(가명)는 어떤 단어나 문장이 낯설 때가 자주 있다. 며칠 전엔 ‘자전거’가 그랬다. 분명히 아는 단어인데 머릿 속에 물체가 떠오르질 않았다. 권 수녀는 “어릴 때 엄마의 모국어 사용을 막은 탓”이라고 말했다.

“많은 다문화가정에서 동남아 출신 엄마들에게 모국어를 못 쓰게 합니다. 아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엄마가 더듬더듬 한국어만 하니 언어가 제대로 형성될 리 없죠. 자전거를 다른 언어로 배우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언어를 인식하는 구조를 익히는 게 더 중요해요. 덤으로 자연스럽게 2개 국어를 배울 기회마저 잃는 거죠. ‘글로벌 인재’가 될 수 있는 아이들인데….”

글로벌 인재란 말은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해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종합인지검사를 실시한 결과, 대부분 상위 20%에 속하는 지능을 지녔다. 일부는 5% 이내 영재로 판명됐다. 그런 아이들이 잘못된 초기 교육으로 일반 과정도 버거워하는 아이가 된 것이다.

어린이집은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아이들 재능을 되살려 주기 위해 일주일 내내 국악 발레 영어 체육 미술 논술 등 안 가르치는 게 없다. 일반인은 접하기도 어려운 예술심리치료 과정까지 마련했다. 권 수녀는 “어릴 때 대응을 잘하지 못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셈”이라며 “다행히 상당수 아이가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으로선 아쉬운 것이 많지만 실제 이곳 아이들은 다른 다문화가정과 비교하면 ‘축복’에 가까운 혜택을 받고 있다. 몇 년째 베들레헴 입교를 기다리는 부모도 있다. 박 치료사는 그런 교육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성장이 걱정스럽다.

“외부 상담치료를 다니면 다문화가정 2세를 많이 만납니다. 점점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자라고 있죠. 대부분 콤플렉스가 많다 보니 불만도 큽니다. 점점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며 거칠어지죠. 조만간 엄청난 사회적 문제가 될지도 모른단 생각을 멈출 수 없습니다.”

○ 공감부족 등 한계에 부닥친 베들레헴

베들레헴 어린이집도 현실은 순탄치 않다. 현재 이곳은 ‘규정 위반 교육시설’이다. 2층짜리 가정집을 아이들 공간 확보를 위해 구조를 바꿨다가 불법 증축이 됐고, 아이들 수도 규정 인원을 넘어섰다. 이 때문에 정부 지원이나 혜택을 기대하기 힘들다. 

게다가 공간도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권 수녀의 안내로 돌아본 어린이집은 과거 수녀 1명이 쓰던 2평 남짓한 방을 6∼9세 여아 9명이 쓰고 있었다. 남자아이들도 비슷한 처지. 권 수녀는 인근에 방을 얻어 비교적 큰 아이들을 내보낼 계획이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다.

“수녀들은 이미 3년 전부터 근처 셋방을 얻어 살아요. 무슨 날만 되면 장관 국회의원 등 찾아오는 이는 많죠. 뭐가 필요한가 물으면 집 좀 구해달라고 말합니다. 고개는 언제나 끄덕였지만 변한 건 없네요. 중요한 건 일시적 관심이 아니라 구조적 해결입니다. 가장 잘 된다는 우리도 거리로 나앉게 생겼는데 다른 곳은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동아일보 6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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