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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톡80 선교보다 앞선 법 유감

선교보다 앞선 법 유감

안타깝게도 지난 9년여 동안 나섬에서 신학을 공부한 판가즈 전도사에 대한 목사안수의 건이 노회에서 승인을 얻지 못하였다. 올 해 힘든 신학수업을 마친 판가즈 전도사는 올 가을쯤 목사안수를 받은 후 곧바로 선교사로 파송 받아 인도 북부지역으로 가고자 했었다. 그런데 뜻밖의 벽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선교사로 나가려하는 자는 목사안수의 요건에 있어 조금은 융통성을 발휘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우리 교단 법에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나는 이미 28년 전 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한 후 일주일만에 임시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군목으로 입대한 바 있다. 군목 혹은 선교사와 같이 즉각 선교지에 투입되어야할 사람에 대하여는 2년여의 전도사 인턴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목사안수를 받을 수 있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졸업 후 일주일 만에 목사안수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매우 유감스럽다. 판가즈의 목사안수에 있어 논란이 되었던 것은 그의 국적 때문이었다. 우리 총회 세계선교부에서는 그의 국적이 한국이 아니라 인도이기 때문에 세계선교부 파송선교사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세계선교를 말하는 이들의 사고가 이렇게 경직되어서야 어떻게 세계선교를 할 것인지 의심스럽고 매우 안타깝다.
세계화와 다문화를 말하는 변화의 시대에 국적 운운하는 것은 엘빈토플러가 말하는 전형적인 속도의 충돌이다.
엘빈토플러가 말하는 속도의 충돌이란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않음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변화의 속도를 가장 빠르게 따라가는 집단은 경제를 끌고 가는 시장과 시민 사회단체이며, 가장 늦게 따라가는 집단은 법을 만들고 법을 집행하는 이들이라 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를 덧붙여야겠다. 법을 만들고 법을 집행하는 이들보다 더 늦은 존재가 바로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라는 사실이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변화하는 살아 남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법으로 선교와 하나님 나라를 제한하고 있는 형국이다. 판가즈의 국적이 한국이 아니라 인도인 것은 얼마나 좋은 조건인가! 인도 선교를 해본 사람은 안다. 인도에서는 공식적으로 기독교 선교가 불가능하다. 특히 한국인의 경우에는 인도에서 합법적으로 선교하며 살아갈 수 없다. 그러니 비자 문제를 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비자가 만료되어 일 년에 몇 번씩이나 인도에서 나와야 하는 사람들을 나는 수없이 보아왔다. 그렇지 않으면 가짜 사업가 행세를 하거나 학교에 적을 둔 채 힌디어를 배운다는 핑계를 만들어야 한다.
시간과 돈이 얼마나 소모되어야 선교가 가능한가 말이다. 그런데 인도 사람인 판가즈에게 국적을 이유로 선교사 파송을 할 수 없다고 하다니! 이것은 전형적인 율법주의다.
한국교회와 우리 교단은 왜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그 이유는 아마 질서를 바로잡기 위함일 것이다. 교단 내의 질서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 질서도 모두 하나님 나라를 위한 질서다. 질서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며 선교다. 모든 것이 선교적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다. 그것이 본질이다. 법은 선교를 위하여 만든 최소한의 제한적 조건들일 뿐이다. 법철학을 알고 법으로 선교를 제한한다면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다르다.
판가즈는 인도 출신의 외국인 이주 노동자였다. 물론 그의 종교는 힌두교였으며 그의 부모는 지금도 여전히 힌두교인들이다. 그는 인도의 카스트제도에서 브라만 출신이다. 그의 아내는 한국 여성이고 그에게는 뜨거운 선교적 열정이 있다. 그는 당장이라도 인도로 달려가 자신의 부모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인도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려는 선교적 비전을 품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그가 한국에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는 준비된 선교사이다. 인도 선교의 역사를 새롭게 쓸 구별된 사람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판가즈의 앞길을 막아 선 것은 세상의 그 무엇이 아닌 교단의 법이었다.
그토록 법을 잘 지킨 한국교회였던가? 그렇게 법의 정신을 잘 구현한 교단이며 노회였던가?
노회 정치부에 인터뷰를 하러갔던 판가즈가 너무 답답하여 한 마디만 하고 싶다고 했단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다. “이럴 때 예수님이라면 여기서 어떻게 결정하셨을까요?”라고 말이다. 부끄럽고 안타깝다. 그렇게밖에 결정할 수 없는 우리 교단과 노회에 유감이다. 정말 예수님이라면 그 자리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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