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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톡77 경계를 허무는 사람들

경계를 허무는 사람들

노마드 유목민의 특징은 경계를 허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경계를 긋고 살아가는가? 국경을 쌓고, 집의 울타리를 만들고는 누구도 침범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그 담을 넘으면 범죄자가 된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그래서 불법체류자니 주거침입이니 하는 말들이 생기는 것이다. 언제부터 경계가 있었는가? 소유권이라는 것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경계는 없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창조세계에 인간이 금을 그어놓고 자기 것이라 주장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그 경계는 기득권자들이 만들어놓은 지극히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죄성의 결과인 것이다. 세상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국경의 개념은 근대국가에 들어서면서부터 생긴 것이다. 이전에는 경계가 없었다. 1206년 칭기즈칸의 제국에는 오히려 경계를 허무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본주의가 활성화되면서 경계는 더욱 공고해졌다. 소유의 개념이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경계는 없다. 예수께서도 인간과 인간의 경계를 허물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했다. 바울도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는 하나님의 구원 섭리 가운데 무의미하다 했다.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담이 허물어 져야 한다.
성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경계를 허무는 이들의 이야기다. 아브라함은 경계를 허물고 자신이 살았던 고향과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가나안으로 떠났다.
리브가는 이삭과의 결혼을 위하여 생전 가보지도 않은 땅으로 나아갔다. 그런 면에서 리브가는  가장 용감한 여인이다. 야곱과 요셉도 경계를 허물고 떠나야했다. 모세도 이스라엘의 역사도 경계를 허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다만 자발적으로 경계를 허문 이들이 있는가 하면 강제로 떠밀려서 경계를 허문 이들이 있을 뿐이다. 예수님도 경계를 허무셨다. 하늘과 땅의 경계를 허물고 이 땅에 오셨고, 죄인과 유대인, 율법과 인간을 차별하고 나누는 모든 경계를 허무셨다. 그렇게 경계를 허무시다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이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이세상의 모든 장벽과 경계를 허무는 역사의 시작이 되었다. 그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던 그 순간 모든 장벽과 경계가 무너지는 사건이 있었다.
바울은 자신은 로마시민권자이나 동시에 유대인이라면서 결국 구원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은총이 있다고 주장했다.
21세기는 노마드 유목민의 세상이다. 전세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3억 명에 육박하는 이들이 경계를 넘나들며 이주하고 살아간다. 유럽에는 시리아 난민을 비롯해 이라크와 아프리카 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지중해에서 난민들이 타고 있던 배가 뒤집혀 수많은 이들이 죽고 실종되고 있다. 나섬이 파송한 터키의 호짜트 선교사의 사역은 난민들과 이주민들을 섬기고 선교하는 사역이다. 시의적절한 때에 하나님께서 호짜트를 그곳에 보내신 것이다.
다시 경계를 허무는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한다. 일본의 동경과 호주의 시드니, 프랑스의 파리 에 새로운 나섬을 세우는 비전이다.
경계를 허무는 이들을 위하여 우리가 먼저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결국 복음이란 경계를 허무는 소식이다. 율법과 유대인만이 독점하던 모든 경계를 허무는 것이 복음의 의미다. 예수께서 그렇게 사셨으며 바울이 그것을 신학화 하였고 선교의 주제로 삼았다. 경계를 허물며 달리던 칭기즈칸처럼 오늘 우리는 영적인 칭기즈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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