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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섬사람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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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근목사와 함께하는 선교여행/터키편(3)
트로이와 바울 선교의 세계화

트로이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드로아다. 트로이의 목마로 유명한 그곳이 바로 바울이 마케도니아인의 환상을 보았던 그곳이다.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에서 그리스 사람들이 트로이 사람들을 속이기 위하여 목마에 숨어들어 결국 전쟁에서 이기게 되었다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Odyssey)에 나오는 그곳이 성서의 드로아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트로이의 목마가 아니다. 그곳에서 바울이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았다는 것이다. '우리를 도와 달라'는 그 마케도니아 사람의 음성을 들었다는 그 땅이 보고 싶었다. 물론 23년 전 나는 그 드로아에 가보았다. 그럼에도 이번 터키 여행 중 드로아가 일정에 들어있어 한 번 더 그 곳에 가보고 싶었는데 이번 일정에서 그곳을 가는 것이 빠졌단다. 실망이 컸다. 가보고 싶었는데... 하긴 가도 볼 수 없는 사람이 보고 싶었다는 것은 이미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그 땅위에 서보고 싶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내가 이즈음 트로이를 가보고 싶은 이유는 바울이 그 트로이에서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고 곧바로 마케도니아 땅으로 건너갔다는 사실 때문이다. 마케도니아는 지금의 그리스다. 로마시대 이전에는 알렉산더의 땅 바로 헬라문화의 본산이었던 그 땅이다.
이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복음이 옮겨가는 엄청난 패러다임의 변화이다. 만약 그 순간에 바울이 마케도니아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혹시 들었더라도 그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는 순간의 선택이 좌우한다. 특히 기독교 역사에서 바울의 결단은 구원의 역사를 바꾸는 결정적인 선택이 되었다. 트로이는 그런 스토리를 갖고 있는 땅이다. 바울이 복음을 세계화하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나는 바울의 이 결단과 세밀한 영적 판단력에 주목한다. 바울이 그 순간적 선택의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 나섬공동체가 동일한 상황에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곳 트로이는 오늘 나섬의 상황을 상징하는 땅이다. 오늘 우리가 호잣트를 터키로 보내려는 결단과 비교하고 싶은 것이다. 나중에 알 것이다. 오늘 우리의 결단과 선택이 바울의 결단과 맞먹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그 예감 말이다. 지나친 상상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모른다. 우리의 결단이 바울의 선택과 비교하는 것에 누군가 마땅치 않게 여길지라도 나에게 오늘 호잣트 목사의 파송은 그런 마음과 결단이다. 그래서 '호잣트 역파송' 이라는 우리의 결단을 "나섬의 세계화 전략"이라 말하고 싶다.
바울이 마케도니아에 건너가 빌립보 교회와 데살로니가교회, 고린도 교회 등을 세웠듯이 우리도 그런 비전으로 나아간다. 바울 선교 2000년이 지난 지금, 21세기에도 여전히 복음은 새로운 땅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땅이 터키며 이란이고 이슬람의 땅이리라. 그들에게 호전적인 전투를 요구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그네를 섬기듯 그들을 나그네로 바라보며 연민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돕고 사랑하고자 하는 것이다.  

트로이를 보며 나섬의 미래를 꿈꾼다. 트로이가 바울 선교의 세계화를 시작하는 첫 번째 공간이었듯이 나는 터키와 이스탄불을 그 땅으로 보았다. 이스탄불은 나섬의 영적인 트로이다. 그곳에서 우리를 부르는 이란 사람들의 소리와 손짓을 보았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수많은 이슬람의 나그네들이 보인다. 누군가를 보내달라고 외치는 저들의 손짓과 고함소리가  우리에게 들려야 한다. 내게는 그것이 보이고 그 소리가 들린다. 오직 이 길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시작하는 일이다.

트로이의 목마보다 더 위대한 것이 트로이에 있다. 그것은 바로 바울의 선교적 결단이며 세계선교를 위한 위대한 선택인 것이다. 바울은 그 선택을 하였다. 나도 하여야 한다. 우리도 그 길을 가야 한다. 호잣트를 보내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는 대단한 부담이다. 호잣트를 보낸 후 우리에게는 큰 재정적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하랴?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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