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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근목사와함께하는선교여행/터키편(2)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인천공항을 출발한 아시아나 항공기가 12시간의 비행을 한후에야 우리는 터키의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1991년 6월에 잠시 들렀던 터키다. 그당시에는 성지순례단을 이끌고 이집트와 이스라엘 그리고 터키까지 갔었다. 터키 곳곳의 성지를 다니면서 나는 얼마나 감격하고 은혜를 받았던지... 그때가 기억난다. 군목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젊은 나이에 누구보다 앞서 나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제 50대 중년이 되어 다시 터키를 찾았다. 이제는 눈도 보이지 않아 그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 장애인이 되어 다시 찾은 이스탄불이다. 델피의 신탁에 의하면 이 땅은 '눈 먼 자의 땅'이라고 했다고 한다. 눈 먼 자의 땅이라 했다니 눈 먼 자의 방문을 어떻게 맞이할까 궁금했다. 눈 먼 자의 땅이라 함은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땅이라는 의미일 게다.  주후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의 수도를 옮기고 싶었을 때에 발견한 땅이었으니 그만큼 아름다운 땅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주후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로마의 수도를 옮기고 싶었다. 더 이상 로마에 머문다는 것은 불안했다. 그는 정치적이며 종교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는 큰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수도이전이다. 그는 가장 아름답고 안전하며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땅을 찾았을 것이다. 그 땅이 지금의 이스탄불이다. 그는 비잔티움이라 불리던 그 땅을 새로운 수도로 정한다. 그리고 그 땅을 콘스탄티노플이라 부른다.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은 오스만투르크의 술탄 마호메트  2세에게 점령당하고 만다. 당시 비잔틴 제국의 황제는 콘스탄티누스 11세였고 그는 그의 할아버지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같은 이름을 가진 황제였다. 그의 할아버지는 그 땅을 새로운 제국의 수도로 정했고, 그 할아버지의 한참 후 손자인 콘스탄티누스 11세는 그 땅을 오스만 제국의 제물로 바친 것이다. 전국회의장 김형오씨의 '술탄과 황제'라는 책에서 나는 그때의 이야기를 읽었다.  김형오씨는 정치인이 아니라 역사가로서도 의미있는 책을 저술했다고 생각된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었지만 나에게는 아는 것만큼 상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이는 것보다 상상하는 것이 더 크다. 상상하는 것은 보이는 것 이상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여행은 상상과 현실의 조화로 시작된다. 그래서 더 크고 위대하다. 나의 상상여행은 아는 것과 공기와 냄새와 맛과 청각 그 모든 것의 융합이다. 상상의 융합으로부터  선교 여행은 시작된다.

이스탄불은 과거 1123년 동안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었다. 비잔틴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를 누르고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마호메트 2세가 그 땅을 지배한 이후 그 땅은 이슬람제국 오스만의 수도가 된다. 그리고 이스탄불이라 이름 한다.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은 '도시를 향하여'라는 뜻이다. 당시에 도시라는 것은 콘스탄티노플이 전부였으니 술탄은 그의 병사들에게 도시를 향하여 진격하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그 땅은 그 후로 이스탄불이라 불리어지는 것이다.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가운데 두고 나뉘어져 있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선이 이스탄블인 것이다. 이쪽은 아시아 다리를 건너면 유럽이다. 아시아쪽  이스탄불과 유럽쪽 이스탄불을 생각해 보라. 대륙의 경계선이 이스탄불인 것이다. 흑해와 에게해 그리고 지중해가 연결되는 그 해협의 폭은 그리 넓지도 않다.
과거 흑해는 민물이었다고 한다. 지중해는 물론 바다다. 오래전 해협이 생긴 것이다. 그후로 지중해와 흑해는 하나의 바다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선이 그어진 것이다. 내가 처음 이스탄불에 들어가 생각한 것은 경계선이다. 물론 이 경계에 대한 생각은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다.

일찍이 그 땅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경계이기도 했다. 인류 문명의 충돌이 일어난 대표적인 땅이 이스탄불이다. 히타이트의 문명이 일어나고 앗시리아와 페르시아와 마케도니아와 로마 그리고 기독교와 이슬람의 문명이 충돌하고 만나는 지점이 그 땅이다. 누가 그 땅을 지배할 것인가는 역사의 관심이었다.
돌궐족의 한 부류가 오스만투르크다. 이전에 셀주크투르크라는 돌궐족이 있었지만 정작 그 땅은 오스만투르크가 지배한다. 오스만투르크의 술탄 마호메트 2세는 21살의 젊은 술탄이었다. 그는 젊은 패기와 지혜로 아무도 점령할 수 없다는 난공불락의 데오도시우스 황제의 성곽을 부수었다. 바닷길이 막히니 그는 배를 갈라타 언덕으로 끌고 넘어가면서까지 콘스탄티노플의 새 주인이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와 이슬람의 충돌이다. 물론 기독교와 이슬람의 충돌은 이전에도 십자군 전쟁을 통해 있었지만 진정한 충돌은 이스탄불에서의 충돌이다. 그래서 이스탄불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경계선인 것이다. 그 종교의 경계는 문명의 경계이고 인류 역사의 경계다. 그리고 그 문명의 경계선은 지금까지 그곳에 있다.

내가 터키를 생각한 것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분명 필연이었음을 고백한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데 호잣트 목사가 들어왔다. 내 어깨가 아프다고 했더니 그는 자기도 그렇다며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고맙다. 그렇다! 내가 터키를 가려는 것은 오직 호잣트와 그의 선교적 삶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다. 호잣트는 이란계 한국인으로 21년 전에 한국에 와서 외국인근로자로, 다시 신학생과 종교난민으로 살다가 한국인이 되었다. 그는 무슬림으로 자랐다. 그리고 기독교인이 된 사람이다. 우리는 그를 터키로 보내기로 했다. 그도 원하는 바였으니 여기서 우리라고 할 때에는 나와 호잣트 양쪽 모두이다. 역파송은 그와 내가 합의하고 동의하여 이루어진 선교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선교전략임은 더욱 분명하다.
나는 그와 그의 가족을 데리고 이스탄불을 찾았다. 무슬림으로 자라 기독교인이 된 호잣트와 그의 가족은 이스탄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궁금했다. 호잣트는 이스탄불에 내리자 마치 그의 고향을 찾은 것처럼 좋아했다. 그랜드 바자를 가니 그의 고향의 냄새와 같다고 호들갑이다. 그랜드 바자는 1461년 만들어진 대형 시장이다. 실크로드의 마지막 종착지가  이스탄불이었으니 그랜드 바자가 생긴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 동대문 시장 같은 느낌이다. 전세계에서 가져다놓은 온갖 물건들이 가득했을 그랜드 바자를 보면서 터키의 역사와 문화를 생각했다. 실크로드의 종착점이며 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을 이 땅은 그래서 수많은 문명과 인종과 종교가 어울리고 융합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땅이 이스탄불이다. 과거와 현재의 경계선이라는 점은 그런 의미에서 맞는 말일게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선, 이슬람과 기독교의 경계선, 과거와 현재의 경계선이 이스탄불이라 생각하니 이땅의 주인이 누가 되는가는 역사의 관심사였을 것이 분명하다.

1923년 세계1차대전의 패전국이 되어버린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 새로운 터키 공화국이 탄생한다. 무스타파 케말 장군이 터키공화국의 탄생을 이끈 주역이다. 아타튀르크라고도 불리던 그는 이슬람 세속주의를 주창하며 터키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한다. 그것이 미국과의 관계를 통한 새로운 터키의 재건이다. 터키는 미국과의 친밀한 관계를 고려하여 6.25전쟁 때 우리나라에 파병을 한다. 1만 5천명이 넘는 터키군인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배경에는 그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700명이 넘는 터키군인들이 한국전쟁에서 죽었다. 앙카라의 한국참전 군인들의 기념탑을 찾았을 때에 나는 그들의 죽음에 터키역사의 숨겨진 비밀이 있었음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 이유였을까 터키 사람들은 우리를 피를 나눈 형제국가라고 부른다. 한국인들은 터키 어느 곳에서도 환영을 받는다.

오스만터키가 있기 이전 그러니까 돌궐이라 불리우는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은 당나라의 돌궐족 제거정책에 반발하여 당시 아라비아 반도에서 시작된 이슬람을 받아들이면서 이슬람을 믿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이슬람의 도움으로 당나라의 침공을 물리치고 독자적인 세력으로 성장하면서 오히려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이슬람 왕조를 물리치고 셀주크투르크제국을 세운다. 그리고 그 투르크 제국의 한 분파였던 오스만투르크가 셀주크투르크를 제압하고 이슬람의 진정한 왕국을 세우는 것이다. 그 오스만의 술탄 마호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그 땅에 이스탄불을 세운 것이다.
돌궐족이 터키의 뿌리라고 했을 때 그 돌궐은 누구인가? 고조선과 고구려의 유민들이 돌궐족과 함께 유목했을 가능성을 말하는 학자가 있다니 어쩌면 터키와 우리는 한 민족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우리와 그들의 문화에는 상당한 일치점이 보이기도 한다. 어순도 같을뿐더러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생활풍습에도 비슷한 점이 나타난다.

역사와 문명은 서로 충돌하고 융합한다. 경계선이라고 하지만 마치 흑해와 지중해가 하나의 해협에서 합치고 교류하는 것처럼 그렇게 역사는 충돌과 융합을 반복하며 진보한다. 터키는 그래서 역사와 문명을 이해하고 공부하는데 가장 좋은 땅이다. 호잣트 목사와 함께 이스탄불의 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호잣트 목사가 그런 경계선에 선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란계 한국인으로서 무슬림에서 기독교인으로 삶의 내용을 바꾸어 가며 살아가는 그에게서 경계선에 선 한 인간을 본다.
하나님은 이제 호잣트 목사와 나섬공동체를 통해 새로운 선교와 미래 역사를 써나가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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