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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반란이 필요한 한국교회<유해근목사>
강준만 교수의 '갑과 을의 나라'라는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하여 깊은 통찰을 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 곳곳에 갑과 을의 부조리한 관계가 숨어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기업과 기업의 관계는 물론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 갑과 을의 종속관계가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부조리하고 종속적인 관계의 또 한면이 바로 교회와 교회의 관계이다. 교회는 과연 갑과 을의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묻고자 한다.

우리는 지금 심각한 양극화의 시대를 살아간다. 경제적 양극화는 극에 달해 이제는 80:20이라는 파레토의 법칙에서 99:1의 법칙이라는 우울하고 절망적인 개념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이러한 사실에 반하는 예를 찾아볼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일까?
이러한 양극화는 분명 우리 사회의 모순이며,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무척이나 불행한 일이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아래 미국에서 일어났던 젊은이들의 시위와 분노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얼마 전 우리 사회에 일어났던 남양유업의 갑과 을의 사건은 경제민주화니 갑과 을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 하는 법의 제정이니 하는 야단법석을 일으켰다. 그러나 여전히 갑과 을은 이미 굳어진 사회적 현상이고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한계이며 모순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제 양극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것 같다. 그럼에도 곳곳에 을의 반란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고 여전히 희망의 줄을 놓을 수는 없다. 을의 발란만이 우리 사회를 조금이나마 정의롭게 그리고 가능성이 있는 공동체로 갱신할 수 있음을 아는 지혜로운 자들이 있기에 그러하다. 강준만 교수의 위의 책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어 읽을 만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 사회와 경제적 갑과 을의 문제만큼이나 심각한 것이 교회 안에서의 문제이다. 교회 안에서의 갑과 을의 관계는 어떠할까? 교회 안에서의 갑과 을의 문제는 기업과 기업 간의 관계 혹은 우리 사회 주변에서 자주 목격하는 관계 이상의 종속관계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대형교회와 기타 한국교회 특히 미자립교회이거나 개척교회, 농어촌 교회, 특수목회지의 관계는 딱히 종속관계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갑과 을의 관계임은 분명하다. 종교권력의 힘은 경제나 정치권력의 힘보다 강하다.

지금의 한국교회를 보라. 위기를 넘어 몰락의 시대로 접어들은 것은 아닌가? 그 몰락의 징조는 교회의 양극화, 다시 말하면 갑과 을의 관계가 더욱 심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일 게다. 교회와 교회는 수평적 관계에서만 그 건강함이 담보된다. 종속관계 혹은 지금과 같은 갑과 을의 관계는 교회의 건강성을 해치게 된다.

흔히 말하는 '기분 나쁘면 너도 성공해라' '너도 큰 교회 만들면 그런 말 못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 그 말은 맞다. 분명히 그런 말하는 사람과 이런 말하는 사람은 다르다. 그 입장이 다르고 그 자리가 다르고 그 신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을의 반란을 말하고 싶은 거다. 을의 교회들이여! 지금의 한국교회의 구조를 바꾸자. 을의 반란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적어도 교회의 세습방지법을 만들어 교회의 세습은 물론이고 편법 세습까지 방지하는 법을 제정하여야 한다. 그렇다고 이미 세습을 마친 교회는 무죄인가?
대형교회는 그 기득권에 걸맞는 나눔을 실천하여야한다. 그 하나의 방법이 한국교회 십일조 나눔재단을 만들어 공유와 공감의 목회를 실천하여야 한다. 이것이 우선되어야 치유와 화해의 공동체가 새롭게 형성되어 갈 수 있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의 패러다임과 달라야 한다. 세상은 승자독식의 경쟁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지만 교회는 달라야한다. 승자독식이 아니라 약자까지 돌아보는 것이 교회의 존재이유이며 삶의 내용이어야 한다. 강자만을 위한 교회, 그래서 강자가 되고자하는 패러다임은 하늘의 법칙이 아니다. 교회는 공감과 공유 그리고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로서 살아갈 때에 비로서 그 존재이유가 있는 것이다.
지금의 패러다임으로는 결코 갑과 을의 구조를 바꿀 수 없다. 을의 반란이 필요하다. 을은 작고 힘없는 목회자와 교회 즉 개척교회이거나 특수목회지이거나 농어촌의 미자립 교회 등을 말한다. 그렇다고 이제 을의 반란이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갑의 교회에 줄서고 그 갑의 지배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우리 교회의 구조적 한계는 절망이다.

이 세상도 갑의 을에 대한 횡포 방지법을 만들고 을의 반란을 말하는 시점에 우리 교회는 무엇이란 말인가? 언제까지 우리 교회가 개혁의 주체가 아닌 개혁의 대상으로 남을 것인가? 이러한 패러다임의 고착화는 교회의 몰락을 가속화할 뿐이다. 이 몰락에는 작은 을의 교회는 물론이고 갑의 교회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한다. 유해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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