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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도 망할 수 있다


<망해가는 교회>
-교회도 망할 수 있다

“유대 사람의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는데, 
성전 뜰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환전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상을 둘러 엎으셨다. 
비둘기 파는 사람에게는 "이것을 거둬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주의 집을 생각하는 열정이 나를 삼킬 것이다' 하고 기록된 성경 말씀을 기억하였다. 
유대 사람들이 예수께 묻기를 "당신이 이런 일을 하다니, 무슨 1)표적을 우리에게 보여 주겠습니까?" 하니, 예수의 신성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으로서의 기적(그리스어 세메이온)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하였다. 
그러자 유대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짓는 데 마흔여섯 해나 걸렸는데, 이것을 사흘 만에 세우겠습니까?" 
그러나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그가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서, 성경 말씀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다.” 요한복음 2:13~22

몽골의 오래전 수도 하라오름에는 십자사라는 네스토리안들의 교회당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그런 교회당이 있었다는 말만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몽골의 선교역사는 거의 800년이 넘는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내가 외국인근로자를 선교하면서 몽골인 근로자들을 제법 많이 상대하고, 몽골학교와 몽골문화원까지 세워 선교한답시고 호언하는 것이 사실은 가소로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몽골은 예전의 그런 교회나 선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복음의 불모지이다. 

왜 몽골의 기독교는 망하고 말았을까? 
그 첫 번째 이유로, 몽골제국의 기독교는 복음의 정체성을 간직하지 못하고 다른 종교와 혼합되어 생존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거의 모든 학자들의 일관된 생각이다. 몽골제국은 모든 종교에 대하여 포용정책을 썼다. 그들의 지배자들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도교, 불교, 이슬람교등 전세계의 모든 종교의 포교를 인정하고 수용하였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매우 개방적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국가의 시국을 논할 때마다 기독교의 사제들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종교의 지도자들을 모아놓고 토론을 하도록 하였다. 그들의 지배자들은 이미 21세기의 혼합주의 혹은 종교다원주의에 대하여 섭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지배자들은 늘 모든 것들에 대하여 놀라울 정도의 개방적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것은 오늘날 분명 진보요 자유주의의 양태와 비교할 수 있다. 네스토리안들의 동방 기독교는 다른 모든 종교들 중 하나로 취급받았다. 아무런 제약 없이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교회의 정체성, 아니 복음의 정체성에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다. 복음은 선교사역의 처절하고 치열한 투쟁과 죽음의 밭에서 성장하는 법이었는데, 그만 동방의 네스토리안들에게는 너무도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몽골의 종교정책으로 인하여 아무런 갈등도 필요없게된 것이다. 
당장 교회는 뿌리를 내리고 성장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뿌리는 너무 얕은 모래밭에 내리고 있었다. 복음은 없고  몽골의 종교정책에 안주한 교회의 미래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교회가 정치화되고, 권력화 되어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전승에 의하면. 칭키스칸의 후손들 중 상당수가 동방 기독교인 네스토리안들이었다고 한다. 그의 며느리들 중에도 기독교인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그렇게 지배권력의 종교로 변모해 가면서 한때는 그들의 수도인 하라오름에 교회당이 있었다는 것이다. 

교회가 복음의 정체성을 상실할 경우 교회는 망했다고 서양기독교든 동방기독교든 교회사는 그렇게 증언하고 있다. 그 증언은 옳다. 

얼마 전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나와 같은 외국인근로자들을 선교한다는 목회자들 중 일부가 그가 섬기는 지역의 모슬렘들이 주도하는 이슬람 사원을 설립하는 일에 헌금하고 동참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간혹 외국인근로자 선교를 한다는 목회자 가운데 기독교 복음을 강요하는 것은 기독교 패권주의라며, 자기들은 절대로 기독교를 강요하지 않는다고 자랑스럽고 호기있게 말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슬람 사원 건립에 동참하는 기독교 목사는 너무 심하지 않은가!  

종교다원주의도 좋고, 타종교와의 평화적 관계니 대화니 다 이해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기독교적 스탠다드만큼은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기독교가 기독교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구원론과 교회론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구원론은 시대 흐름에 뒤떨어진 골동품이고, 그 기반위에 세워지는 교회는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만듯하다. 교회도 없고, 복음도 없는 기독교, 기독교 선교는 없다. 

나는 외국인근로자 선교를 하면서 진보주의와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괴멸되어가는 교회현장을 보았다. 이것은 너무도 슬픈 경험이었다. 그것은 곧 내 삶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기에 더욱 슬프고 가슴아픈 일이었다. 

그러나 정말 심각하고 두려운 일이 외국인근로자선교 현장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류 교회 안에 이미 교회의 존폐를 가름할 심각한 바이러스가 침투해 있거나 교회가 괴멸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복음은 사라지지 않아도 교회는 망할 수 있다. 이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이미 중세의 교회가 우리에게 그 가능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구의 교회도 이미 파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는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그 존립목적에 부합하지 못한다면 얼마든지 망하고 문을 닫을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교회는 마치 신앙생활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목회자들은 평신도들에게 신앙생활이 곧 교회생활이라고 가르쳐왔다. 그것이 자신의 성공적 목회를 위해 필요한 논리였기 때문이다. 교인들은 목회자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니 신앙생활이 곧 교회생활이라는 등식은 얼마든지 가능한 논리가 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복음이나 예수가 아니라 교회와 목회자로 대체된 기독교의 미래가 정말 희망적인가 하는 점이다. 

교회의 심각한 양극화와 더불어 대형교회화 되어가는 작금의 교회현실,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목회자 후보생들과 저들의 왜곡된 목회철학, 제한된 교회 사역공간과 넘치는 목회자들, 우리 사회의 교회와 목회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등...

우리는 지금 위기 앞에 서있다. 이것은 교회의 위기이며 동시에 목회현장의 위기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목회니 선교니 하는 말이 너무도 사치스러운 상황일 수도 있건만 우리는 지금 너무도 낙관하고 있지는 않은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그 위기는 교회 안에 더 많은 요인이 있다. 특별히 교회의 지도자들인 목회자들의 성공주의와 성장주의가 가장 큰 원인이다. 

세계는 급속도로 변해가는데 그 변화의 속도에 민감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우리 교회와 목회자들의 안일함도 그 원인 중 하나일 게다. 세계화와 정보화의 코드를 읽지 못하고 여전히 과거의 관습과 의식에 사로잡혀 교회와 목회의 갱신을 서두르지 않는다면 분명 그 위기는 가중될 수밖에 없다. 교회 안팎에서 밀려드는 위기의 요소들은 결코 만만한 것들이 아니다. 어쩌면 그 위기는 결국 우리 교회를 공동화시키고 말지도 모른다. 그리고 교회안의 목회자들은 다시 세상에서 밥을 구걸하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공갈치고 협박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스스로 갱신하지 않으면 분명 망할지도 모른다는 교회에 대한 뜨거운 애정 때문이다.

교회가 망한다는 것은 망언중의 망언이요 신성모독의 결정판이다. 교회는 영원하여야하고 교회는 반드시 부흥하고 성장하여야 한다. 교회는 곧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믿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다. 교회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여기가 좋사오니 하면서 기존질서와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교회는 망하여야 한다. 망할지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깨끗하게 망하는 편이 낫다는 말이다. 다시 판을 짜고 시작하는 모습으로 갱신의 깃발을 올리지 않으면 안된다. 교회와 목회자의 목회가 변화되어야 우리 모두가 진정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살기 위하여 무너져야 한다. 다시 새우기 위하여 파괴되어야 한다.  

예수는 예루살렘 교회는 망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교회가 산산이 부서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는 경고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예루살렘 성전이었지만 그것은 오늘날 교회에도 그대로 유효한 말씀이다. 지금 다시 예수가 교회를 향하여 그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예루살렘 성전 같은 한국교회여! 곧 망할 것이다’
놀랍고 무서운 꿈이었다. 어젯밤 나는 그런 꿈에 잠을 깨고 말았다. 교회도 망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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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