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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지 신학교 입학


인도 형제 빵가지의 신학교 입학에 즈음하여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데리고 왔으며, 세상의 가장 먼 곳으로부터 너를 불러냈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말하였다. 너는 나의 종이니, 내가 너를 선택하였고, 버리지 않았다고 하였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하나님이니, 떨지 말아라. 내가 너를 강하게 하겠다. 내가 너를 도와주고, 내 승리의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주겠다. (이사야서 41장 9-10절 ” 

이제 빵가지는 신학생이다. 장로회신학대학 신학과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던 날 나는 내 아들이 대학에 입학한 것보다 더 감격스럽고 행복했다. 알고보면 빵가지는 내게 영적인 아들이나 마찬가지이다. 내가 빵가지와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으며 섭리였다. 저 먼 인도의 북부 히말라야 아래 찬드갈의 부잣집 아들이었던 빵가지를 한국의 작은 골방지기에게 보내신 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이었다. 그 동네의 유명한 싸움꾼이었던 빵가지는 한국으로 도피자가 되어 찾아왔다. 다른 외국인근로자들처럼 그도 공장에서 일하며 그럭저럭 한국생활에 익숙해져갔다. 물론 한국에서도 그는 인도인 근로자들 가운데 싸움꾼으로 살았던 모양이다. 한번은 포천경찰서에 붙잡힌 인도인을 면회하러 가던 중, 길을 안내하던 빵가지는 스스로 포천경찰서에 대여섯번이나 갔다왔다며 나를 웃기기도 했다. 그는 의리있는 인도 조폭의 대장이었다. 

빵가지가 내 눈에 띄었던 때는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그는 내 주변을 드나들며 깊은 신앙의 체험을 하고 있었다. 경기도 포천에서부터 새벽같이 일어나 주일아침이면 한국 교인들보다 먼저 교회엘 나왔다. 교회에 오는 날이며 먼저 청소를 하고 솔선수범하려고 애를 썼다. 

2005년 3월, 나는 빵가지와 함께 그의 고향인 펀잡지방과 히말라야를 여행했다. 일주일동안 나는 빵가지의 고향집에 머물며 그의 부모와 가족을 만났다. 그리고 그가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라고 성장했는지 생생하게 목격하게 되었다. 단순히 한 사람의 외국인근로자인줄 알았던 빵가지의 실체를 본 것이다. 단란한 가정에서 유복하게 자란 빵가지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는 건방지거나 교만하지 않다. 힘이 세다고 자랑하지도, 집이 부자라고 폼을 잡지도 않는다. 빵가지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친구이다. 그는 내 기분을 정확히 알아차리고 다른 사람이 근접하지 못할 때에도 빵가지만큼은 내 주변에서 나를 웃기곤 한다. 슬프고 지쳐 혼자 힘들어할 때에 빵가지는 어김없이 내 방문을 두들긴다. 

‘목사님...’하면서 내 앞에 무릎을 꿇고는 기도를 해 달란다. 전도를 잘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를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 날이면 이전의 모든 고통도 다 달아나고 그저 웃음만 나온다. 그렇게 나는 빵가지를 사랑하고 빵가지는 나를 사랑한다. 하나님은 내게 이렇게 특별한 영적 아들을 주신 것이다. 

빵가지가 신학공부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사실 빵가지는 공부에 대하여 그리 관심이 없었다. 원래 부잣집이었기 때문에 인도에서도 사립학교에 다녔으며, 빵가지 말로는 얼마나 공부를 안했던지 시험을 보는 날이면 부모님이 선생님에게 뇌물(?)을 주어 선생님이 대신 답안지를 쓸 정도였다니 말이다. 그는 어머니의 치맛바람으로 대학에 입학을 한 모양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빵가지에게 애니라는 예쁜 여동생이 있는데 그 아이는 얼마나 공부를 잘하는지 그 지역에서 소문난 천재였다. 어쨌든 공부에 취미가 없는 빵가지가 스스로 신학공부를 하겠다고 결심을 했으니 그것이 우연이겠는가? 
건국대학교 어학당에서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도 그 어간이었다. 신학공부를 하려면 한국말을 잘해야 한다니까 먼저 한국어를 공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물론 주변의 보이지 않는 압력도 작용을 했겠지만 그에겐 쉽지않은 결단이었다. 

장신대 학부과정에 입학원서를 내고 면접을 하던 날, 빵가지는 아주 자신있는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어눌한 한국말이지만 그는 자기가 굉장히 면접을 잘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웃기던지... 

내게 빵가지는 외국인근로자 선교의 마지막 목적이다. 외국인근로자 선교는 세계선교의 지렛대이며 모판이라고 주장하는 내게 빵가지는 좋은 사례이며 모범이다. 나는 그것을 확신하고 있다. 빵가지는 내 사역의 비젼이며 전부다. 나는 빵가지를 통하여 하나님이 내게 이 사역을 맡기신 이유와 목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빵가지가 신학을 마치고 다시 인도의 썬다싱과 같은 위대한 선교사로 파송받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과정을 통과하여야 한다. 이제 시작인 셈이다. 그러나 시작이 좋으면 끝도 좋을 것이다. 

우리에겐 빵가지와 같은 신학생이 벌써 4명이다. 이란과 몽골과 인도에서 온 나그네들이 순례자가 되어 결단하고 신학을 하고 있는 중이다. 외국인근로자가 신학생이 되어 그것도 무인가 신학교나 편법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그런 신학이 아니라 정식으로 모든 과정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위한 장학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학비를 대주고 적으나마 생활비라도 지원할 수 있는 후원자가 나왔으면 좋겠다. 

빵가지가 장신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어젯밤 꿈을 꾸었다. 너무나 행복한 꿈이었다. 인도를 향해 갔던 윌리엄 캐리 선교사와 썬다싱 그리고 빵가지와 내가 만난 꿈이었다. 나는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환상이며 비젼이다. 외국인근로자가 신학생이 되고 그가 다시 선교사가 되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행복한 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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