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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잣트와 함께하는 이슬람선교학교 3.버린 돌이 머릿돌 되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문화다


시편118:22-23

18:22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18:23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다시 한 번 버린 돌들을 생각한다. 버린 돌들을 가져다 하나님 나라의 머릿돌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우리 곁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버린 돌 같은 인생들이 있었다. 이주민 나그네라 부르고 이주 노동자 또는 불법체류자라고도 불리는 이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살았다. 길거리에 버려진 돌처럼 발끝으로 돌들을 차버리듯이 함부로 취급하였으며 사랑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 너무도 소외되고 아픈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이웃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너무도 사치스러운 것이었을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창조하셨음으로 그들도 하늘의 자녀였다.

 

내게는 장애를 가진 아들이 있다.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가 때로는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내게는 짐스럽다는 부담감이 더 크게 느껴지던 아들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우리 아이의 존재의미를 깨달았다. 마치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나게 한 것이다. 만약 그런 식으로 따지고 들자면 하나님에게 나는 과연 존재할 가치가 있는 자였을까? 나는 어느 것 하나 쓸모 있는 모습이 없다. 내 자신이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음으로 그 고백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사랑받는 자녀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쓰임받는 종으로 살고 있다. 그러므로 누가 한 인간의 존재의미를 판단하고 재단할 것인가?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사랑받는 원천적인 이유는 나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아름답고 위대한 창조물이라는 사실이 나의 존재가치이며 의미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통하여 창조되었음으로 나는 존재한다. 우리가 잘나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사랑받고 있음이 복음이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쓰임 받을 수 있는 조건이나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태초에 창조되던 그날 하나님은 나에 대한 섭리와 사용계획서를 내 운명 속에 숨겨놓고 나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내 삶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만 설명이 가능하다.

버린 돌이 모퉁이 머릿돌이 된다는 사실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조각가이며 예술가이신 하나님이 버려진 돌들을 불러 모으시고 그 돌들의 모양새대로 모퉁이 머릿돌로 사용하신다. 버려진 돌들도 예술가의 손을 통하면 작품이 된다. 유명한 예술가는 이미 그의 손길만 닿아도 수많은 버린 돌들이 가장 값비싼 예술작품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인간이 잘나서 머릿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창조자이시며 예술가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하여 인간의 존재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성령 하나님의 온전한 선택만이 우리를 가치 있는 머릿돌로 재창조 하시는 것이다. 나는 버려진 돌들을 모으는 재활용 인생 수집상이다. 세상에서 버려진 돌들을 모아 가장 값비싼 인생으로 둔갑시키는 기적의 삶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고물 수집상 목사다.

나는 오묘하고 비밀한 원칙들을 알고 있다. 창조주이시며 위대한 예술가이신 하나님께서 작품을 만드실 때는 반드시 버려진 돌들 속에서 그 재료를 선택하신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성서가 가르쳐 주는 피조물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다.

호잣트를 비롯하여 이란에서 온 나그네들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버린 돌들이 머릿돌 됨을 생각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호잣트는 주목받지 못했으리라. 그는 평범한 무슬림 청년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음으로 그는 여전히 한 이주민에 불과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사랑하시고 인간에 대하여 큰 계획을 갖고 계신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그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이다. 버려진 돌을 가져다 하나님 나라의 머릿돌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호잣트는 이슬람 선교의 리더로서 가장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다. 호잣트의 선교적 삶은 한국교회를 넘어 세계선교사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만난 이란인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임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그들도 머릿돌이 될 것이다. 호잣트처럼 말이다. 그들은 지금은 버려진 나그네의 삶을 살지만 분명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사람들임을 믿는다.

 

 

바로 이거야. 이슬람선교학교가 답이야

 

마태복음 6:33-34

33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6: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호잣트와 함께 하는 이슬람 선교학교를 하면서 바로 이것이 이슬람선교의 답이라는 확신이 든다. 선교의 확장성에 있어 이보다 더 실효성 있는 선교는 없다는 생각이다.

이란에서 찾아온 무슬림들의 간절한 바램이 선교적 접촉점이 되고 그런 의미에서 호잣트의 선교는 매우 특별하고 효과적이다. 이미 자신의 삶을 통하여 그들의 고난과 아픔을 선험적으로 체험한 호잣트이기에 그의 사역에는 어떤 가식이나 허구가 없다. 한국교회의 이슬람 사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진정성 있는 선교를 하고 있는 이가 호잣트 선교사다.

호잣트와 함께하는 이슬람 선교학교를 하면서 나는 이렇게 의미있는 선교학교를 허락해주신 주님께 감사했다. 선교학교가 진행되는 내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나의 눈은 진물이 날 정도였다. 이렇게나 많이 울어본 적이 또 언제 있었던가! 감격하고 또 감격하며 은혜의 단비를 맞는 시간들이었다.

 

탄식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과 이슬람선교학교

 

출애급기 2:23-25

2:23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2:24하나님이 그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2:25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탄식소리는 히브리어로 '사크'. 사크라는 말은 너무도 고통스러워 간절함과 애통함이 녹아있는 상태를 말한다. 인간에게 탄식은 삶이다.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은 애통하고 탄식하며 아픔을 느낀다는 것이다. 아프다는 것은 인간에게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이란인 성도들은 모두 아파하고 애통해 했다. 울고 또 울어도 그들의 아픔을 달랠 수 없었다. 자기 고향 본토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이 가라는 곳으로 떠난 이들의 삶은 그 자체로 아프다. 남편과 아들이 그리스로 넘어가다 붙잡혀 감옥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한 이란 여성은 밥을 먹다가 그대로 기절을 했다. 정신을 잃어버린 상태에서도 그녀는 아들과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었다. 라헬의 울음소리일까.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어버린 어머니 라헬의 슬픔이 저 정도였을까? 그녀와 같은 테이블에서 밥을 먹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함께 울어야 했다.

 

신영복 선생은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비를 맞는 사람에게 우산을 씌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고 걷는 것이라 했다. 성서에도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말씀이 있다. 예수님도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 고통을 받으셨으며 함께 우는 애통함의 공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나는 이번 이슬람 선교학교를 하면서 '예수라면 너무도 아파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였다. 예수님은 분명히 함께 울고 아파하셨을 것이다. 예수는 이웃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시고 함께 동참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을 알고 계시다. 그래서 우리의 탄식소리를 들으시고 오래전 약속을 기억하셨다. 구원 하시겠다는 약속을 기억하시고는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또한 우는 자들의 편이시며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 고통 받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죄인과 세리와 창녀와 사마리아 여인의 친구가 되시어 그들의 소외와 아픔을 당신의 아픔으로 받아주셨다. 나는 그런 예수님이 좋아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

 

우리 모두 애급에서 광야로 나와야 한다. 광야는 탄식소리를 들으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땅이다. 광야에 나오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울부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내주실 것이며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광야 같은 삶으로 인해 근심하지 말자. 걱정하지도 말자. 하나님이 우리의 편에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니 이제부터 하나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자. 그리하면 살리라.

 

오직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자. 그리하면 모든 것을 아시는 주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실 것이며 더하여 충만하게 하실 것이다.

그런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나그네로 살아야 하는 자들에게는 더욱 그런 믿음이 필요하다. 나는 그 은혜와 축복의 삶을 살아본 사람이다. 그러므로 걱정하지 않는다. 이슬람 선교학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이다. 이번에 느끼고 확신한 것은 분명 이 사역 안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사실이다. 계속해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이슬람 선교학교를 해야 할 것 같다.

하나님이 나그네들의 탄식소리를 들으시고 내게 말씀하셨으니 그것은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뜻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선교를 믿는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 스스로 선교를 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선교다.

 

내년에도 오리라 마음먹는다. 나는 계속 이곳에 올 것이다. 누구와 함께 오게 될지 아직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할 이들을 보내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염력하지 않는다. 그저 행복하고 감사하면 될 것이니 빌립보서에 바울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빌립보서 4:6-7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4: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염려가 아니라 감사가 나오는 내 기도는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었다. 나그네들과 다시 만나고 싶다. 그때에도 나그네들과 함께 울 것이다. 그들이 울면 나도 울고 나와 함께 하나님도 우시고 하나님께서 그들 편에서 위로해 주실 것이니 맘껏 울 것이다. 울면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소망할 것이다. 그것만이 우리가 할 일이다. 탄식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나그네들과 함께 기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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