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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몽골15 울란바토르시장이 학교에 오던 날

마태복음 13:31-32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마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2015년 5월 2일에 울란바토르 시장이 몽골학교를 방문하였다. 이전의 울란바토르 시장들과는 몽골을 오고가면서 친분을 쌓았으며 몇 사람과는 아주 친밀하게 지내기도 했었다. 내가 가장 친하게 지낸 사람은 엥흐볼트 시장이며 그 다음이 빌릭트 시장이다. 이 두 사람은 구공산당계열의 인민혁명당 출신 시장들이다. 엥흐볼트는 나중에 국무총리가 되어 우리 일행을 영빈관으로 초청한 사람이었으며, 빌릭트 시장은 엥흐바야르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사람이다.
그 후로 정권이 바뀌고 지금의 시장과는 전혀 교류가 없었기에 그가 서울시를 공식 방문하면서 우리학교를 찾아오겠다는 연락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통상적으로 울란바토르 시장 방문 시에는 우리와 사전 협의를 하고 우리의 입장도 고려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일방적인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현 울란바토르 시장은 몽골 대통령과 더불어 기독교 선교에 대하여 대단히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학교 운영에 대하여 다른 소리를 할 수 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알아본 바로 울란바토르 시장에 대한 정보는 몇 가지다. 먼저 그는 몽골 민주화의 영웅이다. 몽골의 민주화 운동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 사람이라는 소문을 들었고 그로 인하여 그는 몽골인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으며 차기 대통령 후보 중 한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반기독교주의자이며 민족주의자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로 인하여 현 울란바토르 시장에 대한 현지 한국인 선교사들의 여론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그런 울란바토르 시장이 우리학교를 방문한다니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우리는 기독교 학교다. 매주일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가르친다. 뿐만아니라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모든 학생들은 신앙수련회에 참석하여야 한다.
그런 우리학교에 반기독교 지도자가 찾아온다? 이건 위기의식을 느끼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만약 그가 우리의 기독교 교육에 대하여 반대하거나 혹은 다른 경로를 통하여 압력을 가한다면 매우 난처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울란바토르 시장은 우리와는 이상하게도 인연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우리가 가장 먼저 몽골로 역파송한 현지인 교회 보르마 목사의 사돈이다. 그러니까 보르마 목사의 아들과 울란바토르 시장의 딸이 결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르마 목사는 자신이 그와 사돈이라는 사실을 숨기려 한다. 왜냐하면 울란바토르 시장이 워낙 강경한 반기독교주의자였기 때문이다. 보르마 목사마저 자신의 사돈을 그렇게 생각하는 마당에 그가 우리 몽골학교를 찾아온다니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울란바토르 시장이 우리 학교를 방문하기 직전에 울란바토르 대학의 총장님이 학생들과 우리 학교를 먼저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 내가 울란바토르 시장이 곧 우리 학교를 방문한다고 하니 총장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는 굉장히 기독교를 싫어하고 기독교 선교를 훼방하는 사람임으로 조심하라 한다. 뿐만아니라 이번 기회에 울란바토르 시장을 오히려 길들여 보라고도 조언한다. 울란바토르 대학은 한국인 선교사들이 세운 몽골의 대표적인 대학이다.
그런데 지금의 울란바토르 시장이 되고 나서는 왜 ‘울란바토르’ 라는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느냐며 대학 이름을 바꾸라고 했다 한다. 그래서 ‘국제 울란바토르 대학’으로 개명을 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악명 높은 반선교적인 사람으로 유명했다.

몽골에서 정부의 주요한 인사들은 기독교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거나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내가 몽골 문화원을 처음 시작하고 만난 사람들 중 몽골의 종교정책을 수립하고 총괄하는 사람이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의 이 몽골 인사는 굉장히 노련한 정치인이었다. 한번은 내가 그 사람과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에 그가 내게 한국의 기독교가 왜 이리 공격적이냐며 불만 섞인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매년 몽골로 들어가는 한국의 단기 선교팀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름이 시작되고 서울에서 울란바토르로 가는 비행기를 타면 여기저기서 '목사님, 장로님, 형제님, 자매님...' 하면서 기내가 온통 단기선교를 떠나는 한국교회의 성도들로 가득하다. 비행기 좌석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한국교회의 단기 선교팀이 몽골로 들어가는데 그들은 몽골에 들어서자마자 거리 곳곳에 흩어져 선교활동을 한다. 거리에서 기타를 치며 찬양을 부르거나 사람들에게 사영리를 펴고 전도를 한다. 한쪽에서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성경학교를 한다며 온통 난리법석을 떤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런 모습을 바라본 그 몽골인사는 한국교회의 그런 공격적인 선교활동에 대하여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며 자신은 어떻게 하든지 선교 활동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려고 준비 중이라고 귀띔해 준적이 있었다. 그는 내게 매우 친절했으며 농담처럼 '당신에게는 선교활동을 보장해 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몽골의 정치인들은 한국교회의 무차별적인 선교활동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이다. 그들은 한국교회의 선교활동이 자신들의 사회를 부정하고 때로는 근간을 흔들 만큼 공격적이라며 한국교회의 선교에 대하여 크게 우려하고 있었다. 선교를 하려면 선교지의 상황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선교라는 이름으로 선교지의 문화와 사회질서를 부정하거나 파괴 하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그런 선교는 서구 교회가 오래전 행했던 제국주의적 선교다. 우리가 전하는 기독교만 옳고 피선교지의 문화와 종교는 저급하고 미개하다는 교만은 결코 온전한 선교를 할 수 없게 한다. 제국주의적 선교가 얼마나 많은 오류를 범했는지 선교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지금처럼 전쟁하듯이 여기저기 폭탄 던지는 선교는 지양하여야 한다. 선교에도 지혜와 전략이 필요하다.
 
드디어 울란바토르 시장이 방문하기로 한 날이 되었다. 20여명의 수행원과 함께 우리학교로 들어오는 울란바토르 시장에게 인사를 했다. 반갑다고 악수를 청하고 강당 안으로 그를 안내했다. 강당 안에는 우리학교 학생들이 모여 시장을 박수로 환영하고 꽃다발을 증정하였다. 그를 맨 앞자리로 안내한 후 모두가 자리에 앉고 드디어 환영사를 할 시간이 되었다. 환영의 말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 순간 기도를 했다. 무엇이라 환영사를 할 것인가 주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였다.

"바트울 시장님, 나는 지금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시다시피 당신들의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지금까지 운영해 오면서 너무 힘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눈에 병이 생겼습니다. 지금 나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하여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여전히 당신의 아이들을 위하여 몽골학교를 세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몽골을 사랑하고 몽골의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는 바트울 시장님 또한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어떻습니까? 나하고 친구가 되어볼 생각은 없습니까?"

그렇게 환영사를 하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이제는 울란바토르 시장의 답사 차례다. 단상으로 올라간 울란바토르 시장을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있었다. 썩 나쁜 기운은 아닌 듯 했다.

"나는 당신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사랑하니 참 감사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나에게 말해 주십시오. 나는 당신을 돕고 싶습니다."

기독교를 몹시도 싫어하고 선교를 혐오한다는 그 울란바토르 시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에도 공손함을 넘어 놀라움 자체였다. 혹시 이 사람이 우리의 선교사역과 몽골학교의 기독교 이념을 문제 삼지 않을까 걱정하던 나의 마음은 눈 녹듯 가벼워졌다. 선교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선교를 해야 한다. 사람을 무시하고 겁을 주며 전쟁하듯 하는 선교는 선교가 아니다. 선교는 겸손히 사랑이 충만한 가운데 열매를 맺는다.    
그날 그렇게 몇 마디 주고받은 이야기는 지금도 내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반기독교 인사라고 불안해하던 나에게 오히려 울란바토르 시장은 존경한다고, 감사하다고, 도울 것이 있다면 돕고 싶다고 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날 나는 울란바토르 시장에게 울란바토르에서 '한국 속 몽골인 이야기'라는 사진전을 하고 싶다고 했다. 울란바토르에서 사진전을 열 수 있도록 전시장을 빌려줄 것과 홍보도 함께 부탁한다고 했다. 행사는 8월 중순에 하는 것으로 하였고, 그 해 8월에 울란바토르시의 도움을 받아 울란바토르시가 제공한 전시장에서 사진전을 가졌다.
 
열왕기상 18:41-46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 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번까지 다시 가라.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상상하며 살아가는가?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을 보고 비가 올 것을 예감하던 선지자가 있었다. 나는 이 성경 구절을 무척 좋아한다.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은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미래다. 작은 구름 한 조각만으로도 비가 올 것을 상상하였던 선지자의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나는 지금 그 작은 구름 조각을 마음으로 그려본다. 그리고 곧 폭포수 같은 은총의 단비가 몽골을 향하여 내리는 꿈을 꾼다. 그 단비는 우리의 미래다. 나와 우리 공동체가 또한 그 단비를 맞으며 복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8월 중순의 어느 날, 사진전이 열리는 울란바토르시의 전시장에는 많은 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몽한국대사를 비롯하여 많은 내빈과 축하객이 모였다. 여기저기서 재한몽골학교 출신 아이들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내 귀에는 분명 반가운 만남들이다. 보고 싶은 이들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현장이다. 사진전에 전시된 사진의 대부분은 우리학교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담은 것들이다. 울란바토르시 전시가 끝나면 사진을 국제울란바토르대학으로 옮겨 한 번 더 사진전을 하고, 주몽한국대사관이 새로 지어지면 그곳에서도 사진전을 열기로 하였다.
나는 가만히 앉아 사람들의 소리만으로 분위기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나의 손을 붙잡더니 '목사님!'하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누구냐 물으니 우리학교 출신 누구누구란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참 반가웠다. 의례적으로 안부를 묻는다.

"그래,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니?"
"저는 이번에 몽골 재무부의 사무관이 되었어요."

깜짝 놀랐다. 우리학교 출신 아이가 벌써 몽골 재무부의 사무관이 되었다니! 20대 중반의 청년이 된 그 아이의 목소리는 당당하고 자신감이 느껴졌다. 사무관이라면 우리로 말하면 행정고시를 합격한 것이다. 공무원으로 출세가 보장된 것이다. 
벌써 우리학교 출신들이 몽골 사회의 중요한 존재들로 부각되기 시작하고 있구나 생각하니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 그 아이 말고도 많은 아이들은 울란바토르시의 유수한 대학과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으며, 몇몇은 벌써 비즈니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공부를 하고 공무원이 되고 돈을 벌기 시작한 아이들까지, 몽골학교 출신들의 미래가 밝아 보이니 기분이 좋다.
앞으로 20년 후면 이 아이들이 몽골의 지도자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때에는 몽골의 대통령을 비롯하여 기업가, 학자, 변호사, 의사, 시민사회운동가, 목회자 등 줄줄이 우리학교 출신들이 몽골을 주도할 것임을 확신한다.
학교를 새로 짓느라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그런 상상을 하면서 나는 그냥 웃기만 한다. 내가 왜 웃는지, 왜 그렇게 행복해하는지 사람들은 모를 거다. 내 속을 누가 다 알 것인가? 내 비전과 꿈을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내 마음 속에서 그려지는 미래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나만의 비밀스러운 미래를 그리고 있다.
오래전에 우리학교의 어츠키라는 아이가 장차 몽골의 대통령이 되어 나를 대통령궁에 초대해서 좋은 것으로 대접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 아이가 아직도 그 꿈을 가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자랑삼아 여기저기 이야기하곤 한다.
나하고 잘 지내면 미래의 몽골 지도자들이 될 우리 아이들을 소개해 주겠노라 농담 아닌 농담을 하며 그때가 오면 누구든 나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 얘기하곤 했었다. 우리 아이들은 나를 사랑한다. 분명히 나를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장차 우리 아이들이 한국과 몽골을 이어주는 소중한 다리가 될 것이다. 나는 몽골정부의 자문관이 되어 그 아이들을 도울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하며 웃는다. 이런 생각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다.
  
몽골의 대통령이 왜 한국교회 선교를 훼방하는가? 왜 울란바토르 시장이 반기독교주의자인가? 사람이 중요하다. 사람을 키워야 한다.
선교는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고 지도자를 만드는 것이다. 건물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선교란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교육시키고 키우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나의 선교관은 이렇게 정립되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람이고, 사람은 교육을 통하여 변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확실한 선교전략은 학교를 세워 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몽골학교 아이들이 장차 몽골의 대통령이 되고 울란바타르 시장이 되는 날, 그 아이들이 몽골선교를 훼방하겠는가? 반기독교주의자가 되겠는가? 아니다! 나는 분명히 확신한다. 우리 아이들은 몽골의 선교와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이다.
 
예수께서 천국을 겨자씨에 비유하신 말씀이 있다. 작은 겨자씨가 땅에 떨어져 싹이 나면 어느 날 겨자나무가 된다. 겨자나무는 크게 자란다. 그래서 그 겨자나무에는 수많은 새들이 날아와 깃들이고 나그네들이 쉼을 얻는다. 겨자나무가 되는 날 겨자씨의 존재는 확인된다. 그러므로 겨자씨에서 겨자나무를 상상하여야 한다. 그것이 믿음이며 기독교인의 삶이다. 천국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겨자씨에서 겨자나무로 변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이루어지는 섭리다. 처음부터 겨자나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처음은 작다. 시작은 미미하고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존재감이 없다. 어디에 몽골학교가 있는지조차 사람들은 모른다. 어떻게 몽골학교가 생겼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래도 씨앗은 땅에 떨어졌다. 겨자씨처럼 작은 학교지만 분명히 이 땅에 떨어져 싹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보았고 확인했다. 이미 몽골 땅에서 자라고 있는 거대한 겨자나무의 작은 싹들을 본 거다. 그래서 나는 희망의 삶을 살아간다. 
겨자씨 같은 몽골학교와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겨자나무를 상상한다. 지금은 몽골학교도 나도 보잘것없다. 그렇게 나는 소외와 차별의 끝없는 터널을 걸어왔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존재감 없는 삶을 살았다. 모두가 큰 교회를 지향할 때에도 나는 이 자리를 지켰다. 나도 나 자신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몰랐지만 그럼에도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옳다 생각했음으로 고집스럽게 나의 삶을 살았다. 상상할 수 없이 큰 겨자나무의 꿈을 꾸며 살았다. 이제 그 꿈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를 살리는 생명의 나무가 지금도 자라고 있다. 몽골을 넘어 세계선교의 전환점을 만들어줄 꿈의 나무다. 우리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준비하는 몽골이라는 겨자나무에 대한 것이다. 곧 그날이 온다. 통일을 위한 몽골의 날이다. 몽골이 그날의 징검다리이며 지렛대가 될 것이다. 그 한 가운데 작은 몽골학교가 있다. 몽골학교는 세계선교와 한반도 통일의 못자리가 될 것이다. 나는 그 겨자나무의 꿈을 꾸며 하루를 산다. 하루하루를 보태어 내일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하여 오늘을 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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