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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경제27 더 이상 앵벌이는 없다

사도행전 3 : 1- 10

 

앵벌이 목회가 싫다

오랫동안 나섬의 사역을 하면서 나는 앵벌이에 지쳤다. 앵벌이라고 하면 너무 속된 언어라 거부반응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사실이니 그리 특이하게 반응할 것도 없다. 이미 내가 스스로 앵벌이라고 했으니 그동안의 사역이 앵벌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앵벌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 보면 '불량배의 사주를 받아 어린아이가 구걸이나 도둑질 따위로 돈벌이를 하는 짓'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물론 우리가 하는 사역이 앵벌이로 하는 짓이라고 하면 지나친 감도 없지는 않겠지만 구걸을 하여 사역을 하여야 한다는 측면에서 거지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섬의 사역 26년이 흘러가는 동안 나는 수없이 경제적인 문제로 자존심을 상하였다. 그뿐아니라 스스로 자괴감과 스트레스로 괴로운 나날을 보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장 이 짓을 그만두고 싶어 속앓이를 해야 했고 때로는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는지 너무도 힘들어 홀로 울고 방황하며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하여 애매한 아내에게 분을 풀기도 했다. 내 마음의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한국교회에서 특수목회란 대부분 이와 비슷하다. 현실적으로 여기저기서 선교비라는 명목으로 후원을 받아야 생존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특수목회에는 가려하지 않는 것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누가 후원을 받아야 생존이 가능한 일을 하려 하겠는가?

뿐만아니라 앞으로 한국교회의 형편이 지금보다 나아질 가능성이 없음으로 우리와 같은 특수목회의 분야는 더욱 힘들 것이 분명하다. 가만히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도태되어 사라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스스로 살아남아 쓰임 받을 수 있는 존재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할 수 있는 만큼 하다가 문을 닫고 무너질 것인가를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성문 앞 걸인으로 살아가기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해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던 걸인이 있었다. 그는 누군가의 도움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무능한 존재다. 그 무능함이란 사회적 판단이며 걸인은 스스로 자기 운명처럼 여겼다. 오직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은 객관적이며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일이다. 당연히 그는 걸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인정하지 않아도 그에게는 그것이 통용되어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걸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해진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베드로와 요한이 성문 앞에서 그 걸인을 만나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어라'라고 말하자 그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걸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걸인으로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아니 걸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오히려 이상하고 잘못된 것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걸인이 자유인으로 변화된 것이다. 더 이상 걸인이 아닌 보통의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얻은 것이다.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되었음으로 그는 자립할 수 있다. 노동할 수 있고 자립의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얻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걸인처럼 자기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고 걸인처럼 살아가려고 한다. 자립할 수 없으니 후원을 해달라는 식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얼마나 구차스러운 인생인가? 자립할 수 있도록 힘을 달라 해야 함에도 우리는 자립을 거절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이것이 타성이며 매너리즘이다.

 

 

나섬의 목표는 자립경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반드시 이루어야 할 꿈이 있다. 그 꿈이란 나섬과 몽골학교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한 경제적 자립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적어도 나섬의 모든 사역 즉 나그네를 섬기는 사역은 물론이고 역파송과 그 이후의 사명까지 감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적 자립 자생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몽골학교를 비롯한 나섬의 모든 교육 선교 프로그램을 감당할 수 있는 재정적 자립 시스템을 만들어 법인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 목적을 위하여 다양한 사업을 해왔고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쓰러졌다. 사회적 기업에서부터 양평의 다문화 생태마을의 조성 등 정말 끝없이 도전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실패한 경험밖에는 없다. 정말 돌아보면 모든 도전이 실패했다. 한마디로 망한 것 밖에는 남은 것이 없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으니 그것이 아직 남은 밑천이다. 실패를 했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망했지만 나는 다시 일어났고 앞으로 또 망해도 다시 도전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앵벌이 목회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고 싶지 않아서다. 자립하고 자생할 수 있는 나섬과 몽골학교의 영역을 만들고 싶어서다. 앞으로의 특수 목회도 얼마든지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내 존재의미일 수도 있다는 확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원은 구제가 아니다.

구원의 기독교는 사회복지를 하는 것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필요한 것을 나누어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교회의 선교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목적은 아니다. , 구제와 선교는 다른 것이다. 필요한 것을 나누어주는 사역은 복지일 수 있지만 그것이 선교이거나 교회가 하려는 사역의 마지막 종착점은 아니다. 선교와 구제는 다른 영역이며 겹칠 수 있지만 동일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복지를 하는 기관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을 가르치고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이 더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공동체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만 그 돈이 복음의 능력을 앞서는 것은 아니다.

 

나섬과 몽골학교의 사역은 돈으로 하는 사역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으로 하는 사역들이다. 돈과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에서 우리는 언제나 모순과 딜레마의 늪에 빠지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돈보다 예수가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할 사명이 있다. 돈에 끌려가는 선교가 아니라 돈보다 예수가 더 힘이 세다는 사실을 삶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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