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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몽골5 바가반디 대통령과의 만남 그리고 문화원의 설립(2)

몽골과 우리가 다른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론 아주 비슷한 점도 있기는 하다. 비슷한 점이란 몽골 반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약 90%가 몸에 몽골반점이 있다. 우리의 몸 안에 몽골의 유전자가 있는 것이다. 그 외에 나는 몽골과 우리의 비슷한 점을 찾아낼 수 없었다. 물론 인간에게는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몽골과 우리는 겉으로 보면 분명 몽골로이드의 형상을 갖고 있지만 800여년이 지난 후 현대사에서의 만남은 결코 비슷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확연히 다른 점은 쉽게 발견 되었다. 그들은 사회주의 경험을 했으며 문화적으로는 유목문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우리는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와 농업문화 전통을 갖고 있지 않은가?

몽골은 1992년 사회주의를 포기할 때까지 71년 동안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살았다. 뿐만아니라 전통적인 유목국가이다. 사회주의의 경험과 유목민의 전통은 몽골인에게 있어 결코 가볍게 취급될 수 없는 경험이다. 그것은 하루 이틀 사이에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습관과 문화를 통해 삶을 영위한다.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와 자본주의의 경험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뿐만아니라 농업이라는 사회구조는 우리의 사고를 결정한다.

몽골과 우리는 그토록 다르다. 그들에게 사회주의는 결코 '감사'라는 개념을 갖지 못하게 하는 원천이다. 사회주의는 모든 것을 국가가 통제하고 보장하는 체제이기에 인간에게 필요한 욕구와 사회보장은 당연한 것이다. 그들은 오랜 사회주의를 통해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초기의 몽골 사역에서 나는 깜짝 놀라는 경험을 수도 없이 하였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 당시에는 무언가를 나누고 베풀어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를 듣는 것이 그렇게나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무료로 밥을 주어도 당연히 여겼고, 병원에서 치료를 해주어도 마치 채권자가 채무자에게서 빌린 돈 찾아가듯 당연하게 생각했다. 어느 순간 등을 돌리고 사라지는 것이 그들의 문화였다. 그것이 유목문화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농업문화는 소위 '두레''대동'의 정신을 갖게 한다. 싫어도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한다고 어릴 적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배우며 자랐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이므로 사이좋게 지내야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유목주의는 다르다. 언제 다시 만날 지를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당장의 이해관계가 더 중요하다. 그들은 함께 힘을 모은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공동체적 경험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개인주의, 나아가 이기주의적인 문화에 젖어 있었다. 그것은 내가 그들을 폄훼하여 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이 문화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그들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몽골인들에 대한 나의 편견일 수 있다. 그러나 초기 몽골 사역 때에는 그런 차이와 다름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많은 시행착오와 실망감을 느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사실이 내가 몽골문화원에 대하여 기본적인 관심을 갖게 된 요인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몽골과 우리의 역사를 대비하고 문화적 차이를 열거하는 것이 조금은 불필요할 수도 있다. 다만 그들과 우리가 얼마나 다른가하는 문제는 우리가 그들을 품고 사랑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몽골과 다방면에서 관계를 맺어야 하는 21세기에 몽골을 알지 못하면 그만큼의 손해를 보게 된다는 생각도 그 이유가 되었다. 우리는 사실 몽골을 잘 모른다. 그 나라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잘 몰랐다. 그 나라의 역사는 더욱 더 모른다. 오히려 우리는 중국적 사관에서 유목민에 대해 왜곡된 편견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중국 사람들은 원나라에 의한 피지배의 역사에 대하여 엄청난 자존심의 상처를 갖고 있다. 중국은 한족 자신들과 중화의 힘이 원시 야만인들에게 어찌 그리도 무력하게 붕괴되었는지 원통해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중국은 몽골인들을 오랑캐 혹은 야만인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칭기즈칸 역시 약탈자 또는 살인마 등 매우 부정적인 개념으로 덧입혀져 있다. 우리는 학창시절 역사 시간에 몽골인들은 오랑캐이고 야만인이며 약탈자이고 살인마라고 배워야 했다. 그것이 역사의 힘이다. 역사를 누가 어디서 어떤 의도로 썼는가에 따라 인간은 그렇게 색깔이 칠해지는 것이다. 나중에 나는 스스로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몽골인들은 유목민이고 그들은 그 유목의 문화 속에서 살았던 죄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유목문화와 우리의 농업문화는 서로 다른 것일 뿐 틀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21세기는 새로운 유목민의 시대라 부르지 않는가? 디지털 노마드니 문화 유목민이니 하는 단어가 새삼스럽지 않은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이제 오히려 칭기즈칸의 리더십과 경영 마인드를 배우자는 주장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공간이 아니라 속도와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하지 않는가? 후기 지식 정보화 사회의 원조는 칭기즈칸이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세계화와 다문화의 시대를 가장 빠르게 연 사람이 몽골의 칭기즈칸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중국 중심의 역사관은 이제 더 이상 역사를 왜곡할 수 없다. 다양한 역사관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속았다는 말을 하여야 한다. 몽골 민족은 더 이상 야만인이거나 약탈의 민족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초원의 유목민으로 살았을 뿐이다.

문화적 차이를 알면 그 민족과 국가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문화를 모르는 선교는 불가능하다. 외교도 비즈니스도 성공할 수 없다. 몽골문화원은 그런 문화적 차이와 이해를 돕기 위하여 준비된 것이다. 나는 몽골 정부로부터 몽골문화원 설립에 대한 양해각서를 이미 받아 놓았고 조금씩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에 몽골의 바가반디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것이다. 당시 광진구청장이던 정영섭 장로님에게는 이미 몽골문화원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전하였으며, 서울시의원이 된 유승주 의원에게도 부탁을 해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2000년 어느 날인가 나중에 듣게 된 사실이지만 정 구청장께서도 당시 서울시장인 고건 시장께 우리의 몽골문화원에 대한 뜻을 전해 주셨다고 한다. 그런 여러 가지 상황이 맞추어져 소중한 열매를 맺게 된 것이 20016월의 몽골문화원(공식명칭은 ()몽골울란바토르문화진흥원)의 개원이다. 바가반디 대통령의 방한과 몽골문화원의 설립계획은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진 것이다.

몽골문화원 설립을 위해 서울시는 재정을 부담하고 우리는 건물을 임대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는 몽골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와 물품을 기증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고건 서울시장과 엥흐볼트 울란바토르 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뜻 깊은 몽골문화원 개원식을 열게 되었다. 몽골문화원의 설립은 몽골과 한국의 역사와 선교를 새롭게 써내려가는 의미있는 전환점이 되었다.

 

시편 126:5-6

126:5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126:6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나그네 선교를 하다가 갑자기 웬 문화원인가? 문화원이라는 것은 본디 한 나라가 자국의 문화를 소개하고 알리기 위해 외국에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몽골문화원이라는 것은 몽골국가가 몽골을 위하여 몽골의 문화와 정보를 우리에게 알리고 선양하기 위하여 그들이 만드는 것이 맞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 외국 문화원이라는 것은 미국, 영국, 독일, 일본, 프랑스, 이스라엘 등 선진국이 자국의 문화원을 세운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문화라 할 것도 거의 없을 것 같은 몽골문화원이라니 정말 생뚱맞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달랐다. 몽골은 세계를 지배하던 민족이다. 1206년 몽골제국을 세우고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한 사람은 역사상 칭기즈칸이 유일하다. 칭기즈칸을 대적할 수 있는 인물은 이제껏 없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아무리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위대하다 해도, 중국의 진나라 시황제와 한나라의 무제가 중국을 하나로 통일 시켰다 해도, 로마가 지중해를 중심으로 전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을 만들었다고 해도 칭기즈칸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못한다. 21세기의 경찰국가라는 미국이 아무리 강대국이라 해도 몽골의 세계제국과는 상대가 되지 못한다.

몽골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을 만든 나라다. 그 민족이 얼마나 대단한 역사를 만든 나라였던가? 나는 그런 몽골을 품은 사람이다. 나에게 몽골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 몽골을 소개하고 알리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몽골이라는 나라를 너무 모른다. 과거 중국이 몽골을 몽고라며 마치 '우매하고 어리석은 나라'로 매도하고 왜곡한 역사교육이 전부였으니 우리가 어떻게 몽골을 알 수 있었을까?

유목국가이며 우리와 다른 사회주의 역사를 가진 몽골은 내가 알고 싶은 나라가 되어 있었다. 몽골이 궁금했다. 유목의 문화와 71년 동안의 사회주의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이 내가 몽골문화원을 설립하고 싶은 이유였다.

그러나 한 국가의 문화원을 설립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다. 나도 모르는 몽골을 어디에 소개하고 알려야 하는가? 왜 몽골인가라고 물으면 할 말도 없을 것 같았다. 몽골이 어떤 나라인가 물으면 나도 모른다고 답해야 했다. 몽골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르면서 나는 몽골문화원을 세운 것이다.

몽골문화원은 이주민 선교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기관이다. 그것은 몽골이라는 나라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 결정적인 사역이다. 뿐만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 통일과 평화 선교라는 소중한 시대정신과 가치를 담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체로 성장하고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어쩌면 몽골학교와 함께 몽골문화원이 있었기 때문에 몽골을 더욱 가까이 만날 수 있었으며 많은 몽골인들을 친구로 사귈 수 있었다.

선교는 시대에 따라 환경과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형하고 바뀌면서 더 큰 시너지가 일어남을 알게 되었다. 과거의 틀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하고 만들면 그것이 선교가 된다. 과거에 얽매는 선교에서 미래의 새로운 선교 모델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과거를 고집하고 지키는 것보다 발전적으로 사역의 방향과 내용을 바꿀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나는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변화는 필수다. 바꿀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선교를 할 수 있다. 영구불변의 진리는 없다. 시대가 요청하면 문화원도 만들고 문화원을 통하여 믿지 않는 몽골인들에게 사랑의 가치를 보여줄 수도 있다. 예수라면 얼마나 열린 선교를 하셨을 지 생각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몽골문화원은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고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의미를 가져달 줄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평화선교센터를 몽골에 세우는 과정에서 몽골문화원은 현지의 지부 역할을 하면서 선교사의 비자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 있다. 나아가 한국과 몽골을 하나로 묶어주는 매우 중요한 다리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 당시에 우리가 몽골문화원을 세운다는 것은 정말 황당한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이주자 선교와 문화원이라는 개념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질적인 사역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교와 문화는 떨어질 수 없는 이웃이다. 문화를 알아야 선교가 되고 선교를 하려면 그들의 문화를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몽골문화원이 우리에게 있음으로 몽골에서 평화 선교 사역이 가능해 진다. 통일과 평화라는 거대담론을 품고 몽골에서 시작하는 사역은 몽골문화원이 있음으로 설득력이 더 할 수 있다. 몽골을 설득하는 창구가 바로 문화원이다. 문화원은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는 큰 그릇이다. 몽골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지도자와 접촉하고 몽골에서 합법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 모든 채널은 바로 몽골문화원이 오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먼저 그 사역을 하도록 우리에게 지혜와 열정을 주셨음으로 우리는 알지 못했지만 문화원을 만들었다. 많이도 다투고 힘은 들었지만 그것이 이토록 소중하게 쓰임 받을 줄은 정말 상상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뜻은 나중에 알게 된다. 뜻을 알고 시작한 사람은 없다. 무언가를 시작하고 나서 후에 바라보니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고백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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