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취급방침
오시는길

TEL : 02-446-4195
FAX : 02-458-2982

서울시 광진구 광장로 1
(광장동 401-17)
나섬교회

COPYRIGHT© 2016
NASOMCHURCH
ALL RIGHTS RESERVED.



노마드톡

> 유해근목사 > 노마드톡
bible
   
노마드톡191 우리는 왜 침묵하는가?

침묵의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 말할 것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말하는 순간 자신에게 불리해지는 어떤 경우를 고려해서인가? 아니면 차라리 이 상황에 대하여 동의하고 있기 때문인가? 말할 때 말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라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말해야할 때 말해야 사람이다. 명성교회 세습논란이 서너 달 째 접어들고 있지만 교계언론은 물론이고 교단의 지도자들과 임원들의 입장이 없다. 단지 그 밖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작은 소리를 낼 뿐 여전히 논란의 주체들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감히 누가 우리를!' 이라는 생각으로 버티기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버티면 무조건 이긴다는 판단일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들은 인간의 이기심과 비겁함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의 세습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가 그들의 편이라는 생각은 대단한 착각이다. 세습이 옳은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교단법에 저촉된다는 사실만이라도 공개적으로 말해야 한다. 그 세습논란에 대하여 책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적어도 교단과 총회에서 어느 정도의 자리에 올라있는 사람이라면 침묵하는 것은 비겁함을 넘어 직무유기다. 교단신문은 물론이고 교계의 언론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지금 세습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혹시 앞장서다가 가장 먼저 보복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일 게다. 나아가 부스러기라도 얻어먹고 살아온 거지근성과 노예근성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천박함 때문이라고 말하면 너무 심한 것일까? 아니면 교단을 경영하고 언론사를 운영함에 있어 그 대형교회의 지원이 절대적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정치적으로 그들 편에 서는 것이 적어도 밥 먹고 사는 일에 지장 받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이고 이기적이며 너무도 비겁한 판단이 작동해서일지도 모른다. 지금 세습을 준비하는 교회에서 이 세습 논란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싶어 조용히 웃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도 근거 없는 소문은 아닌 것 같다.

침묵의 이유는 한마디로 자신에게는 이 세습논란에 가담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임이 확실한 것 같다. 그리고 그 판단의 근저에는 돈의 문제와 정치적 권력의 힘이 고려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가 예수를 따르는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은 인간의 탐욕과 진리 사이에서 저항하시다 죽임을 당하신 분이다. 예수께서는 끊임없이 욕망하는 인간의 탐심을 보시며 얼마나 탄식하셨던가? 예루살렘 교회의 바리새인들과 성전을 독점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제사장들의 종교권력에 대하여 저항하심으로 로마에 고소를 당하신 것이 십자가 사건의 결정적 이유다. 예루살렘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시던 예수께서 오늘의 한국교회를 바라보시며 흘리시는 그 절망의 눈물을 보아야 한다. 돈이면 모든 것이 무죄라는 생각만으로 세리의 길을 걸었던 삭개오에게 예수님은 돌아설 것을 요청하셨다. 구원을 위한 조건이 율법이나 돈에 있지 않으며 오직 나눔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신 분이 예수시다.

기득권에 저항하고 종교권력에 대하여 책망하신 예수께서 세습 논란 속에 침묵하는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을 보시며 무슨 말씀을 하실까? 그 알량한 논리로 세습을 강행하던 자들과 그들이 가진 돈과 힘에 의하여 침묵하고 혹은 적극적으로 부역하는 자들을 바라보시면서 무슨 말씀을 하실까? 지금 여기서 침묵은 정도(正道)가 아니라 죄다. 그것은 세습을 묵시적으로 동의하는 것과 같은 중대한 죄다.

한국교회의 세습에 대하여 오랫동안 논란이 있어 왔지만, 지금의 세습 문제와 논란은 교회사적 사건이다. 우리 교단에 세습방지법이 만들어지고 나서 세습은 더 이상 한국교회에서 용납될 수 없다는 총회의 법을 한 대형교회가 그들의 돈과 힘으로 무시하고 그 힘에 모두가 굴종한 작금의 사태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 역사는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하나님나라의 원칙과도 결코 맞지 않는 이단적이며 우상숭배의 전형임을 역사는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왜 침묵하는가를 솔직하게 고민하자. 역사의 수레바퀴는 결코 오늘의 침묵을 용서하지

않는다. 역사를 두려워하는 의식과 철학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어떤 권력도 영원할 수 없다.

정치권력은 물론이고 종교권력도 마찬가지이다. 돈의 힘을 너무 맹신하지 말자. 훅하면 날아

간다. 우리는 지금 그 역사를 보고 있지 않은가? 세상이 변하고 있다.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인지를 두려워하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길이다. 하나님을 역사의 주관자라 고백하는 이유가 거

에 있다.

 

 



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