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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는 없다 2. 모세처럼 아직 끝나지 않았다(2)

목사님, 그런 이야기 하지 마세요. 나는 눈이 안보여 성공한 사람입니다

나는 지금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인이다. 그 많은 장애 중 눈이 안보이는 장애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참으로 힘들고 견디기 어려울 때가 많다. 수도 없이 부딪히고 계단에서 구르며 몇 번이나 죽을 뻔했는지 모른다. 눈이 안보이니 할 수 있는 일도 제한되어 있으며 먼저 내안에서 열등감이 나를 괴롭히고 아프게 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에서부터 온통 모든 것에 자신이 없어진다. 눈이 안보인다는 핑계로 운동을 하지 않으니 오래전부터 당뇨와 고혈압으로 고생하며 살아간다. 하루도 약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내 인생은 완전히 깨진 그릇처럼 버려진 느낌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무거워 견딜 수 없다.

미국의 백악관 장애인 특별위원으로 한국인으로서는 가장 높은 곳까지 올랐던 강영우 박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이었다. 서울의 한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그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에 나와 강 박사님은 둘 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아침식사를 어떻게 할 수 있었겠나?

아침 뷔페식당이었으니 주변의 종업원들이 우리의 아침식사를 가져다주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나는 지금도 뷔페식당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음식을 가져오기 위하여 자리를 떠나지만 나는 홀로 남아 자리를 지켜야 한다. 무슨 특권도 아니고 그때마다 느끼는 그 쪽팔림이란... 그날도 그랬다. 두 시각 장애인이 아침 식사를 한다. 그것도 아침 뷔페식당에서 말이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 이 두 사람은 밥을 먹을 수가 없다. 종업원들은 매우 친숙하게 강 박사님께 무엇을 드시겠냐며 묻고 강 박사님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주문했다. 나에게도 마찬가지로 묻는다. 나는 그날 강 박사님과 같은 것으로 하겠다 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강 박사님께 물었다.

 

"강 박사님, 저는 이렇게 눈이 안보인지 불과 몇 년밖에는 안되었습니다. 그래도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평생 눈이 안보이는 강 박사님은 얼마나 힘이 드십니까?"

"목사님, 그런 이야기 하지 마세요. 저는 눈이 안보여 성공한 사람입니다. 만약 제가 눈이 보였다면 어떻게 백악관의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며, 전 세계에 수많은 친구들을 둘 수 있었겠습니까?"

 

그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장애를 가진 사람의 고백이다. 그것도 나처럼 눈이 안보이는 사람의 고백이다. 부끄러웠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했다. 가슴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그 어떤 기운이라고나 할까. 아니다! 더 이상 장애를 핑계 삼지는 않겠다는 비장함이었다. 그 말 한마디는 지금도 내 삶을 움직이는 큰 가르침이다.

눈이 안보임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는 강영우 박사의 그 말은 내게 가장 의미있는 화두다. 핑계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 장애가 핑계거리로는 좋다. 장애를 가졌으니 전철에서도 내게는 자리가 보장되어 있다. 누구든지 내가 서있으면 그는 내게 자리를 양보하여야 한다. 장애는 나를 장애에 익숙하게 하는 힘이 있는듯하다. 눈이 안보인다는 이유로 나는 예외다. 열외다. 모든 이들에게 내 장애의 모습은 나를 모든 상황에서 열외의 존재로 인식하게 한다. 나는 장애를 가졌음으로 모든 정치와 경제적 활동에서 제외되어야 했다. 목사로서도 나는 최악의 조건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니 어느 교회에서도 청빙은커녕 제대로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속한 노회에서 나는 전입순서로 가장 먼저다. 19872월에 서울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으니 가장 선배인 격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나에게 노회장은 커녕 시찰회의 그 흔한 시찰위원이라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지 않는다. 장애를 가진 그것도 눈이 안보이는 최악의 조건을 가진 목사로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노회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가급적 가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자꾸만 내 존재가 작아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영우 박사님과의 그날 아침 식사 중 나누었던 그 교제의 시간은 잊을 수가 없다. ‘목사님, 그런 이야기 하지 마세요. 나는 눈이 안보여 성공한 사람입니다.’라는 그 말은 지금도 내 귀에 생생하다.

너무도 힘들고 아파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강박사님의 그 말 한마디는 내 삶에 커다란 울림이 되었다. 그렇다. 눈이 안보이는 것은 고통이다. 그렇다고 죽은 것은 아니다. 살아있음은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비록 눈이 안보이는 장애를 가진 것은 힘들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비참함을 넘어 죄다. 장애조차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핑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장애도 늙음도 힘이 없음도 하나님이 주신 삶을 포기하는 조건은 되지 않는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핑계거리로 작용되어서는 안된다.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다. 죽는 날까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 복된 삶의 조건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자신의 조건을 핑계로 하나님 앞에서 쓰임받기를 거절하려 한다. 건강을 이유로 재물과 권세 없음을 핑계로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지고 우리를 쓰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힘과 권력과 물질을 쓰시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모세가 아무리 힘과 권력이 있었지만 그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으시던 하나님이다. 오히려 모세가 아무런 힘이 없는 광야의 목동으로 전락했을 때에 비로소 부르시는 주님이시다. 어쩌면 지금 늙음의 자리를 통하여 일하시려는 하나님이심을 바라보아야 한다.

오히려 내 장애와 능력 없음이 쓰임받기 좋은 상황일지도 모른다. 성서의 모든 말씀을 종합해 볼 때에 더욱 그렇다.

강 박사님은 시각장애를 가졌음으로 하나님이 높이 사용하시는 인생을 살았다. 그것은 결국 고백의 문제다. 가장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좋은 것이며 나쁜 것인가? 그 모든 판단은 내 주관적인 고정관념일 뿐이다. 지금 내 삶은 하나님이 필요해서 주신 선물이며 은혜다. 나쁘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왜 주신 것인지를 생각하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결코 핑계가 되어서는 안된다.

 

다시 일어나야겠다. 다시 힘을 내고 앞이 보이지 않는 비참한 삶이지만 더 사랑하고 애써 하나님이 주신 삶을 살아야겠다. 늙었다고 핑계대지 말라. 건강을 잃었다고 핑계대지 말라. 돈이 없다고 핑계대지도 말라. 그 어떤 핑계거리도 하나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으니 다시 생각하고 다시 고백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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