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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경제18 초대교회 교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사도행전 4 : 32 - 35

 

종말론과 경제

요즘 다시 종말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세상이 힘들고 경제가 어려워지면 나타나는 현상중 하나가 바로 종말론이다. 언제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과 함께 우주의 징조가 심상치 않다며 여기저기서 재림 예수를 가장한 이단들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세대주의 종말론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런 현상은 한국교회의 오래된 이단현상이기도 하다.

세대주의 종말론이란 성서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주관적 입장에 따라 성서를 왜곡한 것에 불과하다. 휴거니 칠년 대환란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성서적이지 않은 것들이다.

주님은 자신의 재림 날짜를 지정하지 않으셨으며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일관된 성서의 말씀이다. 그 어떤 추론도 예수님의 재림 날짜를 지정할 수도 예견할 수도 없다. 오직 그 날과 그 시는 하나님만이 결정하시고 아시는 것이니 세대주의 종말론은 거짓이다.

사람이 그 날과 그 시를 알 수 있고 예언할 수 있다는 식의 종말론은 이단이며 가장 위험한 성서왜곡이다.

잘못된 종말론에 빠지게 되면 교인들은 일단 경제활동을 중단한다. 왜냐하면 당장 내일 종말이 오는데 왜 일을 하느냐며 모든 것을 접고 자신이 가진 재산을 이단들에게 가져다 바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노리고 종말론을 퍼트리는 이단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교인들이 조심하여야 할 부분이 바로 종말론이다.

종말론이 아니라 종말론적 삶이다

성서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종말론적 삶은 종말론과는 다르다. 종말론은 극단적 종말의 때를 강조함으로 인간의 약함을 호도하여 인간의 인격과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적그리스도적인 논리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종말론적 삶은 결코 종말이 우리의 인생을 파괴하거나 포기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종말의 때가 언제 오든지 그날을 준비하며 주신 말씀에 순종하고 언제든 기쁨으로 그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역동적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을 주신다.

마지막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알고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종말의 때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설레며 기다리는 은총의 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종말론은 종말론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말론적이라는 것은 종말의 때가 언제든 그 날과 시를 알지 못하지만 일상의 삶속에서도 얼마든지 종말론적으로 생각하고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종말론적 삶과 초대교회

초대교회 교인들은 종말론적 삶을 살았다. 언제든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최선을 다하여 주어진 인생을 살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함께 나누며 어려운 이들을 돕고 섬기며 살았다.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 사도행전 1장에서 제자들이 보는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 약속하신다. 처음에는 모두가 그 말씀대로 불과 며칠 안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거라 믿고 살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언제나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인가를 간절하게 기다리며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기다리던 예수님은 일주일이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오시지 않는 것이 아닌가!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여기서 세대주의자들과 종말론적 삶을 살아야 하는 자들의 차이가 구별되는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은 그 후로부터 징조를 보기 시작했다. 무슨 일만 일어나면 지금 예수님이 오실 것처럼 요란법석을 떨며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겨난 것이다. 분명 주님이 오실 것이라는 말씀은 믿어야 한다. 그러나 그날은 모른다. 다만 오실 것이라는 믿음만이 존재할 뿐이다. 왜 예수님은 그렇게 막연하게 자신의 재림을 약속하신 것일까?

초대교회 교인들은 모두 종말론에 빠졌다. 예수 재림이 임박했음을 느끼고는 자신들의 재산을 가지고 나와 모두 제자들의 앞에 두기 시작했으니 참으로 초대교회의 교인들에게는 재림의 약속이란 절대적인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 그것은 진리이며 성도들이 살아야 하는 참 모습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일상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종말론에 빠져 자신들의 재산을 가지고 나와 교회나 그것을 악용하는 이단의 교주들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종말의 때를 상상하며 항상 가난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나누어, 어느 누구든 그리스도안에서는 핍절한 이들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을 삶으로 사는 것이다. 종말론은 교인들의 돈과 관계가 있다. 사실 모든 이단들은 돈과 관계가 있다. 돈을 가져다 바치는 종말론이 아니라 우리의 경제가 피차 서로에게 나눔과 섬김의 관계로 확장되는 것에 촛점이 있다.

종말론적이라는 것은 우리의 물질을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과 공감하며 나누는 것에 쓰일 수 있도록 결단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종말론의 악용이 아니라 종말론적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 재림을 기다리는 종말론적 삶을 사는 성도의 진정한 삶이다.

 

그래서 어떻게 살았단 말인가?

먼저 종말론에 빠져 그날과 그 시를 예언하는 자들을 찾아다니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신앙이다. 그날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고 결정하심을 믿고 하루하루 일상의 삶이 종말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종말론적 삶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일상 속에서 경제적 가치를 추구함은 물론이고 그 가치와 물질을 함께 더불어 나누어 공동체 전체가 가난하거나 핍절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사귐과 나눔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즉 종말론적 삶을 하루하루의 삶속에서 실현하는 것이 예수 재림을 기다리는 공동체이다. 초대교회는 서로 자기 것을 주장하지 않고 사도들에게 자기의 것을 드리며 그것들로 공정하게 나누는 원시기독교공산주의 공동체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으로 초대교회 내에서는 가난한 이들이 없고 어느 누구도 경제적 고통으로 핍절한 사람이 없다고 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공동체인가!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모델이다.

우리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는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나섬이 갈 길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키부츠를 주목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다가올 통일 시대는 교회가 먼저 나눔을 실천하는 공동체로 살아갈 때에 가능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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