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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톡163 우리나라 다문화 사역에서의 한국교회의 기여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다문화 시대에 한국교회는 선교와 목회에 있어 어떻게 그 책임과 역할을 다해왔는지 정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필자는 한국교회 이주민 선교를 처음 시작한 목회자로서 그 역할과 기여에 대하여 정리해보고자 한다.

사실 한국교회는 이주민들의 인권과 생존권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필자가 1992년 겨울 이주민 선교를 위하여 구로동에 들어갈 즈음 이주민들의 삶은 매우 열악했다. 특별히 이주노동자들의 노동현장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은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것이었다. 임금체불과 산업재해는 거의 모든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이었으며, 불법체류자에 대한 과도한 벌금과 인권문제는 너무도 심각한 지경이었다.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사업은 연대와 적극적인 홍보가 있어야 했다. 연대조직으로는 이주노동자 선교현장의 모든 목회자와 공동체를 연합하는 조직의 구성이었다. 당시에 조사한 결과 한국교회는 물론이고 천주교와 불교 등 각 종교단체 혹은 ngo등에서의 이주민에 대한 지원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일부 천주교에서는 성당차원에서 필리핀 노동자들을 위한 모임은 지원하고 있었는데 자양동 성당이 그곳이었다. 또한 명동성당 내에 노동사목의 차원에서 이주노동자 상담소 설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ngo 차원에서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 즈음인 19939월 필자는 한국교회 외국인노동자선교협의회를 구성하여 초대총무를 지냈다. 당시 한국교회 내에서 이주민 선교를 하고 있는 목회자나 교회는 약 30군데였는데 그곳을 매월 1회씩 방문하여 선교현장과 경험을 나누는 월례모임을 가졌다. 지금 기억나는 곳은 파주 금촌 지역의 교회, 서울 성북구의 필리핀 공동체, 성남의 이주민 선교공동체 등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선교현장은 현재 문을 닫았거나 이주민 목회를 하고 있지 않다.

한국교회 외국인노동자선교협의회는 한국교회는 물론이고 국내 이주민지원단체와 각 종파를 초월하여 최초의 연대기구인 셈이다. 이주민에 대해 아무런 경험을 갖고 있지 못한 한국교회에서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연대한 최초의 조직이었다. 초교파 모임이었지만 어떤 선교적 편견이나 이념적 갈등은 없었다. 서로 아파하며 살았음으로 함께 모인다는 자체가 큰 위로와 힘이 되던 시절이었다.

누가 크냐하는 경쟁의 관계도 아니었으며 나이의 격차는 물론이고 교단과 교파를 초월한 그대로의 에큐메니칼한 연대를 하였다. 그러다 차츰 우리 내부에서 이주민의 문제에 대한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공감하며 대사회 대정부 차원의 홍보와 우리의 절박한 마음을 표출하자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1993년 가을쯤 몇 사람의 목회자들이 중심이 되어 각 단체 내의 이주 노동자 문제를 종합 정리하여 대사회 홍보와 투쟁을 하자는 결론을 냈다. 그리고 19941월 드디어 그 당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을 찾아가 농성을 시작했다. 이것이 한국 사회내의 첫 번째 대사회 홍보와 투쟁이다. 그 추운 겨울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우리의 요구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 나아가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특히 임금체불과 산재 문제 등 여전히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는 나그네들의 삶을 도와 달란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 이주민 나그네가 있는지도 잘 모르던 시절에 우리는 감히 정부를 상대로 이러한 요구를 하였었다. 경실련은 즉각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정부를 상대로 압력을 가했으며 정부는 대책위원회와 협상을 하기 시작했다. 한달간의 농성과 대책위원회의 활동은 상상하기 어려운 열매를 맺었다. 우리 사회내의 이주민들의 인권과 생존권에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한 것이다. 임금체불을 당한 그 어떤 불법체류자도 임금체불을 해결하여야 강제출국이 가능하게 되었고, 특히 산재문제는 기업이 비록 산업재해보상보험을 들지 않은 미등록 업체일지라도 그 업체에서 발생한 이주노동자들의 산재는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뿐만아니라 이주민 나그네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국제적 기준의 제도와 법 개정을 요구하는 매우 혁신적 차원의 인식에 공감하게 되었다. ‘한국교회 외국인노동자선교협의회가 구성되고 그 협의회가 주도한 첫 번째 투쟁의 결과는 만족스러운 것이었으며 그 후 이주민 문제는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예를 들어 그 이전에는 한국노총을 비롯한 국내 노동자단체가 이주노동자들을 같은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백안시하였는데 그 이후로 이주노동자를 같은 노동자의 범주에서 함께 연대하자는 논의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이주민을 위한 수많은 시민단체가 생겨나기 시작하였으며 정부 각 부처에서도 많은 지원이 이루어졌다. 국회에서는 다문화 가족지원법이 만들어져 우리 사회내의 다문화 가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흐름이 또 다른 종파인 불교와 이단종파들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지금은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이 중복 편중되어 오히려 역차별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각 지자체에는 다문화 가족 지원센터가 만들어져 있으며, 정부 내의 각 부처는 경쟁적으로 다문화 지원을 하고 있는 실정이며 각 지자체에서도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높은 관심과 지원은 여전히 제한적이며 편중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주민의 영역은 이주노동자를 비롯하여, 외국인 유학생, 결혼이민자와 난민 그리고 탈북자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유입되고 있음에도 다문화라는 차별적 기준을 만들어 놓고 그들에게만 관심을 갖고 있다. 다문화가정이란 한국 사람과 결혼한 이주민 가정에 국한지어 말하는데 이것은 아직도 우리가 얼마나 차별적인 법규를 갖고 다문화 사회를 제단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다문화라는 용어보다는 이주민이라는 보편적 차원에서 우리 사회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짧은 이주민의 역사에서 한국교회의 역할은 대단히 컸다. 우리는 이주민의 문제가 획기적인 차원의 변화를 이루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한국교회의 역할과 기여는 마치 나비효과를 보는 것 같다. 당시에는 작은 몸부림이었지만 돌아보면 그 시절의 우리의 열정과 발걸음은 얼마나 큰 족적이던가? 비록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고난의 시간이었지만 우리의 수고는 헛되지 않았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우리의 작은 헌신이다. 몇 명의 선구자가 세상을 바꾼다.

다문화 이주민에 대한 목회적 선교적 과제는 절대적이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하나님은 우리 사회의 이주민을 통하여 세상을 바꾸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시기 원하신다. 이를 위하여 총회와 노회는 별도의 이주민 선교 매뉴얼을 만들어 각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교육 훈련을 시켜야 한다. 아울러 총회는 이주민의 시대와 세계화에 합당한 법개정과 선교적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이제 한국교회의 시대정신은 세계화이며 이주민 선교다. 나그네를 순례자로 만들고 나아가 역파송의 선교를 통하여 이 세상을 바꾸는 공동체가 더욱 많이 나와야 한다.

2017-04-18 기독공보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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