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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역경의 열매>유해근 (7) 2017-04-11

 몽골 선교의 못자리된 재한몽골학교

광진구청장 도움으로 학교 건축… 몽골 아이들 주님의 일꾼으로 훈련


[역경의 열매] 유해근  <7> 몽골 선교의 못자리된 재한몽골학교 기사의 사진

재한몽골학교 2005년 입학식에서 유해근 목사(둘째 줄 오른쪽 세 번째)가 학생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1999년 12월 재한몽골학교를 세웠다. 8명의 몽골아이들이 전부였다. 그저 일시적으로 아이들에게 한글이나 가르치자고 시작한 학교였다. 서울 강변역 인근 서울외국인선교회의 작은 지하공간에서 8명의 학생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270명이 넘는 재한 몽골인 학생들이 재학하며 꿈을 키우고 있다.

몽골학교를 운영하며 몽골의 문화를 알리는 문화원이 함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한몽골대사관을 통해 몽골정부로부터 문화원 설립에 대한 양해각서를 받은 것도 그 즈음이다. 후원을 요청했다. 양해각서를 들고 국내 기업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도 아닌 몽골정부의 각서는 힘이 없었다.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도움은 뜻하지 않은데서 찾아왔다. 당시 고건 서울시장이 설립에 도움을 주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결국 몽골문화원을 세웠다.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몽골학생들이 늘어나 교육공간이 협소해졌다. 장소를 옮겨야했다. 당시 광진구청장이던 정영섭 장로님이 내게 점심식사를 청하셨다. 식사자리에서 뜬금없이 물어보셨다. “목사님 부족한 것이 없습니까.” 나는 지체하지 않고 대답했다. “학교가 너무 좁습니다. 옮기고 싶습니다.” 정 장로님은 바로 구청 재정국장에게 “몽골학교를 지원하라”고 하셨다. 이후 두 차례 더 지원을 해준 덕분에 2003년 6월 몽골학교 건축을 시작했다. 그해 장마는 왜 그리 길던지. 그해 12월 서울 광장동에 재한몽골학교를 세우고 입당예배를 드렸다. 재한몽골학교는 2005년 2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외국인학교로 인가를 받았으며 재외몽골학교로는 최초로 몽골정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았다.

우리학교에서는 한국어와 몽골어, 영어, 수학, 물리, 몽골역사, 윤리, 음악, 미술, 태권도 등을 가르치고 있다. 몽골인 담임교사와 한국인 교사들이 학생들의 수학 능력과 한국어 수준을 감안해 맞춤식 교육을 제공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몽골 전체인구의 1%가 넘는 3만여명의 몽골인이 들어와 있다. 그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몽골 국내총생산(GDP)의 17%를 차지한다. 선교회는 그 많은 몽골인들, 특히 그들의 자녀를 주님의 일꾼으로 훈련시켜 몽골로 돌려보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우리 학교에 빌구데라는 아이가 있었다. 매우 똑똑한 친구였다. 졸업하기 전에 이미 한국어능력인증시험(TOPIK)에서 6급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이다. 한국인들도 쉽게 얻을 수 없는 점수다. 빌구데는 우리 학교에서 9학년을 마치고 몽골로 돌아갔다. 3년 전 몽골을 방문해 울란바토르에서 빌구데를 만났다. 늠름한 모습으로 성장해있었다. 그는 울란바토르 외곽 빈민촌의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매주 친구 한두 명씩을 전도해 데리고 간다고 했다. 그에게 “네가 몽골의 미래다”라고 말해 줬다. 빌구데의 꿈은 장차 몽골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아이의 꿈이 이루어지길 기도하고 있다.  

단언컨대 재한몽골학교는 몽골선교의 못자리다. 빌구데같이 뛰어난 아이들이 우리 학교에서 자라나고 있다. 몽골의 정치지도자, 경제인, 학자, 변호사, 의사, NGO지도자, 목회자 등 각 분야에서 최고의 지도력을 갖춘 인물이 나올 것이라 믿으며 기도하고 있다. 그날은 분명히 올 것이다.  

정리=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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