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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톡152 길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부제 / 초원길과 비단길 그리고 바닷길이 만나는 한반도의 미래

초원길과 비단길의 주인들

주전 6세기부터 몽골초원을 넘어 유라시아 대평원의 주인은 스키타이 유목민이었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와 초원의 주도권을 놓고 격돌할 만큼 강한 초원의 유목민이었다. 그 후 주전 3세기 중국에서 시황제의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할 때에 몽골초원의 유목민은 흉노였다. 흉노라는 유목민은 얼마나 강하고 두려운 존재였던지 진시황제는 그 흉노를 견제하기 위하여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다. 그때까지의 유목민은 몽골과 유라시아 초원을 중심으로 유목 초원길을 만들었으며, 당시 우리 민족은 고조선을 지나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시대가 한반도에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초원길은 유목민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길이며 그 초원길의 마지막 종착점이 우리 민족이 자리를 잡은 이 땅이었다. 우리의 유전자속에 북방의 흔적이 있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유목민들이 초원의 영원한 지배자일 수는 없었다. 진나라가 불과 한 세기도 버티지 못하고 망한 이후 한나라가 출현하면서 특히 한나라의 무제가 장건을 통해 흉노 정벌을 시작하면서부터 초원의 길은 비단길이라는 새로운 길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장건의 흉노 정벌과 서역개척이 비단길이라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길을 개척하게 한 것이다.

그 후 비단길의 주인이 세계와 역사의 주인이 되었다. 비단길을 누가 지배하는가가 세계질서의 패권을 장악하는 것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게 되었다. 한나라의 무제에서 몽골의 칭기즈칸까지 그 비단길을 놓고 한판의 대접전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물론 한나라 이전인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도 그 길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전쟁을 일으켰었다. 다만 그때까지의 길이 초원길이었다면 한나라 이후의 길은 비단길이 된 것이다.

주후 1세기 중동의 작은 땅에서 기독교가 시작되었다. 바울의 초기선교는 지금의 터키에서부터다. 수리아의 안디옥에서부터 에베소와 드로아 그리고 나중에는 마케도니아의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고린도와 아테네에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다. 그 땅은 복음의 땅이었으며 기독교의 공간이었다. 적어도 7세기 아라비아의 메카에서 모하메드라는 비단길의 상인이 이슬람을 창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다. 이슬람의 세력이 급성장하면서부터 세계의 축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길은 그 중심이 된다. 누가 길을 지배하는가가 역사를 지배한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무슬림들은 비단길의 주인이 되려 했다. 기독교는 터키의 북쪽 보스포로스 해협을 넘어 유럽으로 가려했고 이슬람은 아라비아에서 지금의 이라크 바그다드까지 이동하고 있었다. 그 당시의 이슬람 왕조를 압바스 왕조라고 하는데 그 왕조는 대단히 강력한 무슬림 왕조였다.

그 당시까지만 하여도 초원은 여전히 유목민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당시의 유목민들은 흉노의 시대를 지나 돌궐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흉노는 한나라의 무제에 의하여 두 갈래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한 갈래는 동쪽으로 다른 한 갈래는 서북쪽으로 흩어지면서 그들의 이동은 유럽의 민족 대이동을 촉발하게 만든다. 그들을 훈족이라 불렀는데 나중에 서로마 제국이 주후476년 망하게 될 때에 그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바로 그 훈족의 대장군이 아틸라라는 장군이었다. 아틸라의 유럽침공으로 인하여 유럽인들은 아시아인들에 대하여 일종의 콤플렉스를 갖게 되는데 그것을 '옐로우 콤플렉스'(yellow complex)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유럽인들을 비롯해 백인들이 갖고 있는 아시아 몽골로이드에 대한 편견과 차별, 두려움과 공포심은 흉노의 계보를 잇는 훈족의 아틸라장군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 즈음인 주후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황제에 의하여 공포된 밀라노 칙령으로 카타콤의 지하동굴에 있던 기독교는 지상으로 올라와 국가종교가 되었으며 다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30년 로마의 수도를 지금의 로마에서 터키로 옮기게 되는데 그때 동로마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플이라 했다.

기독교는 바로 그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의 땅 바로 지금의 터키다. 그곳이 성지인 이유는 바울의 선교지였기 때문이며 나중에는 동로마의 수도로 적어도 1000년이 넘도록 한 제국의 수도였기 때문이다. 당시 아시아에서도 가장 중요한 지역이던 에베소에서 제4차 종교회의가 열리게 되는데 그 종교회의에서 네스토리안이라는 집단이 이단으로 정죄되면서 그들이 결국 유럽이 아닌 동방의 비단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며 이 또한 그 길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네스토리안은 네스토리우스라는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로부터 시작된 종파였다. 에베소 종교회의의 주 이슈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인간인가? 신인가? 라는 문제였다.

당시 네스토리우스 주교는 마리아가 인간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었으나 에베소 종교회의는 마리아를 인간이 아닌 신으로 규정함으로써 네스토리우스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을 이단으로 정죄한 것이었다. 그들은 죽음이 아니면 도망해야 하는 운명을 지니게 되었으며 결국 그들은 비단길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비단길을 통해 복음이 중국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당시 중국은 당나라였는데 지금도 그 당시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에는 경교비라는 네스토리안들의 선교를 증명하는 비가 서 있다.

당시 우리나라는 신라시대였으며 그 당시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서도 네스토리안들의 흔적이 발견된 바 있다.

네스토리안교는 후에 당대를 지나 칭기즈칸의 며느리인 쿠빌라이칸의 어머니에게까지 전파되어 원나라의 수도였던 카라코름이라는 곳에 십자사라는 교회터를 남기기도 했다.

칭기즈칸은 13세기 초에 몽골제국을 세우고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을 이루었다. 그 당시의 몽골제국에 바로 그 네스토리안 기독교가 전파되어 있었으니 동방에도 이미 기독교가 전파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흔적은 한반도에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다시 몽골 초원의 주인이 돌궐이었던 때로 돌아가자. 주후 610년 모하메드에 의하여 창시된 이슬람은 급속도로 북아프리카에서 이라크의 바그다드에까지 전파되고 있었다. 초원은 돌궐이 지배하고 있었다. 중국은 당나라 시대였으며 마침 그 당나라에 고선지라는 고구려의 유민이 있었다. 당나라 조정은 고선지를 불러서 초원의 유목민들을 내쫒아 버리라 한다.

드디어 751년 달라스라는 강가에서 큰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데 당나라의 고선지 장군과 압바스 이슬람군의 전쟁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초원의 주인이었던 돌궐이 아닌 압바스가 대리전을 하는가? 그 이유가 오늘 터키가 기독교 성지에서 이슬람의 땅으로 바뀌는 첫 번째 이유다. 당시 돌궐은 약한 유목민들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당나라와 전쟁을 한다는 것은 오늘날 미국과 몽골이 붙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당나라는 중국을 지배한 제국이며 초원의 돌궐은 작은 유목집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돌궐의 입장에서 그 전쟁은 이미 해서는 안되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당나라의 계속된 돌궐에 대한 공격이다. 결국 돌궐이 찾아간 곳이 바그다드에 머물던 압바스 무슬림 왕조다. 도와달라는 구원의 손을 내밀며 그들은 압바스의 종교였던 이슬람을 믿기로 약속한다. 그것이 오늘날 중앙아시아를 비롯하여 터키에까지이슬람 제국이 서게 되는 역사적 배경이 된다.

그렇게 해서 달라스 강가의 그 유명한 전투가 일어나게 되었고 그 전투에서 고선지의 당나라 군은 압바스의 이슬람 군에 의하여 거의 전멸하는 대참패를 당한다. 그 후로 돌궐은 약속대로 이슬람의 식구가 된다. 지금의 중앙아시아에 끝에 ''자가 들어가는 나라가 바로 그들의 후손인 것이다.

고선지라는 고구려의 장군이 그 당시 달라스 전쟁을 하지 않았다면, 혹시 그 전쟁에서 승리했더라면 세계종교의 역사는 달라졌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 아이러니한 역사를 돌아보며 그렇게 우리와 엮인 이슬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 후 돌궐은 셀주크 투르크라는 부족국가를 출현시키게 되는데 그 투루크 민족이 성장하면서 오히려 나중에는 바그다드의 압바스 제국을 침략하여 망하게 한다. 셀주크 투르크에 이어 새로운 투르크 제국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 투르크 부족 중 오스만이라는 작은 부족이 14535월 지금의 터키 이스탄불 아니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게 되는 것이다. 당시 그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즉 황제는 마호메드 2세라는 21살짜리 젊은 왕이었다. 그리고 그 콘스탄티노플의 마지막 황제가 콘스탄티누스 11세였으니 그는 콘스탄티노플을 세운 콘스탄티누스와 같은 이름을 가진 황제였던 것이다.

 

돌궐이라는 유목민은 분명히 한반도에까지 흘러 들어온 유목민일수도 있었다. 당시 유목민들이 가는 곳이란 동해의 마지막 해가 떠오르는 땅 즉 지금의 터키땅으로부터 동해의 해가 떠오르는 곳까지였다고 한다. 아나톨리아 반도는 거의 대부분 터키의 영토인데 '아나톨리아'는 해가 떠오르는 땅이라는 뜻이니 그들은 동해로부터 아나톨리아까지 해를 찾아가던 유목민들이었던 것이다. 터키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유난히 좋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같은 돌궐의 후예라는 유전자와 해를 찾아가는 민족이라는 동질성이 있으니 말이다.

이 외에도 터키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하게 되는 배경은 오스만 제국이 망하고 세계 제1차 대전이 끝나면서 아타튀르크라는 무스타파 케말 파사라는 장군에 의하여 세워진 터키 공화국 이후부터이다. 아타튀르크는 당시 소련 공산주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이슬람 세속주의를 주창하면서 친미주의 노선을 선택하게 되는데 마침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게 되면서 터키군대를 한국전쟁에 파견하고 그 인연으로 우리와 가까워진 것이다. 역사적으로나 유전적으로 터키는 우리와 형제인 것이다.

터키가 서쪽 비단길의 종착점이고 우리나라가 동쪽 비단길의 종착점이다.

초원길에서 비단길로 변화된 길이 1492년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이후 대항해의 시대를 열게 되면서 세계는 새로운 길을 만들기 시작한다. 새로운 길의 변화다. 그것은 바로 바닷길의 발견이다. 초원길을 지배하던 유목민의 시대에서 비단길을 지배하던 농업국가의 시대를 넘어 바닷길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는 세상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의 아시아 침략은 그렇게 해서 시작된다.

대륙으로 진출하지 못하던 일본이 바닷길을 통한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접하게 되고 그것이 임진왜란의 조선침략의 결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해군에 의하여 무참히 무너지고 네덜란드와 영국이 세계 바닷길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면서 드디어 바닷길의 세상이 된다. 누가 바다를 지배할 것인가? 지금까지 바닷길을 지배한 국가가 세계를 지배하였다. 스페인에서 포루투갈로, 다시 영국과 네덜란드로, 그리고 미국과 일본으로 세계의 바닷길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누가 이 길을 지배할 것인가?

길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아니 길을 만들고 길을 지배하는 자가 성공하고 승리한다. 세계사는 길의 역사이며 그 길을 지배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가 이 지구의 역사다.

그러므로 길을 만들며 살아야 한다. 길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다.

초원길에서부터 비단길로, 다시 바닷길까지 길은 변한다. 길이 변하는 것처럼 우리도 변해야 한다. 길을 만들고 길의 지배자가 되는 날까지 우리의 길에 대한 생각과 도전은 멈출 수 없다.

이제 길의 마지막 시대가 열린다. 한반도가 그 길의 종착점이고 시발점이다.

그리고 그 한반도에서도 나섬이 그 길의 출발지이다. 유목민들이 머물고 그들이 역파송의 시대를 열고 다시 통일이라는 과제를 풀어가면서 우리의 길 개척에 대한 끝없는 도전과 실험은 멈추지 않는다.

나섬은 길을 만들고 길을 지배한다. 우리는 길을 만들고 길을 차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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