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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 노마드경제12 거품빼고 싸워라

 

사사기 7 : 2 - 8

 

왜 비대칭인가?

성서의 전쟁기사는 한결같이 비대칭 전투를 통한 승리를 이야기 한다. 비대칭 전투란 일대일의 대칭을 통하지 않고, 일방적 군사력과 양적 크기의 대칭이 아닌 압도적 약세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승리한 경우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승전이 이와 같다. 성서에서 대표적인 비대칭 전투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은 비교가 될 수 없는 일방적인 전투였다. 그러나 그 싸움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또 하나의 비대칭 전투의 전설적 이야기는 본문의 기드온의 전투 장면이다. 미디안 족속의 숫자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소수의 군사력으로 전쟁을 한 이야기다. 고작 300명의 군사력으로 해변의 모래와 같이 수많은 미디안 군사를 격퇴했다는 이 기사는 비대칭 전투의 전설이다. 왜 비대칭 전투인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준다. 전쟁의 승리와 패배는 결국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함인 것이다. 전쟁은 우리가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결과는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승리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비대칭이든 대칭이든 그것의 결과는 하나님의 것이다. 비대칭이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싸워 이기라는 것이 기드온의 비대칭 전투가 가르쳐 주는 진리다.

 

지금 우리는 우상숭배 중

한국교회의 가장 저급한 논리 중 압권은 커야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 논리다. 교회가 크고 대형화되면서 만들어진 이 논리의 핵심은 자본주의다. 자본의 확대만이 승리를 보장한다는 현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우리 교회를 잠식한 결과다. 과연 클수록 좋은 것인가? 그렇다. 분명히 크고 강하면 좋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자본주의는 될 수 있어도 신앙은 아니다.

신앙의 힘은, 작아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강해야 강한 하나님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만들어진 신일뿐이다. 만들어진 하나님은 우리의 강함을 의존할 것이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가 약해야 스스로 강해지는 분이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우리를 강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주장한다. 우리가 강하면 하나님이 강해진다는 논리의 비약이 우상 숭배이다. 우상숭배는 기독교가 아니다. 우리가 강해야 하나님이 강하다는 우상숭배의 기독교는 오래갈 수 없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우리가 약함에도 우리 편이 되어 주심으로 우리가 승리할 수 있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약하고 작은 것이 아름답다

약하고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말하면 열등감의 발로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때로 그 말은 사실이다. 인간의 열등감이 자기 합리화로 그리 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하고 작은 것에서 하나님의 강하고 위대함이 드러난다면 아무리 손가락질해도 약하고 작은 것이 아름다울 수밖에 더 있으랴?

최근 한국교회의 새로운 변화중 하나가 작은 교회 운동이다. 작은 교회를 지향하면서 소박한 일상의 삶과 교회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가르쳐 주고 싶다는 희망에서 비롯된 운동이다. 아직은 소수만이 참여하고 있지만 작은 교회가 교회의 핵심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나는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작은 교회를 지지한다.

작은 교회 운동 중 하나가 특화된 작은 교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를 위하여 교회가 커야 하는가를 묻고 목회하려는 이들의 몸부림에 박수를 보낸다. 자발적 약자가 되고 소수자가 되려는 이들의 선택에서 마치 기드온의 창조적 소수를 발견한다. 자발적 약자의 삶에서 강하신 하나님이 드러날 수 있다는 신앙고백적 교회가 많아져야 성숙한 교회가 될 수 있다.

 

위대한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을 꿈꾸며 살고 싶다

나는 히든 챔피언이라는 말에 매력을 느낀다. 숨겨진 챔피언이라니 얼마나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인가? 무언가 스토리가 있을 것 같은 삶이 그려진다. 나는 외형으로서의 삶이 아닌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는 목회가 하고 싶었다.

자기만의 고백이 있는 목회자의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성공한 삶이다. 자기만의 스토리와 고백적 삶이 있는 목회가 나섬의 비전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색깔과 우리만의 고백과 스토리를 개발하고 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공동체다. 나는 처음부터 이런 목회를 꿈꾸었다. 작은 것이 아름답고 약자가 강한 자를 삼켜버릴 수 있는 목회란, 얼마나 위대하고 재미있는 그림인가?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어야 이야기가 된다. 작은 것이 큰 것을 부끄럽게 할 수 있어야 스토리가 된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이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힘이 센 자가 약한 자를 놀리는 세상은 결코 아름답거나 행복할 수 없기에 하나님은 그렇게 당연해 보이는 쪽에 배팅하지는 않으실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가? 행복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살아야 한다. 작은 자들이 큰 놈들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지 강한 놈들이 작은 자들을 이겼다는 이야기가 어찌 재미있단 말인가? 히든 챔피언은 이야기를 만드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존재다.

 

거품없이 담백하게 아니 단순하게

크게 보이고 싶으니 거품을 만든다. 한국교회는 물론이고 한국의 종교인들을 다 더하니 우리나라 인구수보다 더 많은 숫자가 나왔다는 웃기는 이야기가 있다. 얼마나 거품이 많았으면 그러했겠는가? 사실 거품은 한국인들의 삶의 양식이었다. 겉포장에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 문화와 역사의 슬픈 자화상이다.

없어도 있는 척하면서 살아야 했던 그 아픈 이야기다. 그래야 함부로 취급당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겉으로나마 거품을 만들어야 최소한의 자존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철학이 없는 민족이었던가? 아니 너무 작아서 그 열등감으로 어쩔 수 없이 거품을 만들어야 했다. 약자가 너무 힘들고 슬퍼서 강한 척 남보다 더 큰 존재라는 거품이 필요했다. 작은 키를 숨기려고 키 높이 구두를 신고 싶었고 못생긴 얼굴을 성형수술로 포장하고 싶었다. 학력 콤플렉스가 두려워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고 결국 우리는 그렇게 망가져 갔다. 거품 때문이다. 가진 것 없어도 큰 자동차가 필요했고 곧 죽어도 큰소리치면서 살고 싶었다. 나또한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내 아이가 장애를 가진 것이 부끄러워 누구에게도 내 아들의 이야기는 가급적 숨기려 했고 아니 내 장애마저도 숨기려다 큰 일이 날 뻔하기도 했었다.

나섬이 너무 작아 내 존재감 없음에 슬퍼하면서 분노하기도 했고 때로는 우리 공동체 거품을 만들어 보여주는 목회도 생각해 보았다.

 

 

결국 다시 나섬으로 돌아오고

나는 나그네를 섬기는 교회가 좋다. 작고 약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작은 나섬공동체가 좋다. 이 곳이 내 자리다. 내 존재의 자리는 여기다. 이렇게 고백하며 나는 웃는다. 결국 여기가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드니 이제 조금 철이 든 것인가?

거품없는 소박함과 단순함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이제 여기서 한발자국도 거품 이야기는 하지 않으련다. 거품대신 담백하고 단순하게 살아가련다. 그런 마음으로 목회하고 선교하면서 주어진 삶을 살아 갈 것이다.

 

거품 대신 새로운 비전을 품다

우리는 그리스와 몽골, 인도와 터키와 이란, 필리핀과 베트남 아니 전세계에 가보지 않은 곳으로 간다. 그곳에 하나님 나라를 위한 전초기지를 세우고 새로운 선교적 모델을 세울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사역의 조건은 우리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소수이고 약자라는 조건위에서다. 그래야 강하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많은 숫자가 필요하지 않다. 작은 무리로 큰 역사를 이루는 모습이 좋다. 히든 챔피언의 활약으로, 또는 약한 자가 강한 자를 무릎꿇게 하는 기적의 역사로, 세상의 힘이 아닌 우리의 믿음으로 그 모든 사역을 이루어갈 것이다.

나는 요즘 햇빛발전소와 스마트 팜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선교의 모델에 집중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자립적이고 나아가 어느 무엇보다 부가가치가 남다른 선교적 모델을 만들 수 있는가에 주목하고 있다.

그래야 탈북 청년들 나아가 몽골 탈북자 평화캠프와 북한 개발의 확실한 모델을 만들 수 있기에 이에 전력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스 행복학교와 탈북자 선교와 세계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그 모든 사역에는 엄청난 인력과 돈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 것도 없이 그 모든 사역에 도전한다. 가능할까?

할 수 있다. 해야만 한다. 그래서 작아도 약해도 얼마든지 하나님이 쓰시면 살아남는다는 것을 넘어 위대해 질 수 있으며 히든 챔피언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야 작은 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약자들에게 살아갈 꿈을 줄 수 있다. 그래야 세상이 정의롭고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거품 빼고 승리한 기드온의 이야기를 우리의 삶으로 연결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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