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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 노마드경제11 미래를 향하여

미래를 향하여

빌립보서 3 : 12 - 14

 

 

바울의 선교와 삶

빌립보서는 옥중서신중 하나다. 바울은 선교를 하면서 곳곳에서 박해와 고난을 당한다. 먼저는 유대인들로부터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독점적 구원에 대하여 인정하지 않으려는 바울에 대하여 격앙되어 있었다. 유대인들은 바울의 1차 선교여행의 첫 번째 방문지였던 비시디아 안디옥을 시작으로 그가 가는 곳마다 따라가 고통을 주었다. 결국 바울의 선교는 늘 박해와 동행하는 고단한 여정이었던 셈이다. 안디옥에서부터 에베소와 데살로니가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예루살렘과 로마에 이르기까지 결국 바울이 순교를 당하는 순간까지 고난이 없던 적은 없었다. 빌립보서는 그런 그가 로마감옥에 갇혀 있던 중에 쓴 서신서다. 그러므로 감옥에서 편지를 쓰는 바울의 심정을 생각하며 읽어야 이 서신서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고난이 있었지만 바울의 선교는 많은 열매를 맺었다. 그의 네 번에 걸친 선교여행은 수많은 이적과 선교의 열매를 얻어내는 소중한 사역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의 선교에 대한 열정과 집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뒤에 것은 잊어버리라 하지 않던가! 여전히 갈 길이 남아 있다는 그의 고백은 감동이다. 푯대를 향한 그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갈 길이 남아 있다는 선교적 고백과 열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그는 과거를 돌아보는 과거 지향적 인생을 살지 않는다. 과거는 과거다. 남은 것이 중요할 뿐이다. 과거를 추억할 수는 있지만 과거에 안주하거나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사역에 만족하지 않는다. 과거도 중요하지만 남은 미래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은 인생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몰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하는 삶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며 설레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 바울이 그랬으며 믿음의 선배들이 갖고 있던 삶의 철학이 그랬다.

 

과거를 바라보고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성의 심판과 멸망의 이야기에 속에는 롯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소돔성에서 긴급하게 탈출하여야 하는 급박한 상황을 상상해 보자. 롯과 그의 가족은 상당한 재력을 갖고 있었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갈대아 우르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출발할 때 동행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의 동행은 오래가지 못한다. 결국 아브라함과 롯은 서로의 갈 길을 정해야 했다. 롯은 요단 동편의 기름지고 풍성한 소돔땅을 선택하고 아브라함은 그 반대의 척박하고 버려진 광야를 선택했다. 누가 더 지혜로운 선택을 했는가는 나중에 알게 된다.

분명한 것은 롯의 선택에는 불행과 저주의 씨앗이 잉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소돔은 심판과 멸망의 땅이었다. 비록 겉으로는 부요하고 풍족했지만 그 안에는 죄와 악이 가득한 땅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른다. 아직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에 대하여 아무도 모른다. 아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뿐이다.

소돔성은 심판의 땅이다. 마지막 최후의 심판대에서 롯과 그의 가족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은총을 받았다. 오늘밤 안으로 이 땅을 떠나라는 천사들의 명령에 따라 롯과 그의 가족은 소돔성을 떠난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 가지 옵션이 있었다. 그것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 뒤를 돌아보는 것은 과거에 대한 추억을 넘어 과거에 대한 집착이다. 두고 나오는 모든 재물과 인간적인 풍요함을 버리지 못하는 과거지향적인 삶에 대하여 용납하지 않겠다는 하늘의 뜻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봄으로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전설을 낳게 된다.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롯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는 소돔성이 있었던 사해 앞 소금밭에 아직도 남아 있다.

뒤를 돌아봄으로 인간은 집착을 포기하지 못한다. 집착은 모든 실패의 원인이다. 과거를 잊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과거는 과거다. 과거에 대하여 망각하라.

미래에 대한 리브가의 결단

성서에서 리브가를 가장 탁월한 여인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그녀의 결단력 때문이다.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하지만 그럼에도 미래에 대하여 도전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불확실한 미래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성공의 가능성이 동등하게 주어지는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확실하게 바라보며 마치 보는 것처럼 도전할 수 있다면 성공의 길은 열려져 있다. 믿음이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볼 수 없는 것을 보며,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지 않은가? 믿음의 사람은 불확실한 미래를 바라보며 고백할 수 있다. 그는 비록 미래의 불확실성이 불안하고 두렵지만 동시에 그 미래 속에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있음을 믿으며 나아갈 때에 성공의 길이 보장되어 있음도 동시에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리브가의 결단과 순종은 탁월하다. 그녀가 이삭을 선택할 때의 모습은 당돌하고 저돌적이다. 어떻게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남자와의 결혼을 승낙할 수 있었을까? 무엇이 그녀의 결단을 가능하게 한 것일까? 아마도 성공적인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에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열린 영안이 있었음이다. 그렇지 않고는 그녀의 결단을 설명할 수 없다. 리브가는 기회를 붙잡을 수 있는 결단력이 있었다. 그 결단력의 배경에는 미래에 대한 확실한 의지가 있었던 것이다.

과거보다 미래가 중요하다. 과거를 바라보며 후회하는 인간이 성공한 사례는 한 번도 없다. 오직 미래를 바라보며 도전하고 개척하려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성공은 미래지향적인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아무리 뛰어나고 좋은 스펙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과거에 집착하거나 과거를 잊지 못하고 과거에 매몰된 사람이 성공할 수는 없다. 오히려 조금은 부족하고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성공한 사례는 많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과거에 집착하느냐 미래를 설레임으로 맞이하며 도전하느냐이다.

성서 속 리브가의 선택은 의미있는 장면이다. 이삭이라는 남자에게 결혼을 승낙하는 결단력에서부터 작은아들 야곱에 대한 편애 등 리브가만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래서 리브가를 가장 탁월한 CEO형 리더라 부르는 것이리라.

 

미래는 어디로 가는가?

실패로 가는 길이 있고 성공으로 가는 길이 있다. 실패는 과거 속에 후회하며 살아가는 것이며, 성공은 미래의 길목에서 기회를 붙잡는 것이다.

세계는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으며, 인공지능과 같은 상상을 초월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인간에게 미래는 과연 은총일 뿐일까? 노동의 종말을 예고한 와튼 경영대학원의 제라미 러프킨의 예언이 현실이 되고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의 고용과 노동의 기회를 대체하고 있다. 더 이상 인간이 필요하지 않은 스마트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말이다. 인간의 소외다. 노동의 소외이며 고용의 종말이다. 제너럴 모터스의 포드가 대량의 고용으로 새로운 산업사회의 길을 열었던 포디즘(Fordism)의 종말이 시작되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저출산과 초고령의 사회가 이어지면서 다문화의 시대로 활짝 문이 열리고 있다. 저출산과 초고령이라는 부정적 미래에 새로운 다문화의 시대는 기회이며 또 다른 긍정적 미래의 신호이다. 세계는 부정과 긍정의 연속선에서 반복되면서 진보한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미래는 부정과 긍정이 동시적으로 공존한다.

한국교회의 미래는 암울하다. 그러나 동시에 기회가 주어져 있다. 위기와 기회는 함께 한다. 그들은 일란성 쌍둥이 에서와 야곱처럼 함께 다가오고 있다. 누가 위기와 기회를 분별하며 실패자로 혹은 성공자로 남을 것인가?

 

나섬에게 과거는 없다 오직 미래만이 있을 뿐

바울 사도는 뒤에 것을 잊어버리라 한다. 이미 얻었다고 이루었다고도 자랑하지 않겠다 한다. 오직 푯대를 향하여 앞으로만 나아가자고 한다. 상당한 선교적 결과물을 이미 얻어낸 바울의 이런 고백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소박한 소시민들에게 큰 도전의식을 준다. 그렇다. 아직 할 일이 더 남아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는 몇 가지 아니 수없이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 해온 것은 잊어버리고 남은 것에만 집중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크고 비밀한 비전을 보여주고 계시지 않은가? ‘그리스행복학교와 몽골의 평화캠프가 그것이다. 아니 몽골과 한반도를 하나로 묶어 새로운 역실크로드의 길을 개척하라고도 하신다. 세계를 하나로 묶는 일도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우리는 그것을 미션 하이웨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 미션 하이웨이는 아직 시작도 못했다.

나는 미래가 기다려진다. 설레임과 간절함으로 미래의 선교적 삶과 그 길에 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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