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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톡136 유바울 선교사의 간증을 듣고

    아가페센터의 유바울 선교사님에게 간증을 부탁했다. 우리는 조별로 난민선교학교 사역을 감당하였는데 둘째 날 오전 당번이 아닌 조원들을 위해 유선교사님이 간증을 들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자신의 삶과 신앙, 그리고 선교'라는 주제로 간증을 부탁하였다. 아마 하기 쉽지 않은 간증이었을 게다. 그러나 서울에서부터 부탁을 했으니 선교사님도 거절할 수는 없었으리라.

올해로 60대 중반이 된 유선교사님은 보기보다 젊다. 그는 언젠가 내가 간증하는 설교를 들었다는 말로 간증을 시작하였다. 때때로 나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목회자인지를 간증할 때가 많으므로 어디선가 그런 내용의 설교를 들었으리라. 유선교사님은 지금 자신이 꼭 그런 심정이라고 고백한다. 유선교사님이 그의 삶을 나하고 비교한다는 것이 왠지 쑥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진정 지금도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목회자임을 알기에.

선교사님은 평생 외국계 회사에서 중역으로 일하다가 사직을 하고 새롭게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 이야기로 간증을 이어갔다. 거기까지는 그랬다. 평범한 이야기다. 늦은 나이에 목회자로 혹은 선교사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다 그럴만한 스토리가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그 다음이 충격이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지역에서 피랍된 샘물교회 단기 선교팀의 그 아픈 기억을 더듬으면서 이야기를 이어갈 때 우리 모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프가니스탄 단기 선교팀의 리더로 참여했다가 탈레반에게 납치가 될 줄 누구인들 그런 시나리오를 생각했겠는가? 청년들을 비롯한 23명의 단기 선교팀은 칸다하르 지역을 통과하던 중 탈레반에게 납치를 당한다. 그리고 장장 40일간의 피랍과 두 명의 순교자가 생긴다. OO 형제와 배OO 목사가 그들이다. 그들은 탈레반의 협박용으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유선교사님은 그 말을 하면서 눈시울을 적시는 것 같았다. 당시 그 두 명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았다고 한다. 탈레반이 전해준 라디오를 듣는데 문득 납치자의 숫자를 21명이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영어로 방송되는 뉴스를 듣던 중 라디오 앵커가 피랍자 숫자를 말하면서 21명이라 했다는 것이다. 유선교사는 왜 자신들이 함께 온 23명의 숫자가 갑자기 21명으로 바뀌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다가 그들 중 두 명이 죽었음을 알아차렸다 한다.

피랍기간 중 배설물을 처리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던 자매들의 그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인간의 고통 중 먹지 못하는 것보다 제대로 배설하지 못하는 고통이 더 크다는 사실도 알았다. 먹지 못하는 고통보다 배설할 수 없는 고통은 얼마나 힘들까를 생각하면서 먹고 배설하는 것 자체가 복임을 깨달았다.

벼룩이 살갗을 뜯고 물어 진물이 날정도로 고통스러웠던 아프가니스탄의 어느 움막 같은 곳에서의 생활상도 들었다. 40일 동안 옷을 갈아입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닦지 못해 어떻게 살았는지를 말하는 그에게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연약한가를 느꼈다.

어느 날엔가 피랍된 일행 모두를 밖으로 끌고나와 구덩이 앞에 세우고는 죽이려 했다 한다. 그날 그 자리에서 유선교사님은 총알 한방에 죽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고 한다. 고통 없이 죽여 달라고... 만약 한방에 죽지 않으면 자신이 없어 탈레반에게 무릎을 꿇을지도 모르기에 그렇게 기도를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웃었다.

그러나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두 명의 순교자를 두고 돌아온 한국에서였다. 그들을 기다린 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니 그 어떤 말로도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주변 사람들의 비판과 비난이었다.

이미 받은 상처와 상처 난 부위에 쏟아지는 여론의 비난과 조롱, 한없이 추락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를 말하면서 유선교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니 울고 있었다. 우리도 울었다. 정말로 힘든 시간이었음을 실감하면서 한때 나도 그들을 비판했던 순간이 떠올라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결과적으로 그 고통은 지금 그가 그리스 아테네에서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난민 사역을 하게 한 계기가 된 것이다. 인간에게 삶은 그렇게 흘러간다.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나를 규정할 것이다. 지금의 내 고통은 미래의 내 삶을 그리는 작업이다. 삶은 연동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떨어질 수 없다. 아니 그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은 그런 것이다.

그날 유선교사님에게서 들은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의 전말을 들으면서 그리고 그 후의 그의 삶과 선교사역에 대하여 들으면서 나는 많은 것을 생각했다. 잘 살아내야 한다. 죽음의 순간에도 죽음에 대하여 잘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혹시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살려달라고 울고불고 무릎을 꿇고 손일 비비고 난리를 치며, 죽지 않겠다고 똥을 싸고 오줌을 싸고 기절을 하진 않았을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아마 살고 싶다고, 살려달라고 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들고 골고다를 올라가시던 날을 상상한다. 갑자기 힘이 빠진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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