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신비주의 종파인 수피즘에서 나온 이야기다. 강물이 사막을 건너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사막을 만나면 그 물은 수증기로 변하여 다시 강물이 흐르는 곳에 비로 내린다는 것이다. 물이 변하여 수증기로 그 수증기는 다시 비가 되어 내리는 변화를 통하여 장애물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으면서도 수증기로 혹은 비와 눈으로 강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간다. 물이라는 본질은 지키면서 형식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 인생은 마치 강물이 모래사막을 넘어가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만약 여기서 변화하지 않으면 강물이 모래사막에 흡수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될 것이다. 모래사막이 강물을 빨아들이는 것은 순식간이며 그런 사례는 역사와 인생에서 수없이 반복되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물이 수증기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수증기가 사막을 건너 비가 되어 강물이 될 것이라는 상상력이다.
나는 몇 가지 사안을 두고 형용할 수 없는 간절함으로 하루하루의 일상을 산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불안해지면 더욱 그렇다. 절박함을 기도로, 깊은 묵상과 생각을 하며 상상의 에너지를 끌어모은다. 물을 수증기로 바꾸는 상상력은 무한한 가능성을 말한다. 우리는 변화할 수 있다. 물이 수증기로 변하여 비가 되어 내리듯이 우리의 삶에 불가능은 없다. 우리는 그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내가 몽골학교를 만들고 정식 외국인 학교로 인가를 받아 지금의 아차산 언덕에 학교를 지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상상력 덕분이다. 상상력은 믿음이며 믿음은 현실로 나타난다. 그때까지가 문제다. 마지막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학교가 인가를 받고 학교 건물을 신축할 때까지 믿음으로 상상하며 기도와 인내로 살아왔다. 이제 다시 새로운 비전을 꿈꾸고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와 인내로 살아갈 것이다.
탈북자들과 이주민들을 위한 사회적 경제의 모델을 만드는 사역, 역파송 선교사들의 지속 가능한 선교를 위한 시스템 구축, 몽골 평화 경제 공동체 프로젝트의 시작, 나섬과 몽골학교가 다문화 선교와 교육의 플랫폼이 되는 것 등 나는 강물이 수증기가 되어 비로 내리는 상상을 한다.
강물이 사막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수증기로 변했기 때문이다. 본질은 지키되 형식을 바꾸면 살아남을 수 있다.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대다. 인공지능의 진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경제의 패러다임이 중량(重量) 문명에서 경량(輕量) 문명으로 이동하고 있다. 큰 기업이 살아남는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시대는 가고 대마필사(大馬必死)의 시대가 되었다. 이것은 『경량 문명의 탄생』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다. 그 말이 맞다! 세상은 바뀌었고 문명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교회는 여전히 그대로다. 제라미 리프킨이 예언한 '노동의 종말'이 시작되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모든 것을 대체하고 있다. 앨빈 토플러가 말한 '속도의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의 속도의 충돌은 어쩌면 교회의 존폐를 결정할 수도 있는 대충돌이 될지도 모른다.
인구절벽과 새로운 문명의 출현은 교회의 존재 방식을 바꾸라 한다. 강물이 사막을 만났다. 과연 강물의 선택은 무엇인가? 무엇으로 강물은 사막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넘을 수 있는가? 그리고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강물이 수증기가 되듯 교회도 형식과 모습을 바꾸어야 한다. 그것만이 교회가 살아남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