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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노마드톡649_모세의 질문

우리 학교 아이들 중에 자신이 왜 몽골에 태어났는지를 묻는 아이가 있었다.

 

왜 나는 몽골이라는 가난한 나라에 태어났나?’

 

하긴 나도 어렸을 적 그런 의문이 있었다. 나는 왜 한국에, 그것도 이렇게 가난한 집에 태어났는지 묻고 싶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오늘날 강남의 8학군이라 불리는 학교였다. 우리 학교 친구들은 부잣집 아이들이었음으로 나와는 큰 거리감이 있었다. 이왕 태어나려면 미국 사람으로 부잣집에서 그리고 탁월한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다.

 

그러나 인생은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어떤 섭리와 계획 속에 보내심을 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어른이 되어가며 조금씩 알게 된다. 씨앗이 땅에 떨어질 때 자신이 원하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농부의 생각과 계획에 따라 심기어진다. 씨앗은 모두 농부의 계획 속에 심기어지고 생명의 움을 틔운다. 우리는 피조물일 뿐 질문하고 의심함으로 우리의 태생적 한계를 바꾸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다만 농부되신 그분에게 왜 나를 여기에 보내셨는지를 묻는 물음은 필요하다.

 

모세는 80살이 되었다. 그는 40년 동안 목동으로 살았다. 한때 그에게도 영광의 날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예전의 날이다. 지금 그는 목동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은 그를 버렸고 그도 자신감을 잃었다. 어느 날 모세도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했을 것이다. ‘나는 누구이며 왜 여기에 있는가?’라고 말이다.

모세는 왜 바로의 성안에서 40년을 살게 되었는가? 그리고 다시 광야에서 또 40년을 살아야 했는가? 모세의 80년의 생애는 어쩌면 마지막 40년을 위하여 준비된 삶이었을지 모른다. 마지막을 위하여 그는 나일강에 버려졌고 바로의 궁에서 귀족처럼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진 채 광야의 고독한 양치기가 되었다. 이제까지의 그의 모든 삶은 마지막 남은 40년을 위한 것이었다. 민족과 동족을 구원하시려는 계획 속에 그는 그렇게 보내진 존재였다. 모세는 이렇게 자신의 인생을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또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으려면 모세처럼 자신의 삶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 나는 어릴 적 그 질문을 다시 한다. 왜 나는 지금 여기에 이런 모습으로 존재하는가? 환갑을 넘긴 나이에 머리는 빠졌고 허옇게 물들었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인상은 구겨졌고 내 모습은 초라하고 보잘것없다. 하루 종일 내 작은 방에서 글을 쓰고 말씀을 준비하고 책을 읽는다. 그러다 찾아오는 사람을 만나고 다시 나는 집으로 끌려간다. 아내의 손을 잡고 출근하고 저녁이 되면 아내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간다. 아내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잠을 자면 깜깜한 밤중에 깨어나 나를 묻는 물음을 시작한다.

 

왜 나는 여기에 있는가?’

 

나도 한때는 소위 큰 꿈이 있었다. 목사로서 아니 인간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본능적 욕망이 있었다. 그러다 다 무너졌다. 많은 것이 사라졌고 나는 바보가 되었다. 건강을 잃었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장애인이 되었다. 이 고통의 나락에서 청춘을 보냈고 이제 지금 중년의 초로가 되어 왜 나를 이렇게 여기에 있으라 하십니까묻는다.

 

어디에 쓰시려고 나를 여기에 있으라 하십니까?’

 

나도 보통의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 큰 어려움 없이 하루하루의 일상을 즐기며 살고 싶다. 그러나 내게 그런 인생은 사라졌다. 다시 그런 삶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살다가 죽어야 한다. 나는 죽어간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조금도 빠져나오지 못한 채 이렇게 죽을 것이다. 가슴이 아프다. 미칠 것 같은 분노가 치민다. 가슴에서 불이 일어난다. 다 태워버리고 싶을 만큼 나는 절망한다. 혼자 그렇게 울다 울다 나를 여기에 있게 하신 이유를 묻고 또 소리친다. 나는 그렇게 내 청춘을 시작했고 여기 초라하게 늙은 모습으로 앉아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끝까지 이렇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모세의 물음을 생각한다. 그도 그런 질문을 자신에게 했을 것이다. 미디안 광야에서 하늘을 보며 매일 같이 그는 분노하고 절망하며 늙어갔을 것이다. 그도 나 같은 분노와 절망으로 울고 또 울었을지 모른다.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래야 오늘의 현실을 이길 수 있으니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모세의 마지막 40년을 생각하며 위로를 삼는다. 할 일이 남아있고 그 마지막 날을 위하여 나는 보이지 않는 눈이지만 눈에 힘을 준다. 혹시 그분의 부르심이 있을까 신발을 옆에 두고 맨발로 선다. 나는 모세를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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