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년 수나라 황제인 양제가 고구려를 침략해 왔을 때 고구려의 장수 을지문덕이 살수대첩으로 100만 명의 수나라 군대를 격파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을지문덕이라는 장수를 알고는 있었지만 그 후 그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우리는 을지문덕이 고구려의 유명한 장수였으며 그가 수나라를 물리쳤다는 것 그리고 그 전쟁으로 수나라의 국력이 급속도로 내리막길로 떨어졌고 그래서 당나라가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 전부다. 역사를 좋아했던 나에게도 을지문덕에 대한 기억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어느 날 몽골학교를 세워 몽골로부터 현지인 교사들을 국내로 데리고 들어오게 되었다. 우리 학교에는 몽골인 교사가 15명 근무하고 있다. 그들 중 ‘을지후’와 ‘을지새항’이라는 교사가 있다. 두 사람의 이름에 을지라는 단어가 공통되게 들어가 있다. 을지문덕을 생각하다가 을지 선생님들의 이름이 떠올랐다. 문득 고구려의 장수 을지문덕의 후손들이 몽골로 이주하여 을지라는 성이 이어져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구려가 당나라와 신라에 의하여 망한 것이 668년이었고 고구려의 마지막 왕 보장왕의 후손 중 상당수가 몽골초원으로 들어갔다고 하니 그런 나의 상상이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리라. 698년 고구려의 후예였던 대조영이 발해를 일으켜 세웠고 그 발해의 후손들이 또한 몽골의 테무진과 관계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몽골학교 교사 중 을지 선생님들이 을지문덕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게는 을지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동질성이 너무 재미있는 상상을 하게 한다. 몽골과 우리는 어떤 지점에서 만났을 것이라는 생각은 몽골선교를 하며 더욱 깊이 체감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미 역사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살아왔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계획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고 그 구원의 열매들이 지금 맺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섬이 고백하고 꿈꾸는 '동해에서 지중해까지'라는 선교적 슬로건은 헛된 망상이 아니다. 나는 만주벌판의 주인이었던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추적하고 그러므로 그 땅은 중국이 아닌 우리의 땅이었으며 그 공간 속에 숨겨진 하나님 나라의 섭리가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남북통일과 만주 등 동북 삼성의 회복, 몽골초원과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유라시아 대 평원을 넘어 투르크의 지중해를 잇는 강한 선교적 벨트를 만들고 싶다.
을지 선생님들을 만나며 을지문덕과 고구려, 그리고 발해가 보인다. 우리는 을지라는 성을 가진 이들이 살던 땅으로 가야 한다. 고구려가 거기에 있고 발해와 몽골, 나아가 유라시아의 넓은 대초원이 기다린다. 누가 이 길을 함께 갈 것인가? 이제 나 혼자서 갈 자신은 없다. 그럴만한 능력도 없다. 이 사명과 비전에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